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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려다보기’를 들여다보기 <김희자>전
  • 3222      

기간 : 2017. 8. 30-9. 5.
장소 : 갤러리 올

글/ 조은정(미술사학자, 미술비평)

 “본래 마음은 거울처럼 무엇인가가 비추어지지 않으면, 공간도 시간도 본래 없는 절대적으로 빈 공(absolute empty)의 상태이다. 그러나 마음에 바라는 뭔가가 기포처럼 생겨나서, 욕망과 집착으로 왜곡된 허상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단지 한 개의 버블과 같은 허구인줄을 자각하지 못한다. 늘 뭔가를 도모하고 바라는 마음은 그것이 선이던 악이던 늘상 구하고, 분노하고 질투하는데, 사람들은 그 감정이 자아라고 착각하고 그 파도 거품 속에서 허우적이며 산다. 진정한 예술은 그 순간을 멈추어서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삶의 숙성을 위한 효모제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작가 노트) 

  ‘디려다보기’라는 제목이 붙은 작가 노트를 받아들었을 때, ‘들여다보기’의 오기인 줄 알면서도 김희자의 작품을 설명할 때는 ‘디려다보기’라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발을 디디고 혹은 현실에서 떠나지 않은 채 내면을 응시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자리에 서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순간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간 몇 년 동안 거울, 나무, 오브제 그리고 자연의 묘사라는 구성을 벗어난 적이 없으나 작가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해석과 목표는 변화하였다. 각성(覺性)을 현상학적으로 설명하고 싶어하던 그는 이제 생을 관조하고 그리고 자연과 혼연일치되는 지점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있을 뿐 생의 비밀이란 없다는 듯 그는 무심하게 집 앞까지 들어오는 햇빛을 그리고 파도를 움켜쥐었다가 펼쳐 우리에게 손바닥 안의 세상을 구경시킨다.     


  김희자의 파도치는 바닷가 그림 앞에 서서 호퍼를 떠올렸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일견되는 고독이 그의 그림에도 스며있다. 그것은 모국어로 일상의 감정을 말할 수 없고 뜨거운 밥에 김치를 얹어 먹을 수 없는 이국에서의 생활에서 오는 고립감일 것이다. 키가 큰 에드워드 호퍼가 어려서부터 느꼈던 상태는 사실 고립이었을 터이고 우리는 그의 화면에서 인간 보편의 고독한 순간을 본다, 그래서 노랑머리 혹은 중절모자를 쓴 메부리코 신사마저 나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 인간 보편의 정서라 일컫는 어떤 것이 바로 그의 화면에 있기 때문이다. 호퍼의 그림이 갖는 보편성은 그의 아내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이 가지고 있던 여성적 시선이 강하게 작용했던 데 있을 것이다. 김희자의 화면에 존재하는 감정적 묘사를 통해 호퍼를 떠올리는 것은 그 고독한 미국의 일상을 바라본 여성적 시선의 일면이 공유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리즈 작품 〈사계〉는 문을 열면 안의 풍경이 펼쳐진다. 문밖은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자연의 계절이지만 문 안의 세계는 작가의 맘의 세계이다. 봄은 여전히 춥고 여름은 화사하다. 〈겨울〉에는 문을 열어주어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가 문틀에 앉아 있다. 자유를 꿈꾸지만 결코 그러지 못하는 작가의 슬픈 겨울이 거기에 동결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프리다 칼로가 보여준 맘의 상처가 우리 맘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갇힌 문안의 사람 모두에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김희자의 작품에서 거울은 오브제이자 그림을 그리는 물감과 같은 다채로운 색깔이며 작가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는 어느 날 밖으로 나가 잔디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을 나타낸 것이다. 나무는 잎새를 다 떨구고 나뭇가지만 몸뚱이에서 벋어나고 있었는데 그 나뭇가지 끝에 새들의 둥지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둥지는 모두 비어있었다. 순간 느낀 것은 자유, 그것이었다. 갑자기 옥죄는 데서 풀려난 것만 같은 그 홀가분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비슷한 연배의 여인들일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후 오롯이 이제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그 시간의 축복을. 자식들이 모두 떠난 뒤에 느끼는 빈 둥지 중후군은 중년을 넘은 여성의 외로움을 일컫겠지만 사실 빈 둥지를 바라보며 느끼는, 또 다른 맘을 작가는 안다. 우리는 화면 속 움직이는 나뭇가지를 통해 바람소리를 듣는다. 봄이 되면 가지에서 새 잎이 돋아나겠지만, 정작 인간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 그것은 생에 대한 슬픔 감정이 아니라 생의 이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둥지가 비었을 때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어머니인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모습이라니. 자유와 고독은 같은 종류의 감정일 수 있음을, 똑같이 살갗이 벗겨지는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지나서야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작가는 보여준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과 회색빛 나뭇가지 사이에서 이리저리 둘러 볼 수 있는 다면적인 구성은 평면의 회화를 공간 멀리 확장시킬뿐더러 입체감을 부여한다. 6개의 면으로 나뉜 나무판은 거울을 매개로 사선으로 이어진다. 거울에 비친 나뭇가지들은 구불거리며 잔상을 남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나무. 그것은 바로 작가이자 인간이라는 존재의 은유임은 물론이다.


  작가는 만공스님의 임종게를 들려준다. “내가 그동안 나로 살았는데 네가 나로구나.” 이 세상이 허상인데 실재라고 믿고 살았다는 반성, 진실 그 자체 초월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솔직한 언어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우리 마음이 거울과 같아서 아무 것도 없었는데 집착에 의해 분별하고 그래서 나와 같지 않은 맘에 괴롭다. 희로애락은 분별에서 나오므로 그것만 없애면 된다. 맘은 본디 고요하고 정적인 것이므로. 그래서 그의 작품에 사용되는 거울 조각은 작품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여여한 본디 그 모습의 존재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작품 안에 위치하여 거울인지 작가의 붓질에 의해 나타난 화면인지 알 수 없을 때조차 그것은 거울이 지닌 속성, 비치는 것으로 작동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서 알게 되는 인생의 비밀 그것은 에드워드 호퍼가 관찰한 고독과 인간의 허무한 몸짓과 닮아 있다. 미국이라는 넓은 땅,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서 외로이 하늘을 응시하는 작가의 일상을 상상하자니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키큰 에드워드 호퍼가 생각난다. 그 지독히 주변이면서 중심인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탐구해 들어가는 예술가의 자세를 공유한 작가의 세계를 뒤돌아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글/ 조은정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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