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디시전 포레스트(Decision Forest)
전시장소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기간 : 2018.05.03 - 2018.08.26
글/ 김진녕
'피할 수 없다면 즐기고 분석하라'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서울 용산에 본사 건물을 신축하면서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미술관(Amorepacific Museum of Art, APMA)의 첫번째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라파엘 로자노 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디시전 포레스트Decision Forest>전(~8월26일).
라파엘 로자노 헤머의 서울 전시는 그의 1992년 작부터 월드 프리미어작 5점까지 모두 29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이 전시를 기획한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의 김경란 큐레이터는 “세미 회고전 성격”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미술관이 들어있는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이 완공되기 전인 2017년 4월 미술관 현장을 방문해 전시 기획을 시작해 1년 여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전시의 제목인 ‘Decision Forest’에 대해 미술관 측에선 “데이터 과학 용어로 관람객의 선택, 그리고 관람객과 작품의 상호 작용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 값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통제할 수 없는 대중의 본성, 불완전한 지각의 과정, 불확실하고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서 발휘되는 창의성 등 여러 가지 개념의 집합이기도 하다. 전시된 작품은 관람객이 주인이 되어 만들어가는 창의적인 소통의 플랫폼이다. 전시를 방문한 관람객이 스스로 작품에 참여할지 여부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관람객과 작품의 상황과 상태가 달라진다”고 밝혔다.
전시된 작품은 폐쇄 회로 카메라나 맥박 진단, 홍체와 얼굴 인식 기술, 지문 인식, 방사선 투과 기술과 스캔, 음향의 공간 배열 기술, 생체반응 측정 등 인간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다양한 첨단 기술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이런 기술은 실생활에서 ‘공공 질서를 확립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로 쓰이고 있다. 다른 말로 감시형 빅 브라더 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항에서 마주치는 엑스선을 이용한 비파괴 짐 검사와 신체 스캔, 지문 인식을 통한 보안구역 통과, 도시 뒷골목부터 지하철, 엘리베이터, 사무실까지 촘촘히 깔려있는 폐쇄회로 카메라는 이미 ‘선량한 시민의 안전한 도시 생활’을 위해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드웨어만 그런 게 아니라 인터넷 기반으로 구축된 노래나 음악, 뉴스, SNS를 이용하기 위해선 닷컴 기업에 개인 정보와 취향을 헌신적으로 고백해야만 가능하다. 그런 개인 정보와 위치 정보를 취합해 익명의 데이터로 쌓아놓은 기업은 이를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팔아 큰 돈을 번다.
이런 감시 사회에 대해 <사각지대 찾기>(2014)라는 작업에서 개인의 소극적인 저항과 정체성 문제를 연결해 오인환 작가는 2015년 올해의 작가상을 타기도 했다.
라파엘 로자노 헤머는 그 반대쪽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감시)기술에 대해 소극적 또는 저항적이라기 보다는 적극 껴안고 농담도 걸고 장난도 친다. 물론 서늘한 긴장의 끈을 놓치고 있지는 않다. 감시와 데이터의 축적을 통한 놀이를 벌이면서도 관객에게 끊임없이 기술에 대해 목격하고 환기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로비에 달린 지름 3미터의 거대한 3D 원형 조각 <블루썬(Blue Sun)>은 신작으로 지난 10년간 태양에 대해 NASA와 작가가 협업한 결과물이다. 계절마다 태양의 표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표현한 작품으로 실제 태양의 색에 가까운 블루로 형상화했다. 작가는 “가장 뜨거운 색이 블루라는 점을 표현했다”고.
이외에도 관람객의 지문 정보를 스캔해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펄스 인덱스>(2010), 관람객의 심장 박동 수를 전구의 반짝임으로 치환하는 <펄스 룸>(2006), 관람객이 마이크에 대고 녹음한 목소리의 톤과 음색을 시각 정보로 바꿔 빛의 패턴으로 재현하는 <보이스 어레이>(2011),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마지막 생존자인 쿠바 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호흡을 밀폐된 봉투에 담은 뒤 폐쇄형 공기 순환 장치를 통해 끝없이 호흡하는 움직임을 담아낸
다음은 그가 개막식 간담회에서 밝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전시장을 할애한 <샌드박스>(2010)에 대해.
“APMA에 설치된 <샌드박스>는 김경란 큐레이터와 협업한 것이다. 2010년 미국 산타모니카에서 벌였던 퍼포먼스를 실내로 옮겨왔다. 모래밭은 놀이터이고, 이 작품은 관객이 서로 연결되고 바라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관객이 있어야 완성된다. 놀이에 유머를 더한 게 가장 큰 포인트다. 감시 카메라의 추적 기술을 반영했다.”
뉴미디어 예술인가?
“나는 이 분야에서 25년간 일했지만 내 작품을 뉴 미디어라고 부르는 것이 싫다. 새로운 게 없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다 밝히고 있다. 대중을 예술에 참여시킨다는 점에서 백남준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마르타 미누힌(1943~)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예술을 하는 것(making art)은 이해에 대한 욕구이다. 나는 프로그래머 출신이지만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내게 영향을 준 인물은 시인이자 아버지의 사촌인 옥타비오 파스 로자노(1914~1998, 1990년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시는 '모호함'(ambiguity)과 '부서질 수 있는 것'(fragility)이라 아름답다. 독자가 중요하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다. 그게 내 작품과 닮은 점이다.”
작품에 쓰인 카메라나 지문, 음성 인식기 등은 모두 감시와 통제를 위한 기술이다.
”테크놀로지를 윤리적으로 판단할 의도는 없다. 테크놀로지 기술은 이미 제2의 피부처럼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요즘은 기술이 언어가 됐고 피할 수가 없다. 감시와 통제, 제어같은 기술을 예술로 변환하는 게 내 일이다. 나도 삼남매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될까 봐 걱정된다. 이런 기술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줄까? 기술은 재분배되고 여러 용도로 쓰인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나는 도덕적 관점을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사회가 점점 통제화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통제가 안좋다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기술에는 양면성이 있다. 나는 이런 기술을 사용한 퍼포먼스에 가까운 작업을 통해서 즐거움을 표현했다.”
관객들의 반응이 지역이나 문화권 별로 다른가.
“내 작품은 관객을 바라보고 관객을 감시하고 기존 뮤지엄의 역할에서 벗어난 역할을 한다. 내 작품이 설치된 곳이 관람객에게 즐거운 장소가 되길 바란다. 관객의 반응은 도시마다 달랐다. 포르투갈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샌드박스>나 <에어본 뉴스캐스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뻣뻣했다. (신체 접촉을 유도한 작품인데도)서로 만지지도 않았다. 반면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그림자 놀이에 열중했다. 내가 갖고 있는 국가별 고정 관념과 많이 다른 반응이었다.”
그는 작품전 개막식에서 “아모레퍼시픽뮤지엄은 완공 전에 와서 구석 구석 보고 갔다. 아름다운 건물이다. <블루선>도 이 건물에 맞게 제작한 작품이다. 전시장에 설치한 VR에 이 빌딩에 대한 감상도 수록했다. 한국의 장영혜중공업 등과도 잘알고 교류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작가도 사랑해 달라”는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