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쇠‧철‧강-철의 문화사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 간 : 2017.09.26.(화)~2017.11.26.(일)
글/ 김진녕
고고학에서는 선사시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로 나눈다.
철기시대는 곧바로 역사시대로 이어진다.
철을 만드는 데는 고도로 집약된 단계별 노동과 불을 조절할 줄 아는 지식이 필요했기에 철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문명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쇠를 이용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역사를 기록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산업재로 따지자면 인류는 여전히 석유와 함께 철을 현재 인류 문명의 양대 축으로 이용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1월26일까지 특별전 <쇠‧철‧강-철의 문화사>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인류사에서 철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잡게 됐는지를 유물과 그림, 도판, 동영상, 표로 보여주고 있다.
시작은 우주에서 온 운철. 아마도 역사 시대 이전에 철을 생산하기 위해 땅을 파고 들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표면에 노출된,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을 썼을 것이다. 전시장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운석이 전시됐다.
철기 문명이 가장 이르게 시작된 것으로 믿어지는 지역인 현재 터키 영토 일대와 가까운 서아시아에서 출토된 우라르투 왕국의 철검과 한나라의 철재 등잔 등 철기 문명 초반부의 성과도 유물로 보여주지만 전시물 대부분은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철기 유물이다.
철기의 등장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준 갑옷이나 칼, 대포, 총 등 무기류와 솥이나 쇠부뚜막, 철마 등 무덤 부장품, 문고리 등의 생활용품과 삽이나 낫같은 농기구도 보여준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철, 인류와 만나다’에서는 운철을 통해 철을 접한 선사시대의 인류가 철을 어떻게 가공하는 기술을 익히고 발전시켰는지를 주로 도표와 동영상 등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철광석을 가공해 철재 도구를 만드는 과정까지 프로젝션 매핑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과정은 교과서 부교재로 쓰일 만하다.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하는 ‘제련’, 여러 종류의 철을 강철로 바꾸기 위한 ‘제강’, 강철을 두드려 철기를 만드는 ‘단야’ 공정이 그림과 도표, 동영상으로 제시돼 이해를 돕는다. 단어만 놓고 보면 이해하기 어렵던 일련의 연속 공정과 그에 따라 파생된 단어의 의미를 보여준다.
2부 ‘철, 권력을 낳다’에서는 철기로 인해 생산력 증가와 전투력 증가에 따른 국가 권력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철이 곧 권력이었다,는 가장 드라마틱한 예시로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다량의 덩이쇠(잉곳)가 등장한다. 우리가 지금도 ‘쇠 금(金)’이라고 읽는 금이 사실은 문명 시대에 들어서도 쇠라는 단어 안에 금과 철이 거의 동등한 귀물이었고, 철은 흑금(黑金), 우리가 지금 금이란 단어로 인식하는 것은 황금(黃金)이란 ‘사소한 색 차이’로 분류될 정도로 흑금과 황금은 어깨를 나란히 한 귀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황남대총이란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덤을 조성할만한 당대의 권력자가 무덤에 부장품으로 덩이쇠를 넣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흑금(철)을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는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부 ‘철, 삶 속으로 들어오다’는 신라 말기나 고려시대에 흑금 생산이 보편화되면서 삶의 도구로 자리잡은 철의 쓰임을 보여준다.
후기 신라 시대의 석불 대신 거대 철조불상을 조성한 고려시대의 보원사 터에서 나온 철불이나 칼에 은으로 화려한 문양을 집어넣은 고려인의 세밀한 기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덤에서 나온 쇠로 만든 말, 쇠톱이나 낫같은 농기구, 조선시대의 문고리같은 생활용품이 등장해 우리 역사에서 쇠의 쓰임이 어떤 식으로 확산됐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중간 중간에 현대 미술 작가가 철을 주재료로 써서 만든 작품(최기석의 <철의 숲>과 윤정섭의 <철판+철사+납>)도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조를 받아 전시장에 등장해 전시의 다채로움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도 곁들였다.
전시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살포와 궤장을 함께 전시한 부분이다.
이는 철이라는 재료의 변주를 통해 역사의 상징, 공동체의 상징 체계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물로, 살포는 삽모양의 농기구이고 궤장은 조선시대 왕이 70세 이상의 나이를 먹은 신하에게 내린 지팡이(장, 杖)>와 의자(궤, 几)다.
살포는 길이가 2m가 넘는 일종의 지팡이인데 그 끝에 손바닥만한 삽이나 괭이 또는 주걱 모양의 날을 단 농기구로 자루가 길어서 논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도랑을 내거나 작은 물꼬를 트고 막을 수 있다.
조선의 왕이 높은 벼슬을 지낸 나이든 신하에게 내린 지팡이에는 끝 부분에 무쇠로 만든 삽처럼 생긴 뾰족한 것이 달려 있다.
왕이 신하에게 지팡이와 의자를 하사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겨 하사 행사를 잔치처럼 열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 남긴 게 사궤장 연회도 화첩이고 이중 보물로 지정된 것도 있다.
조선 현종 9년(1668) 11월 당시 원로대신이었던 이경석에게 현종이 내린 의자 1점과 지팡이 4점 그리고 이를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 1점 등 총 6점의 유물이 보물 9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 살포와 왕이 하사한 지팡이를 함께 전시한 이유는 모두 농경 사회를 상징하는 삽이 달려있는 지팡이라는 점 때문이다.
전시측에서는 “살포는 농사에서 물꼬를 막고 트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살포는 실제 사용된 도구라 보다는 당시 치수를 주관하던 통치자가 지녔던 상징적인 도구로 여겨진다. 실제로 살포는 주로 고대의 수장층 무덤에서 출토되며,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연로한 재상에게 하사하는 궤장의 하나였다. 살포가 갖는 권력의 상징성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철로 만든 치수의 도구인 살포와 왕이 하사한 지팡이가 실은 같은 상징 체계를 쓰는 것이고, 이는 한반도에서 지난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한 여러 이름의 나라가 사실은 농경에 뿌리를 둔 국가단위였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