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근·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균열>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기 간 : 2017.04.19 - 2018.04.29
글/ 김진녕
1.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 근·현대 미술 소장품으로 꾸민 <균열>전을 열고 있다.
이 전시가 주목을 받는 것은 아직도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있는 미인도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장 25년간 위작 논란이 이어지며 미디어의 문화면 보다는 사회면을 장식해 온 ‘미인도’를 미술품으로 조명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측에서는 ‘미인도’ 작품 자체와 미인도 위작 논란의 시작부터 2016년 12월 검찰 수사 발표까지 이 사건의 진행 과정 그 자체를 ‘미술품’으로 전시하고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 자체가 미술품에 대한 의견 차이와 이를 증명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론과 신뢰성, 예술가와 평론가, 관련 학계 종사자의 제각기 다른 목격담과 진술, 주장과 의견의 홍수, 대중의 미술을 보는 시각, 법과 제도, 언론과 정치 등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균열상을 드러나는 사례다.
<미인도> 1977, 화선지에 채색, 29x26cm
2.
1990년 4월부터 시작된 ‘미인도 논란’은 그 자체가 한국 미술계의 큰 사건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 위작 논란 진행 과정’ 자체를 전람회의 그림으로 내놨다.
그 작품을 따라가 보자.
1980년 4월 ‘미인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
1991년 4월1일 천경자 화백,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 위작이라고 주장.
2015년 8월 천경자 화백, 뉴욕에서 별세
2016년 4월27일 천 화백 유족,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의 관계자를 사자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
2016년 12월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단.
2017년 4월19일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를 포함한 <균열>전 개막.
3.
휘발성 높은 ‘미인도’가 수십년만에 미술관에 등장하는 일이라 미술관쪽에선 별도의 방을 배정하고 대기줄을 위한 칸막이까지 설치했지만 개막 초임에도 ‘인산인해’의 인파가 몰려오지는 않고 있다. 의외로 전시장은 차분한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이미 검찰이 ‘진품’이라 판단해 위작 시비는 마무리됐기에 ‘미인도’ 전시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 ‘미인도’를 법정 소송의 대상이 아닌 미술품 본연의 의미로 ‘미인도’에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미인도 위작 논란 진행과정’ 자체를 ‘균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관람객의 눈앞에 전시했다. 여기에는 ‘미인도’를 가품으로 보는 주장도 진열대에 함께 올라와 있다.
미술관 측에선 “작품의 공개가 작품의 진위 여부를 논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중립적인 시각에서 공공의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결정됐다. 우리의 질문은 오히려 특정 작품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균열을 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런 균열을 통해서 미술작품의 정통성에 대한 관념과 실제 사이의 틈은 무엇인가를 재고해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미술관측은 ‘믿음의 균열’을 용납하지 못하는 관객의 출현 가능성에 대비해 ‘미인도’를 방탄유리에 넣어 전시하고 있다.
4.
미술관측에선 <균열>전을 몸의 균열과 믿음의 균열, 두 섹션으로 구성했다. ‘미인도’는 믿음의 균열 섹션의 맨 마지막 순서에 배치됐다.
믿음의 균열의 첫 번째 작품은 김범 작가의 <무제(뉴스)>(2002)이다. 이 작품은 ‘사실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공중파 9시 뉴스의 진행자 화면을 음소별로 잘게 짜르고 이어붙여 ‘사실만 전하는 이’(공중파 뉴스 앵커)가 작가가 만든 ‘거짓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리포트 하는 동영상이다. 김범 작가가 만든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엄기영 앵커나 김주하 앵커의 목소리는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가가 쓴 ‘거짓말’을 리포트하고 있다. ‘공중파 뉴스’라는 권위(믿음) 체계는 이렇게 손쉽게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범 <무제(뉴스)> 2002, 싱글채널 DVD, 나무테이블 및 모니터, 부속품, 107x122x80cm
이 섹션에 전시된 김아타의 <뮤지엄 프로젝트1>(1995)는 유리 진열장에 갇힌 누드의 남녀가 사찰의 재단 위에 정좌하고 있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이를 사진에 담았다. 종교라는 거의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믿음 체계에 대한 금기와 통념을 한꺼번에 뒤집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대미술작가가 가장 즐겨쓰는 방법 중 하나는 ‘균열’이다.
