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알베르토 자코메티
장 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기 간 : 2017.12.21-2018.4.15
20세기를 대표하는 조각가 중 한 사람인 자코메티.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시기를 거쳐 그만의 독창적인 인체상들로 실존주의적인 사생까지, 20세기 조형예술에서 그의 예술적인 노력과 성취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12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방문한 300여 점의 작품들은 모두 알베르토자코메티재단의 소장품으로, 이런 대규모의 자코메티 회고전은 처음이어서인지 전시장은 개학 이후 오전에다 전시 끝물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시의 흐름은 자코메티의 어린 시절과 생애, 그의 모델이 되어 준 가족들과 지인들, 여인들, 작업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놓인 사색의 공간 '기도의 방' 등으로 이어진다.
<이사벨의 두상> 1937-1938년경, 청동, 21.3x16x17.2cm
<자켓을 입은 남자> 1953, 청동, 50.2x8.6x22.5cm
스위스 남부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럽 예술의 양분을 듬뿍 빨아들이며 자랐던 자코메티의 어린 시절, 그에게 영향을 준 아버지 지오반니, 어머니 아네타, 남동생, 여동생, 평생에 걸쳐 그에 조력한 아내 아네트, 그가 사랑했던 다른 두 여인 등 예술적 삶보다 드라마틱한 개인적 삶의 모습이 자세하게 설명된 판넬들이 이야기와 연관된 조각상들을 옆에 두고 전개되는 모양새의 전시다. 계속 보다보니 작품에 설명이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아네트의 흉상 IV> 1962, 석고, 56.9x24.9x23cm
<작업실에 앉아있는 아네트> 1960년경, 캔버스에 유화, 92x73cm
조각은 공간을 변화시킨다. 사실 자코메티 뿐 아니라 다른 조각 모두 관람객이 들어서는 공간을 변화시키며 관람객과 조각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간은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전시장을 오면서 기대하고 예상했던 감상 행위는 다음과 같았다. '자코메티의 오브제, 길게 늘어지고 거친 표면의 인체 형상과 마주한다. 정면에서 측면으로 이동하며 그 얼굴이 얇은 선과 같은 형태에서 점차 공간화되는 과정, 미묘한 불안함과 긴장감과 찌르는 듯한 삶의 본능 같은 다양한 감성을 경험한다. 2차대전 이후, 개인적 삶의 고통과 실존의 무게는 이러한 것이었나. 예술가로서 그는 어떻게 이러한 형상에 도달했나. 카뮈나 말로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을 떠올리고, 오브제 표면 위에 흐르는 진동과 전율을 다시 한번 느낀다.' 등등.
<앉아있는 남자의 흉상(로타르 III)> 1965-1966, 청동, 65.7x28.5x36cm
서울 전시에서 '기도의 방'에 놓인 <걸어가는 사람 II> 1960, 석고, 188x29.1x111.2cm
그러나 전시장은 그렇지 못했다. 벽마다 가득 적혀있는 맥락없이 따다 놓은 인용구들, 피카소와의 경쟁관계나 혼외 여성들과의 관계를 가십처럼 다룬 수많은 사진과 패널들, 미투운동을 언급하며 웃음소리 가득한 관람객의 호응에 신이 난 전시설명 등이 자코메티의 작품을 감상하는 최고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이미 글자에 지칠대로 지쳐 오브제들 전시 마지막의 <걸어가는 사람> 이 놓인 어둠침침한 기도의 방과 최후에 남긴 작품인 <로타르>에 조성된 조용한 공간에도 작품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연출된 숭고함과 엄숙함에 김이 샜다.
자코메티 재단의 석고 원본 소장품들, 특히 흉상이 다수 전시되어 그의 시그니처한 형태가 갖춰지기까지의 흐름을 볼 수 있고 그의 생애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전시이긴 하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실존주의적, 형이상학적 접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시 벽에 써 있는 그의 말, “내가 지금 하는 일은 걷어내는 일입니다”를 생각한다면 전시장에 흐르는 생뚱맞은 클래식 음악만이라도 걷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