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전통이 미래다 - 제3회 한국서예명적 법첩발간기념전
전시기간: 2018.2.28 - 4.29
전시장소: 서울 태광그룹 세화미술관
붓글씨를 좀 배우려고 하면 몸이 붓하고 같이 노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먼저 팔꿈치를 어깨 높이까지 들어서 붓을 쥐는 현완법(懸腕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이어 붓을 천천히 끌다가 살짝 떼는 시늉을 하면서 가볍고 붓 방향을 바꾸는 회완법(回腕法)을 배운다.
전시장 모습
그러면 붓이 위아래와 좌우로 자유롭게 턴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글자를 따라 쓰게 된다. 그렇지만 붓이 겨우 돌아가는 정도이므로 삐침이나 파책이 없는 전서가 제격이라서 주로 석고문(石鼓文)을 베껴 쓰게 된다. 이를 마스터하면 길이 나뉜다. 해서를 익힐 사람은 당나라 구양순 필체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을 거쳐 안진경의 안근례비(顔勤禮碑)를 쓴다.
통일신라시대 김생의 낭공대사탑비를 가지고 쓴 최돈상 작품
한호의 석봉천자문의 인상를 쓴 임성균 작품
이때 시도 때도 없이 옆에 놓고 펼쳐보는 책이 석고문, 구성궁예천명, 집자성교서 등의 법첩(法帖)이다. 법첩은 옛 글씨 중 명품을 골라 보존은 물론 감상 나아가 학습용으로 쓰기 위해 서첩 형식으로 꾸민 것을 가리킨다. 석고문, 구성궁예천명은 모두 중국 글씨이다.
허목의 동해척주비를 대상으로 한 김종원 작품
이들 중국 글씨의 법첩은 일본의 니겐샤(二玄社)란 서예전문 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쓴다. 이 출판사는 1958년 설립이후부터 대표적인 중국 법첩을 펴내기 시작했다. 중국 글씨를 전문으로 1987년까지 30년 동안 『서적명품총간(書跡名品叢刊)』이란 이름으로 208종을 펴냈다.
진흥왕순수비를 재해석한 노상동 작품
좁고 길다란 판형의 『서적명품총간』에는 웬만한 중국 글씨는 모두 들어있어 서실마다 안갖춰진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 위에 이곳에서는 『중국서법선』 전60권, 『돈황서법총간』 전29권,『정선확대법첩』 전20권 등도 냈다. 좀 다른 글씨를 쓰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책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추사의 묵소거사자찬을 가지고 제작한 백세호 작품
물론 이런 법첩 보급으로 글씨 배우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런데 중국 법첩이 대량으로 보급되고 또 너도나도 따라 쓰는 데에는 대가도 필요했다. 글씨가 모두 비슷비슷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니겐샤 법첩 보급 이전에는 어땠는가. 조선 시대에도 중국에서 만들어진 수제(手製) 법첩과 목판본 법첩이 유입됐다. 18세기 명필로 손꼽히는 강세황(姜世晃 1713-1791)도 중국에서 건너온 왕희지 난정서판본, 조아비첩, 황정경첩, 쾌설당첩 등과 같은 중국 서첩을 소장하고 참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탄연의 청평산 문수원기를 재해석한 박영도 작품
당시 이런 법첩은 고가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조부의 글씨나 부친 혹은 집안 어른의 글씨를 본받아 글씨 쓰기를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중국 글씨에 비하면 이런 글씨는 변방 글씨이고 당연히 촌 글씨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중국글씨에는 없는 게 있다. 각각의 집안이나 학파를 통해 전해져온 고유한 개성이다. 오늘날 조선글씨가 중국과 다른 것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광개토대왕비 글씨 인상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황석봉 글씨
그런데 지금까지 조선 글씨의 본이 될 만한 법첩을 등한시해왔다. 구한말에 추사 법첩이 몇 점 간행된 것이 전부이다. 이런 무인지경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글씨 명품을 체계적으로 법첩화하려는 시도가 『한국서예명적(名蹟)』 발간사업이다. 이는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이 후원하고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진행을 맡았다. 이달 말이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에서 신라의 김생, 최치원, 고려의 탄연과 이암을 거쳐 황기로, 한석봉, 추사까지 대표적 명필 15명의 글씨를 법첩화했다.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글씨 진감선사탑비 탁본
이 사업은 ‘이제부터 글씨 배우는 사람은 한국 글씨 명품을 가지고 배우라’는 선언과 마찬가지이다. 이 전시는 그 기념축하전이다.
초대된 서예가들은 원로에서 중진 그리고 신예까지 모두 활동이 왕성한 현역이다. 이들에게 초보처럼 광개토대왕비를 임모하고 한석봉의 천자문을 베껴 쓰라고는 할 수 없다. 출품작은 작가 정신을 전제로 우리 글씨 명품의 이미지와 인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됐다. 따라서 작품 하나하나에는 작가 개개인의 특징 위에 명품의 성격 그리고 현재적 재해석이 모두 녹아 들어있어 내용이 결코 쉽지 않게 됐다.
미래는 과거에서 시작돼 현재를 거쳐 향한다. 서예의 미래를 진작 내다봤더라면 이 일은 벌써 시작됐어야 했다. 만시지탄의 유감과는 별개로 가까이 놓고 늘 펼쳐보고 또 따라 써볼 수 있는 우리글씨 모범이 정리된 것은 지금이라도 해놓아야 할 일을 놓치지는 않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