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라벨과 미술의 연결고리
전시기간 : 2017.6.21 ~ 8.25
전시장소 : 서울 성동구 레이블갤러리
글: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무엇보다도 견고하게 밀착되어 있거나 일시적이고 유연하게 붙어나가면서 여러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실용적 차원이 우선되는 화면이다. 그러니 라벨은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 보다는 그것이 자리해야 하는 사물에 달라붙어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존재감을 부여 받는다. 회화가 장방형의 사각형 평면을 숙주로 삼고 조각은 물질이 특정 공간을 점유해나가면서 존재한다면 라벨은 다채로운 형태감을 지니고 그만큼 다양한 질감을 거느린 온갖 상품의 여러 부위를, 그 표면을 부분적으로 점유해나가면서 회화/디자인/그래픽을 넘나드는, 아니 그 모두를 뒤섞어 이루어진 매력적인 표식이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한국현대미술가들 중에서 라벨이 있는 특정 사물을 빌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이자 그 라벨/상품을 해석하고 있는 작품들을 모았다. 라벨이 들어간 미술작품을 수집한 전시이기도 하지만 단지 소재에 국한한 협애한 전시라기보다는 그 라벨/라벨이 부착된 상품(오브졔)을 보는 작가들의 시선과 감수성을 엿보고자 한 전시다.
레이블갤러리전시, 김수강, Coffee Cups_1998_Gum Bichromate Print,57X21cm
김기라의 회화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소모하는 여러 기호품을 정물화의 양식 안에 배치하고 있다. 빼곡하게 들어찬 음식물로 혼란스러운 테이블위에는 끝없는 욕망과 서구식 식성으로 변질된 우리의 식문화와 다국적 기업에 의해 점유된 작금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깃들어 있다.
김수강의 검프린팅기법으로 제작된 사진 속에는 종이컵이나 용기 등 단순한 일상의 기물들이더없이 고요하게 정박되어 부동의 존재로, 침묵으로 절여져있다. 해서 보는 이들은 사물, 그 사물의 피부에 붙은 라벨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그것이 지니고 있는 비밀스러우면서도 친밀한, 그러면서도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다가오는 사물의 존재성, 그것이 단독으로 설정되는 순간 뿜어내는 알 수 없는 아우라를 음미하게 된다.
김신혜는 생수나 음료수, 술병의 표면에 붙은 라벨에 그려진 자연이미지에 주목한다. 전통적인 동양화 채색 기법으로 재현되고 있는 이 그림은 특정 상품이 환유하는 천연의 자연이미지를 발산하는 기호에 주목한다. 작가는 그 이미지를 풀어헤쳐 확산시키면서 이를 산수화의 맥락 아래 재배치시킨다. 이미 산수화가 지향하는 의미망이 그 라벨에 은닉되어 있음을, 동양화적인 요소가 그곳에 서식하고 있음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석미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소소하고 미미한 것들, 소모되는 모든 일상의 용기들을 심플하며 그래픽한 회화적 기법으로 구현했다. 라벨을 두른 여러 오브제들은 형태와 색채, 문자 등을 거느린 체 친근하고 귀여운 얼굴로 살아난다. 그림으로 환생한, 아니 그림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어떤 몸으로 환생하고 있다.
서지선은 단독으로 설정된 하나의 샴페인 병을 분절된 터치, 색면의 콜라주라는 흥미로운 기법으로 그려 보인다. 유사한 색 톤, 비현실감이 감도는 색채로 조율되어 평면성이 강조된 화면에 단호하게 직립한 병과 그 병에 붙은 라벨은 사물에 대한 일종의 페티시즘이나 부드럽고 몽환적인 상품미학의 한 자취를 거느린다.
성정원은 다양한 일회용 컵을 사용한 후 이를 수집했다. 수집한 컵들은 하나씩 사진으로 기록되었다. 유사한 컵들은 그러나 미세한 차이를 발생시키면서 배열된다. A4용지 한 장에 프린트 된 각종 컵들의 표면에는 그만큼 다채로운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유사하면서도 무수한 차이를 발생시키는 사물들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의 주목과 그 일상 안에서 차이를 발생시키는 감수성의 놀이를 펼쳐 보인다.
유용상은 와인 병과 그 병에 부착된 라벨을 극사실기법으로 그린다. 와인 병과 라벨은 이미 그것 자체로 매력적인 이미지를 안겨주기에, 충분히 회화적이라서 작가는 그 표면에 기생해 이를 재현했다. 수공의 솜씨와 핍진한 사실성으로 구현된 와인 병은 정물이자 풍경이 되었다.
윤정미는 수많은 상품(라벨을 부착한 온갖 사물들 )으로 가득 찬 실내 풍경, 특정 상점을 기록했다. 이 다큐멘터리 사진은 특별한 공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물, 그리고 그것들로 기술되는 인간의 특별한 문화에 대한 유형학적 기록이자 그 사물들과 함께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주은은 직립한 인간의 시선, 주체의 독점적 시선이 아닌 바닥에 붙어나가는 특이한 시선, 수평의 시선으로 사물을 포착한다. 매력적인 특정 사물(라벨이 부착된 상품의 표면)의 단면을 잘라나가면서 바닥에 주목하는 이 시선은 익숙한 사물을 매우 낯설게 인지시키는 한편 관습적인 바라봄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것들의 회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