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청년의 초상
장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간: -2017.11.13
글/ 김진녕
식민과 분단, 내전, 산업화, 민주화 등 근대화 사건의 백화점 한반도
서구의 300년을 50년 만에 압축 통과한 한국 청년의 가파른 자화상
1.
권력 1번지로 불리는 광화문 앞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청년의 초상>(~11.13)이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주최측은 전시 서문에 <청년의 초상>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청년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살펴 보는 일은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됨은 물론 오늘날 청년의 문제를 깊이 있게 보는 시각도 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역사적으로 변천되어 온 청년의 모습을 특별히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술 작품의 작가는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독특한 생각으로 작품을 창작하였지만 작가와 작품이 속한 시대에 따라 독특한 시대성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우리는 이런 작품을 통해 시대별 청년의 모습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생생하게 접해 볼 수 있다.”
청년은 육체적으로 나이가 젊은 사람을 뜻한다.
또한 불만족과 도발의 상징이기도 하다.
기원전 1700년 전 수메르 시대에 쓰인 점토판 문자에도 ‘요즘 젊은 사람은 너무 버릇이 없다’는 말이 등장한다.
생태계에서 대부분의 성체는 번식이 가능한 개체가 되면서 바로 독립적인 생존에 나선다. 하지만 영장류인 사람이 만든 ‘사회’라는 시스템은 육체적으로 성체가 된다는 것과 사회적인 성체로 인정받는 것이 구조적으로 다르게 만들어 냈다.
육체적으로 만렙을 찍었지만 사회적으로 애송이 취급을 받는 지점에서 청년의 불만과 도전이 시작된다. 화가 나 있는, 불만족한 청년은 육체적으로 이미 성체로 꼭지점을 치고 올라왔지만 사회적으로는 성체가 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 사이의 존재다.
‘버릇없는 젊은애’에 대한 끌탕과 ‘꼰대’에 대한 경멸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30세로 초단축되지 않는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갈등인 것이다.
2.
전시에 등장한 1940년대, 195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한국의 청년 역시 불만과 도전의 정점이다.
이들이 더 특별한 것은 20세기 한반도에 사는 청년이 동시대 어느 지역의 청년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가혹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60년대 이전 한국의 청년은 도전보다는 생존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절 화면 속의 청년이 그렇게 끈끈하고 강렬한 시선을 내뿜는지도 모른다. 생존 본능은 무엇보다도 강렬한 것이다.
40년대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청년은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어 교육을 받았지만 그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독립보다는 잘해도 2등 시민이라는 열등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문신의 자화상 속 청년은 비스듬한 눈빛으로 화면 밖을 쏘아보고 있다.
벼락처럼 찾아온 해방과 이어진 한국전쟁의 살육전은 완전한 파국이었을 것이다. 20세기 전반에 태어난 ‘반도인’에게 영원할 것 같았던 제국의 몰락과 이어진 전후방이 없이 온 강산에 벌어진 살육극의 충격은 김만술의 구부정하지만 강인한 조각상 <해방>(1947)이나 이수억의 <구두닦이 소년>(1952), 임응식의 <구직>(1953)에서 확인된다. 후일담 격인 서용선의 <아버지>(2008)는 얼떨결에 전쟁을 마주친 당대 청년의 공포를 충분히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수억 <구두닦이 소년> 1952 캔버스에 유채, 개인
서용선 <아버지> 2008 캔버스에 아크릴, 개인
전시는 60년대 이후의 청년은 도회에 사는 공장 노동자나 대학생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대학생이 관심을 뒀던 도시 빈민 문제나 민주화 시위를 반영하는 시각자료만 등장하고 있다. 저항과 청년 문화,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개별화되고 있는 젊은 작가의 성과를 펼쳐보이고 있다.
주재환 <몬드리안 호텔> 1980(복제) 개인
3.
전시가 2000년대 들어서 유행하고 있는 ‘고난의 청춘’을 내세운 마케팅 상품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다만 이번 전시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는 장소와 전시관의 성격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될 것 같다.
최민화 <분홍-개같은 내인생> 1993, 캔버스에 유채, MMCA
11월 초 신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 임명됐다. 야권에서 신임 장관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고 현 야권에 호응하는 매체에서도 신임 관장의 편향적인 이념에 대해 문제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정권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일종의 정권 홍보용 진열장 구실을 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3공화국의 산업화 과정을 길고 세밀하게 전시했다. 정권이 바뀐 뒤에는 이전 정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성과와 진행 과정이 디테일이 풍부해졌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면 왼쪽 첫 번째 건물이 재경부 건물이고 오른쪽 첫 번째 건물이 과거 문화체육부 건물이었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역사가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되고 재구성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5년마다 바뀌는 시한부 정권의 트로피 진열장으로 여겨지게 된다면 이또한 코메디의 현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