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진녕
-서화실 리뉴얼 공사 뒤에 선보인 두번째 전시
-국박의 소장품과 연구 역량을 다채롭게 선보일 수 있는 전시 방법인지는 미지수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실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난해 12월7일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관이 리뉴얼 공사를 통해 새 모습을 선보인 뒤 두번째 전시의 주제가 ‘고운 나비 쌍쌍이 봄빛을 탐하고’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인 까닭에 조선시대의 꽃밭을 옮겨 놓은듯하다.
이번 전시는 용산 시대 개막 이후 12년 만에 이뤄진 서화실의 리뉴얼 공사 뒤에 이뤄진 두번째 전시물 교체다. 리뉴얼 공사를 통해 특수 저반사 유리의 도입, 전시대 교체, 조명 조정 등의 하드웨어 변화로 이전보다 관람 환경이 좋아졌고 전시 방법이란 소프트웨어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서예, 초상화, 풍속화, 궁중장식화 등으로 장르별로 고정적인 전시 공간을 배분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명품실과 주제실1,2로 나눠 그때 그때 제시된 주제로 작품을 골라 선보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바뀐 원칙에 따라 지난해 12월 초 선보인 첫 전시는 ‘다시 만난 조선시대 산수도 두 점-학포찬 산수도(學圃讚 山水圖)’와 ‘소동파, 조선이 사랑한 선비’, ‘개를 그린 그림, 그림 속의 개’ 등 세 가지 메뉴였다.
학포찬 산수도에서는 일본에서 회수한 16세기 조선 산수화를 선보였고, 소동파전에서는 소동파라는 인물과 그의 글씨첩, 그리고 그의 글씨와 시에 반응했던 조선 관료 계급 출신들이 그린 문인화를 선보였다. 김홍도의 <적벽야범(赤壁夜泛)>, 이광사의 <속려인행>, 이정의 <묵죽도>이 이 섹션에 등장했고, 개를 주제로 한 전시는 새해맞이 연말연시용 특집이었다. 십이지신도의 민화풍 개와 이암의 <모견도>, 김익주의 <매사냥>, 심사정의 <전가락사>(손창근 기탁품), 김두량의 <흑구도>, 백은배의 <황구도> 등 영모도와 풍속화 등 다양한 장르에 등장하는 개가 들어있는 그림을 선보였다.
그동안 단골이었던 궁중장식화인 모란병풍도나 궁궐 연회를 기록한 그림, 조선 관리 계급의 초상화 등은 등장하지 않았고 지난 4월10일 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두 번째 교체전시에도 초상화나 궁궐 연회 기록화 등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서화실 내 ‘명품실’과 두 곳의 ‘주제전시실’에서 4월 10일과 4월 24일부터 순차적으로 소주제 전시의 문을 연다.
<학포찬 산수>가 내려진 자리에는 ‘고운 나비 쌍쌍이 봄빛을 탐하고’(명품실, 4.10.~8.5.)란 주제로 조희룡(1789~1866)과 남계우(1811~1888)의 나비 그림을 모아놨다. 물론 봄을 의식한 주제다. 각기 장식성과 색채감으로 매화도(조희룡)와 나비(남계우)에서 정점을 찍은 분들이라 이들의 남긴 작품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꽃핀 장식적인 회화가 지닌 화려함과 세련미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봄의 화려함은 주제 전시실1에서 ‘그림으로 피어난 꽃‘(주제전시실1, 2018.4.10.~2018.8.5)으로 이어진다. 개 그림이 물러간 자리에 걸린 조선시대의 화조화는 짧게 지나간 매화향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신명연(1809~1886)의 <화훼도>, 장승업(1843~1897)의 <화조영모도> 병풍 등 조선 후기 화조도 대가의 꽃그림이 흐트러지게 펼쳐져있다.
소동파가 물러간 자리에는 ‘고사인물화-옛 성현에게 배우다’(주제전시실2, 4.24.~8.12)란 주제로 그림을 골라 선보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선 “소장하고 있는 고사인물화 조사의 성과를 반영하여 그 첫 번째로 역사인물의 교훈적인 일화를 다룬 감계화(鑑戒畫)를 소개한다”고 밝혔다.
감계화란 유교적인 교훈을 주는 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감계(鑑戒)는 과거의 사적을 거울삼아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고 조선의 지배 계급은 국가 통치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 또는 당대의 사건 중 본받을 만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서 활용했다. 중국과 한국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의 일화 중에서 군신간의 충성과 부모지간의 효 등 유교 이념에 맞는 사안을 그림으로 옮겼다. 이번 전시에는 <고석성왕치정도>(덕수2274)와 <대우치수도>(덕수1756) 등의 고사인물화가 최초로 등장하고 서화실 리뉴얼 전에도 자주 등장했던 조속(1595~1668)의 <금궤도>(덕수846)를 비롯해 국왕이 감상하고 글을 남긴 작품도 다시 등장했다. 조선의 왕이나 고위 관료 등의 지배 계급이 관료 계급과 대중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했는지 오늘의 시각으로 음미해 볼 수 있는 전시물이다.
<고석성왕치정도> 중 1폭
서화실은 사실상 조선조 회화의 전시 공간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문화 유산 중 그림류는 고려시대의 것부터 전해지고 있지만 고려시대의 작품은 대개는 불교 작품이라 불교 회화실이나 1층 고려실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실의 주인공은 조선시대의 문인이 남긴 글이나 그림, 조선 후기의 풍속화나 작자 미상의 궁중 장식화류 등이다. 벌써 두 번의 전시물 교체를 통해서도 등장하지 않는 조선 회화의 대표작이 있다면 고위 관리직을 지낸 인물의 초상화를 꼽을 수 있다.
바뀐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방법이 이전의 방식보다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심도있는 전시 방식이 될지, 봄-여름-가을-겨울에 맞춰 계절 그림을 거는 정도의 느슨한 전시로 귀착될지 될지 좀 더 지켜봐야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