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
장 소 :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기 간 : 2017-07-14 ~ 2017-10-09
글/ 김진녕
그리고 그 옆엔 비슷한 시기의 인도네시아 록밴드 음반 아카이브가 있다.
동시대 유일한 샘플이자 초월적 슈퍼파워인 미국의 대중문화 아이콘인 비틀즈나 슈프림즈를 본 딴 아류 밴드들. 이른바 커버 그룹의 앨범이 도열해 있다. 더벅머리에 허리춤이 높은 판타롱바지를 입은 이들이 등장하는 앨범 커버는 피부색만 좀 더 옅게 했다면 그시절 한국 밴드의 앨범 커버를 모아놓은 것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천경자 <헬기 수송작전>(좌상) <소장굴 수색작전>(우상) <갈대 수색작전>(좌하) <매복작전>(우하) 1972, 각 28x38cm, 종이에 잉크, 서울시립미술관
김추자 아카이브와 인도네시아 록밴드 설치 작업 사이에는 1972년 종군 화가로 월남을 방문했던 천경자의 월남전 스케치 몇 점과 당시 신문 보도 스크랩, 최규성의 월남전 종군 ‘위안 공연단’의 사진이 걸려있다.
인도네시아 코너 옆에는 한국 태생 덴마크 작가의 영상 설치 작업이 있다. 2차 대전 뒤 월트 디즈니가 미국 국방부에 납품한 성병 교육 필름과 성병에 걸린 한국의 기지촌 여성이 집단 수용됐던 몽키 하우스에 대한 기록, 한국 일용직 여성의 노동 현장을 관찰한 필름이 걸려있다.
그 옆으로는 김소영이 촬영하고 수집하고 편집한 60~70년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유랑밴드의 사진과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고, 국내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여성국극에 대한 자료와 인터뷰 영상, 일본의 60~70년대 히피 현상 등도 전시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디바:진심을 그대에게>(~10월9일)전은 전시장을 그렇게 꾸미고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기적으로는 1960~70년대에 초점을 맞추고 정치 경제적으로 근대 국가를 넘어서지 못했던 이들 국가에서 2차 대전 이후 반강제적으로 전파됐던 정치 이데올로기를 동반한 미국식 대중문화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며 어떻게 수용되고 반응을 일으켰는지를 전시를 통해 복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은 미국식 또는 미국 대중문화이다.
미국은 1940년대 2차 대전을 통해 점령군으로 일본과 한국에 주둔을 시작한 이래 아시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50년대의 한국전쟁, 60년대의 베트남 전쟁, 70년대의 냉전을 통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미군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정치 제도나 대중문화에서 미국식은 동아시아에서 2000년간 존재했던 중국식(유교적 가치관)의 절대적인 영향력이나 존재감을 근 50년 만에 완벽하게 퇴락시켰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게 ‘미국식’이다. 미국식 교육 제도와 정치 제도, 영화와 음악, 음식, 도색잡지는 현지 주둔 미군이라는 거대 집단을 통해 일본과 베트남, 괌, 한국 등을 통해 수직으로 아시아에 쏟아졌다.
미군 부대 하우스밴드에 젖줄을 대고 있는 히식스나 김시스터스, 신중현 같은 존재가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자로 부상하는 ‘70년대 한국의 현상’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이 전시는 전시물로 알려주고 있다.
‘미국식 퇴페 문화’라고 지목하며 당시 ‘우국지사’들이 하루 걸러 한번씩 미디어를 통해 욕을 쏟아붓던 미국식 대중문화의 대명사였던 김추자의 노래와 춤, 당시 박정희 정부의 외화벌이 상품이던 ‘월남파병 장병’의 위문 공연에서 ‘자유대한 전사’의 위문을 위해 벌거벗고 춤추는 누이를 품에 안고 소비하는 20대 군인 남자를 담은 최규성의 사진, 월남 패망을 목전에 둔 1972년 한국 정부가 보낸 종군 화가 천경자의 스케치가 어우러져있는 공간은 머리는 유교적 엄숙주의에, 정치는 사회주의적 국가총동원 체제에, 몸은 미국식 ‘퇴폐문화’에 쏠려있는 1970년대 한국의 총체적 난국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전시측은 배포한 자료를 통해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는 미소간의 냉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대변되는 정치·문화적 자장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에서 후기식민 문화에 어떠한 방식으로 현지화 되어갔는지에 주목한다. 이 시기 한국이 ‘군사독재,’ ‘산업화,’ ‘대중문화’와 같은 다양한 표제어로 기억되는 격동의 시대였던 것처럼 식민의 경험을 공유하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역시 조금의 편차는 있지만 유사한 역사적 궤도 위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자장 안에서 이번 전시는 폭력과 억압에 의해 ‘퇴폐’로 낙인찍힌 하위문화와 가부장적 군부문화 속에서 소외되었던 여성과 타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이를 김추자, 한대수 등으로 대표되는 60-7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 아이콘과 동남아시아의 대중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제시한다”고 밝혔다.
지역적, 시기적으로 외부의 변수에 휘둘리는 사회 현상을 주시하고 있는 이 전시에서 또 하나의 축은 여성이다. 제목 ‘아시아 디바’나 전시장 들머리에 놓여있는 김추자 아카이브가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이 전시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정치 사회적 격변기에 시스템으로부터 어떻게 쓰임을 당하고 대접받았는지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디바’는, 위안부나 여공, 매춘녀, 날품팔이같은 험한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준 누이요 언니, 엄마, 이모, 할머니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시장 초입에 대중가수 ‘김추자’의 이미지와 관련된 설치가 놓여있지만 이 전시가 김추자 회고전이 아니라 전쟁같은 60~70년대에 절벽같은 상황에서도 애써 살아남았던 아시아의 수많은 ‘디바’에 대한 전시라는 얘기다.
전시물 상당수가 전쟁 현장이나 노동 현장에 위문 공연을 나섰던 여성, 해외주둔 군인을 상대로 돈을 벌었던 성 노동자, 폭력적 상황에서 마음에 쌓인 분노와 억울함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던 베트남의 무당, 남자들의 쾌락 소비와 여자들의 쾌락 소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장 급진적인 성역할 전도를 은밀하게 시도한 여성국극 등 2000년대 이후의 여성주의적 시각을 반영한 전시물과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점은 60~70년대 한국 문화 하위 장르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으로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2000년대 식으로 재단한 한국 대중문화, 또 다른 이에겐 멀티 초점으로 너무 많이 담으려하다가 탈이 난 전시로 보일 수도 있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출신 대중음악 가수가 수집한 70년대 한국 대중가요 음반 커버와 박찬경이 70년대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만든 2004년작 작품을 별도의 공간에 설치했다. 이 전시물은 70년대라는 시간대만 공유했을 뿐 이번 전시에 출품된 대다수 전시물과 가장 멀어 보였다. 그래서 전시장을 떠나는 관람객에게 ‘진심을 그대에게’란 전시 부제가 흐릿해져 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부리는 코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