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김종영 - 붓으로 조각하다
전시기간: 2017.12.22 ~ 2018.2.04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기이하다면 기이하고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전시다. 이(異)자가 금방 떠오르는 것은 보통의 두뇌회로로는 이해의 통로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레토릭이라 해도 붓으로 조각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의미는 잠시 접어두고 먼저 전시 성격부터 보자.
이 전시는 전후(戰後) 제1세대 추상조각가의 작품과 삶의 세계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그는 일제식민지시대 동경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한 몇 안 되는 근대조각가 중 한 사람이다. 해방 후에는 새로 생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1948년부터 198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후학들에게 조각을 지도했다. 전후에 등장한 이름난 현대조각가의 상당수가 그의 지도를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44세의 자화상> 1958년 종이에 먹, 수채 22x30cm
본인 스스로의 작업도 충실했다. 1953년 런던에서 개최된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공모전에 입선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도 참가하는 등 현대조각사에 남을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만한 역할과 비중이므로 그의 작업 세계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은 오히려 늦었다고 할지언정 이색적이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작품 71-1> 1971년 나무 25x18x30cm
그런데 색다르다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이해를 모색하고자 시도 때문이다. 대규모 회고전의 경우 작품은 물론 작품 탄생의 과정과 환경을 보다 입체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여러 참고품들이 등장하는 일은 흔히 있다. 서예 작품도 그렇게 보기 십상이다.
<산동네 풍경> 1976년 종이에 매직, 수채 52x38cm
그렇지만 붓으로 조각하다’가 말한 이상, 테제는 그런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김종영은 조각가이면서 동시에 서예가인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의 예술론에 입각해 조각과 서예를 동시에 작업했다는 사실을 입증코자 한 것이 이번 기획이다.
조각은 3차원의 입체이다. 그에 비하면 서예는 2차원의 예술이다. 그중에서도 색(色)과 면(面)을 빼놓고 해야 되는 한계 예술이기도 하다. 이렇게 차원이 다른 서예와 조각을 동일한 제작이론에 입각해 작업했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에 없다.
<작품 68-1> 1968년 브론즈 54x43x8cm
인상파 화가 드가가 춤추는 무희를 조각한 것은 유명하다. 이처럼 조각과 회화를 넘나든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젊었을 때 소목가구의 조각으로 생계를 유지한 중국의 근대화가 치바이스는 화가의 길을 걷고 난 뒤에는 조각과 회화가 같은 것이란 따위의 말한 결코 한 적이 없다.
김종영의 시도는 그런 점에서 특별한 것이 된다. 있을 수도 있는 회화와 조각이 아니라 최초라고 할 서예와 조각을 동시 진행했다. 무엇이 작가 김종영의 내부에서 조각과 서예를 동일선상에 놓게끔 만들었는가. 이것이 바로 전시 이해의 키워드이다. 그에게 조각과 서예 동시 창작론의 접점이자 출발점은 추사 글씨이다.
추사 김정희의 <유천희해>(앞쪽) 와 김종영의 <유천희해>
그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다. 전국학생 콩쿨에서 1등상도 받았다. 집에 많은 서예 소장품이 있었고 그 주에 추사의 글씨도 있었다. 흔히 직선과 삐침이 강하다고 여기는 추사체는 실은 여러 과정을 거친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에 부드럽고 유려한 동기창체에서 시작해 두툼한 개성적인 옹방강 필체를 거쳐 예서(隸書) 기운이 강한 추사체로 나아갔다. 추사체를 설명하는 말은 많지만 핵심은 글자의 조형성에의 집착이다. 조형성은 어떤 형태나 형상 혹은 그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성질의 창작 작업이다.
<자작-도중우음(道中偶吟> 1970년 종이에 먹 37.5x51cm
그렇다면 추사체 이전의 글자에는 조형적 성격이 없었는가. 한자는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문자 기호라는 전제 아래 다양한 형상과 형태가 발전해왔다. 또 개개인마다의 성격이 반영된 글자체도 탄생했다.
<북한산> 1973년 종이에 펜, 수채 53x38cm
그렇다면 이들 글자와 추사체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추사체는 형용모순처럼 들리겠지만 글자에 담긴 형체와 형상을 지워내는 데서부터 시작된 글씨체이다. 의미 전달을 위한 문자기호로서 갖추고 있는 재래적인 형상과 형태의 이미지를 버린 것이다. 그리고 글자의 기본이 되는 점과 획에 속도와 흔적과 같은 비정형적 요소를 결합시켰다.
<화초도> 1966년 종이에 먹 각 20x54cm
추사체란 이들 요소를 그때그때의 느낌과 기분, 감각에 따라 자의적으로 조합하고 엮고 결합시켜 추상 조형의 세계를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종영이 자신 조각 속에 재현하고자 한 목표였다.
조각은 애초에 형태의 모방, 재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근대 이후 형태를 버리면서 추상의 세계로 나아갔다. 후기 인상파화가인 세잔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구(球)와 원통, 원뿔로 환원시켜 그릴 수 있다고 여겼다. 세잔의 입각점이 큐비즘 등을 거치면서 추상미술의 기점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김종영은 서양 추상미술에서의 세잔을 자신이 좋아한 추사에서 발견하고자 했고 찾아냈던 것이다.
<작품 79-14> 1979년 자연석 32x12.5x22.5cm
그의 조각과 글씨가 하나의 동일한 제작론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고 여긴 것은 형태를 버린, 형태를 단순으로 환원시킨 추사 추상원리(물론 세잔도 포함된다)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