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주년 기념전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2018.05.03~2018.10.14.
1986년, 그 동안 경복궁에 있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 새 건물을 짓고 이전하게 되면서, 수집, 보존, 전시, 교육 등의 미술관 미션을 장착한 제대로 된 미술관으로 발돋움 하게 되었을 때, 이 국립‘현대’미술관은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의 미술을 그 중심으로 가져가게 된다.
시대의 호흡을 가져가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의 현대미술은 한동안 의도치 않게 설 자리를 잃었다. 되돌아보기 싫은 과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또는 근거 없이 흔들려 보이는 한국의 근대미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것은 1998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덕수궁 석조전 서관에 마련, 근대미술로 특성화되면서 본격화된 덕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전을 열고 있다. 올해는 이 덕수궁관이 1938년 ‘이왕가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전문 미술관으로 건립된 지 8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미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이 장소, 이 공간의 정체성과 역사와 특징을 보여주고자 한 전시다.
전시의 첫 부분은 기대에 부응하게도 이 공간의 시작, 석조전 건립과 관련된 자료들이다. 석조전 서관 건물은 일본인 건축가 나타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 1880-1963)가 설계했다. 이 건축물의 설계도면은 국립고궁박물관과 일본 하마마츠시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여러 종류의 상세한 도면들을 전시, 자세히 살펴보면서 건물의 구조를 되새길 수 있다. 특히 하마마츠시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217매의 건축도면과 시방서, 내역서, 구조계산서, 공정표 등 25종의 자료 중 일부를 전시, 한 건물이 설계되고 공사과정의 실시, 협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등 건물의 탄생 전모를 보여주는 기록들이 흥미롭다.
서관 건물은 1933년부터 박물관으로 쓰이던 석조전 동관을 연결, 확장하여 처음부터 미술관의 용도로 설계됐다. 처음 석조전 동관에는 이왕직에서 사들인 일본 근대미술품을 전시하고, 서관에서는 창덕궁박물관에서 보관되고 있던 한국 전통유물을 전시했다. 당시 대한제국 황실 보유 재산을 관리하던 ‘이왕직’이라는 일제의 조직은 조선의 왕궁들을 관광상품화해서 일본인의 조선 관광을 독려하는 정책에 앞장섰고 이 덕수궁 내의 미술관도 그 목적 하에서 건립됐다. 일본 당대의 작가 작품들은 나란히 다른 건물에 배치해서 일본인들의 입맛과 자존감을 세워줬을 것이다.
이 이왕가미술관은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을 구입하기도 했는데, 이영일, 김주경, 이마동, 이갑경, 심형구 등의 작품은 1970-80년대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고, 소장품 없이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에 단비같은 연결고리가 됐다.(다른 대부분의 이왕직이 사들인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덕수궁미술관’에 남아 있다가 1968년 국립박물관에 흡수되면서 현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이 됐다.)
이영일(1904-1984) <시골 소녀> 1928, 비단에 채색, 152×142.7cm
1929년 선전에서 특선, 창덕궁에 보관되어오다 1972년을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계기로 발굴, 이관된 확실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오지호 <남향집> 1939, 캔버스에 유채, 80x65cm
사후 작가의 뜻에 따라 유족에 의해 총 34점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대표작인 이 <남향집>은 등록문화재 제 536호로 지정.
이인성 <카이유> 1932, 종이에 수채, 72.5×53.5cm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일본 궁내성에서 매입, 황실 승마선생에게 선물, 그의 비서가 오래 보관하다가 1998년 《다시 찾은 근대미술》전에서 전시 된 후 구입했다.
김종태 <석모 주암산> 1935, 캔버스에 유채, 38.3x46cm
작가 소개와 작품 구입 내력이 적혀 있다.
이런 주요한 작품들, 그간 종종 볼 수 있었던 유명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확인하면서 개인의 정체성, 사상의 혼란 속에서 그림을 통해 어떤 발자취를 남길 것인지 고민했던 화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돌파구, 실패 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작품 아래 설명에 그 작품이 어떻게 해서 이 미술관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주요 전시에 등장했는지의 이력이 간략히 써 있어 더욱 흥미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응노(1904-1989) <문자추상(콤포지션)> 1963, 캔버스, 종이에 수묵채색, 137x70cm
1972년에 열렸던 《한국근대미술 60년》전, 1998년 《다시 찾은 근대미술》전 등 주요 전시에 대한 소개, 당시 전시를 통해 발굴된 작품과 작품들이 소장품으로 구입된 과정들, 기증과 컬렉션의 역사, 주요 작가의 회고전 리스트업을 보면, 뿌듯함, 안도, 안타까움의 감정이 교차로 일어난다. 매년 국전이 열리고 현대적인 작품을 전시하던 과거를 기억하던 이들도, 근대 미술과 외부 기획전이 병행되던 얼마 전의 일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미술관이 걸어 온 행보와 가야할 길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으리라.
이번 전시는 전시 관람을 마친 후에 동관으로 가는 연결통로로 나오도록 전시 동선을 꾸몄다. 통로에서 동관 석조전을 바라보고, 통로를 지나 동관 계단으로 걸어내려오면서 다시 미술관 건물을 돌아보도록 한 점이 관람객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미술관 건물과 작품, 역사가 전시의 주역이 되어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한국에 국립 ‘미술관’은 현재 MMCA라고 약칭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유일하다. 국립 근대미술관의 설립이 필요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근 백년이 되지 않은 가까운 과거의 미술을 연구하고 보존하고 전시하는 노력이 지금보다는 더 투자되어도 좋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모던, 컨템퍼러리 서양의 기준을 넘어서 현재 우리의 미술과 그 뿌리에 대해 연구하는 일이 단단히 지속되고, 시민들은 편안히 좋은 작품들을 끊임없이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