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한중옥展
전시기간: 2017.6.14 - 6.19
전시장소:서울 공아트 스페이스
글: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한중옥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이 경험은 그의 작업의 척추에 해당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제주의 자연 풍경만을 소재로 일관되게 다루고 이를 공들여 재현한다.
그러니까 그는 제주도라는 풍경, 환경, 그 바깥으로부터 자신의 감각과 인지 행동이 구성되었고 그에 대한 지각을 통해 비로소 주체가 된 이다. 이처럼 주체를 만드는 것은 늘 상 이렇게 바깥이다. 라이프니츠의 말처럼 ‘주체가 먼저 있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선택을 통해서 내 주체가 구성 된다’고 볼 수 있다.
한중옥의 작업은 항상 그렇게 제주라는 공간과의 접속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그의 그림을 산출하는 거대한 자궁은 제주도라는 공간이고 그는 그 공간과의 접속에 의해, 그 외부에 의해 구축된 내부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중옥, 종이에 크레용,102x79cm, 2015
제주 공간과의 교감 및 그 공간에 기생하고 있는 자기 몸의 교섭과 감염, 감화의 결과가 작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작가/작가의 작업을 형성하는 결정적 정서는, 자신의 몸을 감싸는 제주 자연과의 끝없는 접속, 자기 몸의 감각의 결과에 해당한다.
이처럼 한중옥의 그림은 자신의 삶의 근거지이고 환경인 제주 공간에 대해 지각된 것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그림은 자신의 몸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지각과 감응의 소산이자 자기 몸 바깥에 자리한 풍경(돌과 나무)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의 수행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중옥이 주목한 풍경/소재는 매우 미시적이고 부분적이자 일종의 절취된 편린에 해당한다. 그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파고들어가 그 어느 부위를 확대한다. 그로인해 익숙한 사물은 불현 듯 낯선 존재로 다가온다. 풍경과 사물이 예술이 되는 것은 이처럼 습관적인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장면을 만나는 체험, 기존의 관습적인 사고나 이해가 문득 멈춰선 지점에서 특정 사물을 ‘우발적’으로 만날 때이다. 사물의 존재성이 특정 주체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보여 지는 형국 말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풍경, 사물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특정 주체에 의해 해석되고 접속되어 인지될 뿐이다. 니체의 말처럼 사실은 없으며 오직 해석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따라서 그 자체로 자리하는 풍경은 없다. 오로지 누군가가 본, 해석한 풍경만이 있을 뿐이다.
한중옥이 보여주는/다시 보여주는 풍경은 분명 제주도 바닷가에 산개한 바위와 돌, 소나무들이다. 익숙한 대상들이고 흔한 소재들이다. 그리고 그는 이 특정 소재를 정교한 재현술에 의지해 그린다. 그가 다시 보여주는 대상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낯설면서도 모종의 기시감을 건드린다. 사진처럼 다가오는 정교한 재현술에 놀랍기도 하고 익숙한 대상이 희한하게 흔들리면서 다가오는 체험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것들이 묘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아름다움이란 기실 우리의 지각을 일으키는 외부의 것과 그 변화를 체감하는 내 몸의 반응, 운동의 결과다. 작가는 제주 바닷가에 처연하게 자리한 온갖 형상의 돌과 주변 소나무를 주목했다. 그 사물이 지닌 피부가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자신의 감각에 박혔다.
그는 단지 돌과 나무를 관조하거나 판단한다기보다는 특정 공간에서 마주한 것들이 자기 몸, 감각기관에 반응하는 것을 기록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돌과 나무는 그 주어진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피부, 질감이 자아내는 기이한 감각이 화면/표면으로 밀고 들어와 점유하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한중옥은 자연이 만든 매혹적인 돌과 나무/자연을 발견했고 이를 찬찬히 관찰한 후에 그것이 산출한 의미효과, 묘한 감각의 발생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이 단지 돌과 나무의 기록, 재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돌과 나무라고 명명하는 이 명명성의 체계, 개념어에 의해 지배당한 사물, 관습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익숙한 대상세계의 그물에서 홀연 빠져나가는 느낌, 감성의 흔적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선보다 그 시선의 배후에 우선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식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온전히 그 사물 자체를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행위, 그로인해 떠오르는 몸의 감수성에 기반 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얘기다.
한중옥은 기이한 색채와 무늬, 결을 지닌 돌을 보았고 발견했으며 같은 맥락에서 소나무의 껍질, 늘어진 가지 등을 새삼스레 다시 보았다. 그것은 자연이 만든 흔적이고 시간이 완성한, 일종의 예술작품이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경지를 지닌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물질이자 대상이다.
자연만이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인간은 다만 그것을 발견할 뿐이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일종의 레디메이드) 돌/나무를 공들여 재현했다. 완강한 바위이자 거대한 돌의 피부, 소나무의 표면에 육박해 들어가 그곳에 들러붙듯이 그렸다. 그것은 원근법적이고 주체를 상정한 시선과 거리가 아니라 바닥에 붙어나가는 시선, 대상에 달라붙은 신체의 시선이고 감각이다.
더불어 한중옥의 그림은 그 방법론에 있어서 매우 독특하다. 종이에 크레용을 칠하고 난 후 칼로 긁어내어 그린 그림이다. 그는 검은 종이위에 크레용으로 여러 밝은 색상을 가득채운 바탕 면을 만든다. 다양한 색채의 층을 두텁게 올리고 난 후에는 날카롭고 예리한 칼끝과 칼날로 긁어내고 새기고 문질러서 대상을 그려 보인다.
일반적인 회화적 방법론과는 달리 조각적이고 일종의 마이너스적 그리기다. 지우고 벗겨내고 긁어내서 형상을 드러내는 방법론이다. 종이의 피부에 육박해 들어가 그 표면을 긁어서 내부에 깃든 색감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크레용이란 재료를 가지고 놀라운 효과, 사건을 발생시키며 낯선 감각을 호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