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사석원 - 希望落書 ㅣ 청춘에게 묻다
장 소 :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기 간 : 2018. 5. 18 - 6. 10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험난한 바다. 작은 조각배에 의지하여 이 바다를 건너야 한다.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벵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에 올라 넓은 바다를 건너야 했던 소년 파이가 신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했듯이, 사석원의 작품 속 동물들 또한 묵묵히 시련을 견디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질문하는 동등한 존재였다.
<희생> 2016, oil on canvas, 177.5x177.5cm
화면을 장악한 동물, 두꺼운 유화 물감, 강렬한 색채에 조금씩 묻어나는 동양화의 필치.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사석원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된 신작들을 볼 수 있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그 시작은 ‘출범(出帆)’이라는 주제의 그림들로,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생명들. 근육질의 고릴라도 거대한 파도 앞에서는 작은 생명체일 뿐인데 십자가에 등져도 외줄타기를 하면서도 다른 더 연약한 동물들을 지키는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지킬 뿐 찡그리는 표정조차 없다. 청춘은 이렇게 가장이, 어른이 된다.
<꽃> 2016, oil on canvas, 177.5x177.5cm
<무림제왕 - 부엉이> 2017, oil on canvas, 130.3x193.9cm
<호랑이> 2018, oil on canvas, 145.5x112.1cm
<왕중왕 - 호랑이> 2017, oil on canvas, 130.3x162.2cm
두 번째 주제 ‘희망낙서’에서는 정면을 응시하는 동물의 눈동자를 마주하게 된다. 추구하던 삶(예술)의 목표가 흔들리거나 모호해졌을 때는, 그간의 욕망과 결과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추구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작가가 즐겨 그려왔던 동물들. 정교하게 그려진 동물 개체의 얼굴을 무수한 터치의 붓질로 가리고 지워내면서 남은 형상과 거기에서 새로 연상되는 이미지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흔적들이다.
<세 여인> 2018, oil on canvas, 130.3x162.2cm
세 번째 주제인 ‘신세계’에서는 수묵화의 필선이 많이 드러나는 인물, 특히 여성의 나체를 그린 연작들을 볼 수 있다.
작가가 힘겨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에게 보낼 수 있는 메시지란 부질없는 희망을 써갈긴 낙서일 뿐이라도, 삶의 고통과 환희, 긴장감 속에서도 묵묵한 끈질김만이 그 싸움을 이겨낼 내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청춘’이라는 말을 젊은이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청춘 시절을 그리움으로만 간직한 윗세대에게도, 지금이 힘겹고 어지러울 뿐인 아랫세대에게도 ‘청춘’이라는 말은 빛이 바래 보인다. 청춘이든 아니든, 지루하지 않은 삶은 강렬하고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