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청전과 소정
기 간 : 2018.9.10-20
장 소 : 관훈동 노화랑
1985년 현대화랑과 동산방화랑에서 <청전과 소정>전시를 연 이후 같은 타이틀로 관훈동 노화랑에서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의 작품을 짧은 기간 전시한다. 60-70년대의 작품 20여 점으로 규모는 작지만 수묵화 전시가 드문 요즘으로서는 귀하디 귀한 기회다.
수묵화에, 특히 근현대의 수묵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1층과 2층에 각각 전시된 청전과 소정의 그림에서 두 사람의 차이는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인파로 번잡스러운 인사동길과 대조적인 조용한 전시장 내에서, 이 두 사람이 20세기 전반과 중반 전통 회화의 돌파구를 어디에 두고 이렇게 한결같이, 하지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일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조선 말기 전통 회화는 안중식, 조석진으로 계승, 근대회화 형성의 출발점이 됐다. 급변하는 사회, 국가적인 위기, 외래문화의 쓰나미 속에서 전통 회화는 중국화풍을 답습했거나, 일본색이 묻어난다는 비난을 겪으면서 ‘동양화’라는 명칭으로 근근히 전개됐다.
1920년, 동아일보에 시인 변영로가 쓴 글에서 ‘선인의 복사요 모방이며 낡아빠진 예술적 약속의 묵수’1)라고 전통 회화가 두드려 맞은 이후 변화나 각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1923년 3월 이상범과 변관식은 이용우, 노수현과 함께 미술동인인 ‘동연사同硏社’를 결성해서 ‘조선화’의 새로운 개척과 방향을 개척하고자 했다.
동인의 역할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이들이 과거의 답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노력이 그해 공개됐던 작품들에도 반영됐고 특히 이상범의 경우 화단의 새로운 운동의 결과물로 평가받기도 했다.2)
청전 이상범 <추경산수> 1958년, 종이에 수묵담채, 55x89.5 cm
청전 이상범 <하경산수> 1960년대, 종이에 수묵담채, 61x128cm
<하경산수> 부분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청전 이상범은 갈필을 사용하여 커다란 화면에 꽉차도록 근경과 중경, 원경을 배치하는 양식을 확립하고, 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향토색이 풍기는 농가-교외의 심심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담는다.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산을 넘어가는 두 노인 등이 감초처럼 콕 박혀 있다. 그림도 다소 단조로운데 어떤 그림이든 큰 변화가 없다. 약간 더 스산하거나, 약간 더 호젓하거나, 약간 더 평화롭다.
소정 변관식 <외금강 삼선암> 1960년대, 종이에 수묵담채, 63x64.5cm
소정 변관식 <단발령> 1969년, 종이에 수묵담채, 40x130cm
<단발령> 부분
반면 소정 변관식의 그림은 엷은 먹으로 윤곽을 칠한 다음 더 짙은 먹으로 채워나가며 다소 둔탁하고 힘있는 붓질을 보이는데, 화면을 변칙적으로 가르거나 복잡한 구성과 시점을 보인다. 소정의 촌로들은 청전의 등장인물보다 바삐 움직인다. 몇 가지 화제시를 상단에 쓰면서 이상향으로서의 전원풍경 이미지가 강화되도록 한다.
안중식의 제자와 조석진의 외손자, 60년대 국전의 심사위원과 국전을 비판한 재야의 화가, 홍익대학교 교수와 서라벌예대 출강 강사. 메이저와 마이너로 갈려 성격이나 삶, 화풍의 차이가 드라마틱한 두 사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근현대의 화맥을 이해하는 데에 이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관심을 두는 것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청전의 경우 그나마 좋은 대접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근현대의 수묵화는 다른 그림에 비해 대중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어떤 지역 시대든 당대에는 인기를 끌었어도 훗날 그만큼의 가치는 없었다고 여겨지는 그림들이 있다. 한참 후 다시금 주목받는 그림들이 있듯이. 화가와 그림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당대에는 사회와 교감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 화가들이 그들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하고 발전시켜나가느냐에 따라 가치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20세기, 전통방식의 수묵화.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다채로운 현대사회의 시각적 자극에서 신선한 매력을 지닐 수도 있다. 그 시기의 그림들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기 전에 더 많이 보여지고 연구되어서 발전의 여지를 따져볼 여지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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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독자는 잠깐 동양화를 보라, 특히 근대의 조선화를. 어디 호발 만큼이나 시대정신이 발현된 것이 있으며, 어디 예술가의 굉원하고 독특한 화의가 있으며, 어디 예민한 예술적 양심이 있는가를....(중략)... 단지 선인의 복사요 모방이며, 낡아빠진 예술적 약속의 묵수함이다....우리의 예술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음은 노노히 여러말 할 것이 없다.” 변영로(卞榮魯), 「동양화론(東洋畵論)」, 『동아일보』 1920년 7월 7일.
2) “가장 새로운 색채를 나타낸 작품은 동연사 동인의 것이다... 이상범의 <해진 뒤>와 같은 것은 종래 우리 화단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작풍으로 추상적 기분을 버리고 사생적 작풍을 동양화에 응용한 점은 화단에 새로운 운동이 있은 후 첫 솜씨로 볼 수가 있다.” 一觀客(전람회 평),『동아일보』,1923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