글/ 김진녕
밀라노의 프라다파운데이션에서 <생귄, 바로크의 뤼크 튀이만Sanguine, Luc Tuymans on Baroque>전(2018.10.18~ 2019.2.25)이 열리고 있다.
Sanguine. 명사로는 ‘진한 붉은색’, 형용사로는 혈색이 좋은, 명랑한, 낙천적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사실 이 전시회의 제목에 등장하는 뤼크 튀이만Luc Tuymans은 벨기에 출신 스타 작가이자 큐레이터다.
주최측은 소개글에서 “’Sanguine’은 바로크 관념의 전통적인 경계를 오늘날까지 확장시킨다. 현대 예술가와 17세기 거장의 혁신적인 병치와 예기치 않은 연관성을 토대로 바로크 양식을 개인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엄격한 연대기 순서나 역사적 접근법을 피하면서, 튀이만은 바로크 양식의 전통적인 관념을 피하고 관객에게 전시 서사의 중심에 있는 예술가와 그들의 역할을 배치함으로써 17세기 예술과 현대 연구를 재검토하도록 초대한다”고 밝혔다.
튀이만이 기획한 이 전시장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순간은 이런 식이다. 과거의 미술품과 현대의 미술품을 소개하지만 연대기적 서술 같은 게 없다. 그는 17세기 플랑드르의 미술과 카라바조Caravaggio의 두 작품, 그리고 현대의 플랑드르 미술가라고 할 수 있는 앤트워프 기반의 시각예술가를 포함한 63명의 국제 적인 작가의 80점이 넘는 작품을 이런 식으로 전시장에 흩뿌려놨다. 이런 게 믹스 앤 매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크게 보면 세 개의 전시장으로 나뉜 이번 전시의 두번째 전시관에 카라바조가 그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1596~97)이 걸려있다. 이 그림엔 물린 순간의 고통과 놀람이 생생하게 잡혀있다. 이 걸작 앞에는 제이크+디노스 채프만Jake and Dinos Chapman 형제가 구현한 <퍼킹 헬fuucking hell>(2008)이 설치돼 있다. 이 작품은 디오라마로 모든 종류의 고통이 구현된 대학살의 지옥도다.
바로 이 작품 앞에는 17세기 네델란드 남부 출신의, 20세기에는 벨기에 출신 화가로 분류되는 여성 화가 미카엘리나 바우티에르Michaelina Wautier가 그린 <성 아그네스와 성 도로테아>가 걸려있다. 꽃과 예쁜 옷으로 치장한 이들은 사실은 잔인하게 살해당한(순교한) 소녀들이다. 도마뱀이 살짝 깨물기만 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개인적인 통증(고통), 종교적 신념에 따라 승리 또는 학살로 포장되는 죽음의 행위, 거의 종교적 신념으로 행해지는 대학살의 순간이 한 공간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바우티에르 + 채프먼 형제Jake and Dinos Chapman
뤼크 튀이만은 전시회 제목에 바로크를 호명했다. 바로크 시대는 근대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지금의 기준으로도 카라바조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욕망의 표본이다. 그는 지금 이순간, 찰나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의 현장을 극명한 빛의 대조로 잡아내자 그 뒤에 등장한 렘브란트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차례대로 그렸다. 바로크 시대는 신화나 종교의 도그마 대신 감각의 주체인 인간에게 집중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바로크 시대를 열어젖힌 카라바조는 17세기 작가 중 최근 가장 뜨겁게 소환되는 작가다. 현재 플로렌스의 우피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카라바조 기획전은 카라바조의 소품 두 점과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 작품을 동원해 열리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sanguine전에는 무려 두 점이나 등장했다. 그것도 카라바조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1609~10, 보르게세 미술관 소장품)과 <도마뱀에 물린 소년>(로베르토 롱기재단 소장품) 등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프라다파운데이션이 현대미술계에서 큰 손이라고 해도 이런 작품을 빌려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주로 현대미술을 다루는 사립미술관이 주최하는 전시에 어떻게 이런 작품을 빌려오는 게 가능했을까.
