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개를 그린 그림, 그림 속의 개
전시기간: 2017.12.8 - 2018.4.8
전시장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회화실
신년 벽두부터 남의 얘기를 해서 뭐하지만 들어볼 만한 얘기일수도 있다. 해가 바뀌면 어느 모임이나 직장, 단체할 것 없이 대개 모두 모여 덕담을 나누고 새해 다짐을 함께 나눈다. 그런데 매해 꼭 같은, 틀에 박힌 행사라면 자연히 누구나 심드렁해지게 마련이다.
작자미상 <맹견도> 종이에 채색, 44.2x98.2cm
깜짝 이벤트는 그래서 기획되는데 ‘산으로 모이시오’ ‘해돋이 보러갑시다’ 등등처럼 모임 대표나 기획 담당이 모여 짜내게 된다.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장소에서 어떤 새로운 체험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한 모임의 신년 다짐으로 정말 그럴싸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오래전부터 박물관 같지 않은 신년 이벤트를 열고 있다. ‘박물관 참배합시다’라는 행사다. 일본에서는 새해 첫 날이 되면 동네 신사 등에 참배를 하는 습관이 있다. 그것을 ‘박물관으로 참배하러 오세요’라는 이벤트로 만든 것이다.
작자미상 <삽살개> 지본담채 30.9x29.4cm
이틀에 걸쳐 열리는 행사는 박물관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명품들을 꺼내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박물관 앞뜰에 질펀하게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빙 둘러 지켜보는 가운데 사자춤 놀이, 큰북 공연이 펼친다. 일본 문화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명연주자를 초청해 클라리넷 연주회 같은 연주회도 연다.
김두량 <긁는 개(黑狗圖)> 18세기 지본수묵 23.1x26.5cm
또 이런 행사가 박물관 식구들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홍보에도 신경을 쓴다. 매년 유명 탤런트나 배우를 모델로 내세워 아사히나 요미우리 신문 같은 전국지에 ‘박물관에 참배하러 갑시다’라는 전면 광고를 내기도 한다.
김익주 <매사냥> 18세기
이렇게 해서 박물관은 한바탕 축제 속에 새해를 맞이하고 박물관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한층 뜻 깊은 새해와 또 다른 박물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것은 물론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할 것도 없다.
이암 <어미개와 강아지> 16세기 지본담채 73.5x42.5cm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가을부터 회화실을 리뉴얼해 지난달 초에 다시 문을 열었다. 리뉴얼공사 결과에 대해선 한번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니 우선 다음으로 미룬다. 회화실은 과거 3-4개월마다 그림을 교체해 왔는데 이번에는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때문인지 작은 기획전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김득신 <출문간월도>18세기 지본담채 22.8x25.3 손창근 기탁
재오픈에 이어 곧 다가오는 새해를 염두에 두었는지 첫 번째 전시를 ‘개를 그린 그림, 그림 속의 개’전으로 잡았다. 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개를 그린 것 그리고 개가 등장하는 그림을 온퍼레이드했다. 간지(干支) 동물을 테마로 한 전시는 민속박물관에서도 매년 하고 있는 것이다.
신광현 <초구도> 19세기 지본담채 35.1x29.4cm
애견가나 반려동물로 개를 기르는 이들은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개는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총출동하다시피 해도 개를 그린 그림이 그리 많지 않다.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은 이미 유명해져 있어 이번 기회는 새삼 확인하는 자리 정도이다.
김두량 <전원행렵도>(부분) 18세기 견본담채 7.3x182.7cm
조선시대 개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에 관해 정조 시대의 문장가 이옥(李鈺 1760-1815)의 글을 잠시 인용하고 끝을 맺는다. 그는 ‘고양이를 탄핵한다(劾猫)’라는 색다른 글을 지은 적이 있다. 키우는 개가 고양이를 보면 물지 못해 안달인 것을 보고 개에게 ‘왜 그러는가’ 라고 묻자 개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개왈, 제대로 쥐도 잡지 못하는 주제에 주인 곁에 착 달라 붙어 ‘응앵 거리면서 마치 배고픈 아이가 밥을 찾는 양하니 밥상을 물리기도 전에 먹을 것을 나눠 받아 배불리 먹고 때때로 다시 생선과 고기로 사치를 누린다’고 탄핵하며 자기 신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작자미상 <평생도-돌잔치> 19세기 견본채색 53.9x35.2cm
“신은 비록 미천하고 용렬하오나 그 지키는 바가 도둑입니다. 밥을 물에 말아 국을 타고, 한 노구솥 밥에 태반이 콩인 것으로 하루 두 번 배고픔을 면하는 것은 오로지 주인의 은혜입니다. 그리하며 밤이면 감히 눈을 붙이지 못하고 구멍마다 돌면서 경계하여 오로지 도둑을 잡으려는 것입니다. 저 울타리 밖의 도둑도 몰아 쫓아내고자 하는데 하물며 집안의 도둑이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저것을 보면 반드시 쫓아 버리고 마주치면 물어뜯는 이유입니다.... 어찌 주인께서는 무슨 사심이 그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십니까?... 장차 고양이는 배가 불러 죽고 신은 가마솥에서 죽게 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실시학사완역 이옥전집 인용)
작자미상 <평생도-돌잔치>(부분)
개가 이렇게 말을 마치자 ‘주인은 고양이를 소나무 우거진 산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하면서 글의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