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정릉시대
장 소 : 성북구립미술관
기 간 : 2018. 4. 5.~2018. 6. 24.
조선 태조 이성계의 비인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 막상 정릉을 찾아보지 않아도 동네 이름으로의 정릉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북한산 남쪽 끝자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소나무와 바위가 많아 송계동천松溪洞天이라는 이름을 얻은 빼어난 경관으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청수장에서 정릉천을 따라 아리랑고개까지 북한산의 기운이 조용히 내려앉은 이 동네에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어떻게들 지냈을까.
며칠 만에 봄다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찾아간 성북구립미술관의 기획전시 <정릉시대>전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에 정릉 동네에 자리잡았거나 이 곳을 거쳐갔던 화가 5명, 문학가 4명, 음악가 2명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박화성은 박경리의 어머니와 친한 이웃으로 지냈고, 박화성과의 친분으로 극작가 차범석도 정릉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국악의 전통을 바탕으로 서정적인 동요와 현대 곡들을 작곡한, <그네>의 금수현과 <자전거> 김대현도 정릉의 이웃이었다.
정릉 집에서의 박경리
미술에 집중해서 본다면 박고석-한묵-이중섭의 정릉시대가 가장 주목되는 부분일 것이다. 1955년 겨울, 이중섭이 성베드루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있을 무렵 박고석은 정릉에 살고 있었다. 박고석의 이웃에는 시인 조영암 등이 살고 있었는데 소나무로 덮인 정릉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계곡물소리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술 한잔 기울이며 교류하던 중이었고, 혜화동에 살던 한묵도 청수동 언덕에 조영암의 아내가 하숙집을 얻어주어 정릉으로 막 거처를 옮긴 참이었다. 박고석은 이중섭이 퇴원하여 정릉에서 요양하도록 원장에게 요청했고, 마침 비어있던 한묵의 옆방에 자리하게 된다. 이중섭은 이곳에서 정릉골 벗들과 함께 그나마 마음의 안식을 얻어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조영암의 집에 가서 자기도 하고 소설가 박연희의 집에 가서 밥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한묵과 이중섭이 그곳에 자리하고 나니, 구상, 차근호, 황염수 등 많은 친구들과 후배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이중섭, 박고석, 한묵(1952년 부산)
지금으로부터 불과 60여 년 전의 과거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서로 위로하면서 버텨낸 예술가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깨끗하고 조용하기만 한 이 동네에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 때문에 최만린이 30여 년 간 살았던 정릉 자택을 성북구가 사들여 구립의 최만린 미술관으로 개관될 예정이라는 소식은 반갑게도 느껴진 것 같다.
두 개 층에서 이뤄지고 있는 전시에서는 해당 화가의 작품들, 음악가와 작가의 육필 원고와 악보, 당시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이중섭의 <닭과 게>를 모티프로 한 금수현의 곡 <꽃으로 그린 그림>, 박고석의 정릉골 드로잉, 쌍계사길 풍경, 이중섭의 정릉 풍경, 신경림의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등 그 동네와 사람들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물도 흥미롭다. 전시 작품의 내용 만으로 보자면 좀 더 많은 지원으로 풍부한 전시가 가능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제본으로 전시된 몇몇 작품의 해상도가 조금은 안타까웠다.
박고석 <정릉골 풍경> 1960, 31x22cm
한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문화예술적인 소통과 흔적을 깊게 파들어 갈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관람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성북구립미술관 설립 9년. 문화 기관이 지역성을 담보하면서 어떻게 연구의 성과를 대중과 공유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이해되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