이런 궁금증은 전시 주최자를 보면 반쯤은 풀린다. 이 전시의 공동주최자에는 벨기에 앤트워프의 현대미술관과 앤트워프 시市가 들어가 있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는 벨기에의 자랑인 벨기에 출신 작가들,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나 루벤스Peter Paul Rubens, 17세기 여성화가 미카엘리나 바우티에르의 작품을 빌려줬다. 거의 벨기에의 국가 프로젝트인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벨기에에서 먼저 열렸다. 전시기획자 뤼크 튀이만은 벨기에 현대미술의 간판격인 스타다.
전시는 바로크의 정신과 현대 작가의 17~18세기에 빛났던 플랑드르 미술품을 현대미술계에서 독일이나 영국, 이탈리아에 비해 그닥 주목받지 못하는 벨기에 현대미술 작품과 믹스앤매치해서 다시금 현대의 관객들에게 ‘벨기에’라는 브랜드를 부각시키는 이벤트라고도 할 수 있다.
벨기에라는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라 이탈리아나 우크라이나의 공공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려오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카라바조의 두 작품은 미디어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체리 토핑이다.
그렇게 모인 관객들 앞에서 뤼크 튀이만은 벨기에 현대작가의 작품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벨기에라는 국가 단위의 공공미술관이, 앤트워프시라는 공공기관이 기꺼이 사립미술관인 프라다파운데이션과 공동 사업을 벌였을 것이다.
물론 전시 작품 모두가 17세기 플랑드르 화가와 21세기 벨기에 작가에 집중된 것은 아니다. 2016년 2016년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에도 소개됐던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휴먼 마스크Human Mask>, 미국 흑인 미술의 간판으로 떠오르고 있는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의 <비네트Vignette> 연작 석 점, 이사 겐츠겐Isa Genzken의 평면 작품,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와 같은 중국과 일본의 작가 등 요즘 현대 미술의 중심에서 호명되는 작가의 작품도 충분히 넘쳐난다. 형식적으로 따져도 벨기에 국가 브랜드 홍보전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뤼크 튀이만 <경배자>
17세기 이탈리아 작가 안드레아 바카로Andrea Vaccaro가 그린 다비드와 골리앗의 전쟁, 채프만 형제Jake and Dinos Chapman의 현대의 전쟁 지옥도
얀 반 임스훗Jan Van Imschoot <유디트>
튀이만은 전시장 전반에 ‘잘린 목’으로 동어반복적인 운율을 뒀다. 전시장 들머리에 관람객이 처음 만나는 것은 벨기에 출신 작가 얀 반 임스훗Jan Van Imschoot 의 <유디트>와 빌렘 드 로이Willem de Rooij의 <부케IX>, 튀이만의 <경배자>가 걸려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플랑드르 출신의 현대 작가들이다. 이 중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벤 구약성서의 그 유디트다. 임스훗은 유디트나 목이 잘린 홀로페르네스나 모두 붉은색이다. 전시장 중간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바카로Andrea Vaccaro의 <다비드의 승리>(1650, 나폴리 국립 카포디몬테미술관 소장품)가 걸려있다. 다비드가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장대에 걸고 행진하는 모습이다.
카라바조와 아로차 슈래낸
마지막 전시장에는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가 걸려있다. 다비드가 손에 쥔 것은 골리앗의 머리지만, 어쩐 일인지 카라바조는 골리앗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튀이만은 이를 마지막으로 보고 퇴장하는 자리에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설치 작품 <굿 보이, 뱃 보이good boy, bad boy>(1985)를 설치했다. 두 채널의 영상에서 쉴새없이 욕이 흘러나오는 작품이다. 바로크 시대에 대응하는 튀이만의 바로크식 농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