기존의 관습이나 이미지를 뒤엎거나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고 의견이 격렬히 갈리는 균열 현장을 주목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한 이미지 검색만으로 10초 안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세상에서 그것이 현대의 작가가 새로움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루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권위(기존의 가치 체계)와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기원전 1700년 께 수메르의 점토판에 새겨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문구에서 보듯 권위와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은 어느 시대이던지 당대 젊은이의 몫이자 본능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균열>전은 장르나 매체, 미학적 목표, 세대에 상관없이 기존의 권위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키워드로 작품을 고른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전시가 “20세기 이후 한국 근현대미술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망”하고 “전시 제목인 '균열'은 공고하게 구축된 권위와 강요된 질서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여러 세대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의지'를 상징한다”고 밝혔다.
5.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몸의 균열이나 믿음의 균열이나 모두 우리 사회 내부에서 발생한 ‘미술적 사건’을 전시의 양축으로 세웠다는 점이다.
‘믿음의 균열’ 섹션에서 마지막 출연자가 ‘미인도’와 ‘미인도 논란’이었다면 ‘몸의 균열’ 섹션에서 마지막 출연자는 2001년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김인규 작가의 ‘우리 부부’이다.
2001년 당시 중학교 교사이던 작가는 부인과 함께 누드로 찍은 사진 작품 <우리 부부>(1996)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를 두고 청소년 단체 및 학부모 단체들이 그를 구 전기통신기본법(현행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해 그해 6월 구속영장이 청구된 후 2002년 12월 1심(홍성지방법원), 2003년 5월(대전고등법원)에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005년 7월 대법원에서 원심판결 중 공소사실 제1항, 제3항, 제5항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유죄 환송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술계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논란을 빚었고 누드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시선과 작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여러 논의가 이어지는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미술관 측은 이 작품을 디지털 프린트로 걸었고 당시 사건 진행과정을 벽면에 프린트하고 구형 컴퓨터로 작가의 홈페이지를 검색해 볼 수 있게 재현했다. 김 작가의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작가가 표현한 몸이라는 대상과 대중이 바라보는 시선, 공권력이라는 시스템 사이에서 벌어지는 균열 자체를 전시한 것이다.
김옥선 <방안의 여인-자개장 앞에선 동숙> 2000, 디지털크로모제닉 프린트, 120x150cm
<우리 부부>와 이웃해 걸려있는 <방안의 여인 -자개장 앞에 선 동숙>(2000)도 몸을 바라보는 시선에 생기고 있는 균열과 변화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중년 여성이 서있는 방은 자개장과 문갑, 청실홍실, 목기러기, 보료 등 전통적인 여성적인 가치를 뒷받침해주는 기물들이다. 중산층이라는 적당한 물적 토대를 갖추고 대외적으로 남사스러운 일을 삼가며 헌신적인 엄마와 아내 역을 수행하는 후덕한 중년 여인이 한복을 입고 점잖게 앉아서 사진을 찍을만한 세팅이다.
그런데 사진 속의 여인은 중년의 몸을 모두 드러내고 정면을 덤덤히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 속에는 몸을 대상화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보려는 여성주의적 담론도 들어있다. 전통이라는 컨벤션과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서로 충돌하며 보는 이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몸의 균열 섹션에는 우리 사회의 혼혈 문제(주명덕의 <섞여진 이름> 시리즈)나 상품화된 여성성의 전복(이불의 <사이보그W5>) 등 몸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품고 있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불 <사이보그W5> 1999, 플라스틱에 페인팅, 150x55x9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