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전시기간 : 2017.7.14 ~ 10.1
전시장소 : 동강사진박물관 3전시실
글: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정동석, 반풍경,흑백사진, 1983
이른바 풍경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아름답고 웅장하고 그럴듯한 장관이나 드라마틱한 장면하고는 무관한 그야말로 밋밋하고 흔한 주변의 자연 모습이었다. 그의 사진은 삶의 주변에 늘상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풍경이 전부다. 무성히 자라난 잡초와 들꽃이 있는 대지이자 늘 그 자리에 있는 앞산이고 강물이다. 이른바 버려진 땅, 제초제가 뿌려진 불모의 공간, 인간의 욕망이 깃든 황폐화 된 장소들이기도 한데 그런 곳에서도 악착스레 생명을 이어가고 서로 서로 어울려 공존하는 자연의 모습이 사진 속에 들어와 박혀있다. 그는 그 같은 자연 풍경 안에서 이른바 평등사상, 한 사상, 큰 통일사상 같은 것이 스며있다고 보았다. 그는 들판, 땅, 산과 물을 그토록 여러 번 찍고 있지만 사실 단 하나도 똑같은 것은 없다. 동일한 풍경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시간의 추이 속에서 사라지기 때문이고 늘상 변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가 찍은 풍경에는 사람의 자취가 하나도 없다. 오로지 자연 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그 어딘가에 인간들 삶이 관통한, 개입한 흔적이 묻어 있는 들과 산, 물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때가 은연중 스며든 풍경이다. 벌목을 하고 조림으로 때운 자리, 제초제를 뿌려 죽어 가는 들판에 무성히 자라는 들풀이나 잡초, 그 언저리 어디선가 부지런히 자라 올라오는 들꽃이나 억새들, 오염되고 썩어 가는 물이 돌멩이에 선연한 때 자국을 남긴 모습들이 그렇다. 그런 자국, 상처와 흔적들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자연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스며들어가고 그런 경과 속에서도 자연이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해가면서 서로가 상생하는 지를 작가는 바라본다.
정동석, 서울묵상, 칼라사진
그러면서도 그 사진 안에는 어떠한 풍경적 단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곳이 어느 곳이고 어떤 풍경이라는 관념에 기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저 정동석의 사진은 자연의 사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계절의 다양한 변화, 자연의 시간적 추이와 진행만이 그렇게 사진으로 응고되어 있다. 그 사계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를 지니고 있는 자연의 모습이고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그 같은 자연의 사계를 있는 그대로 칼라사진으로 담는다. 그는 선명하고 정직한 칼라사진을 통해 우리의 자연, 자연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칼라사진은 자연의 본 모습을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자연의 본래의 색, 모습을 그대로 떠낸다. 칼라사진, 색을 통해 철저하게 색, 그 자체로만 보여주면서 송두리째 자연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모두 다 말하고자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균질하고 평등한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로 보려는 시도가 자연을 평등하고 동등하게 생각하는 시선과 함께 한다.
그는 또한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데 매우 적합한 매체라고 여긴다. 그는 드라마라든가 쓸데없는 관념을, 지나친 이야기 없이 자연을 찍고자 한다. 과장하지 않고 찍는다는 사실, 그저 그렇게 있는 자연은 그냥 땅, 산, 물 일 뿐이다. 아무 욕심도 없이 대상을 보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상태를 찍고 있다. 바로 욕심과 관심의 딱 중간이거나 그 너머에 있는 시선이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실 단순하고 명료하다. 자신 앞에 존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어떠한 선입견이나 관념이나 드라마를 씌우지 말고 투명하고 깨끗한 본래의 시선으로 쳐다보라는 것 같다. 뜻을 얻는 순간에 말은 우리의 감각과 인식의 범위밖에 놓인다. 알다시피 우리는 학습과 정보를 통해 세계를 인지하고 이를 통해 바라본다. 세계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온갖 관념과 수사와 주관으로 촘촘히 짜인 그물을 덧씌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좋은 미술/사진은 그러한 선입견과 상투형에 길들여진 시선을 거둬내고 존재를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세계/자연을 낯설고 신선하고 경함하게 되는 동시에 인간의 눈과 경험과 지식에 의해 길들여진 갓이 아니라 세계와 자연이 뿜어내는 생명력과 기운, 그리고 그 안에서 무수히 자라나는 온갖 생명체를 경이롭게 만나게 된다. 자연이란 생명체를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한 작가가 이렇게도 바라보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우쳐 주는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