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봄맞이 회화실 새단장
전시기간 : 2017.3.18- 7월중순
전시장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회화실
조선시대 미술의 범위를 한번 생각해보자. 장르는 다양하다. 도자기에 불상에 목가구 그리고 금속공예 같은 민예품도 있다. 또 서화(書畵)도 있다. 이들에 근대적인 ‘미술(美術)’적 개념을 들이대면 좀 달라진다. 서화는 파인아트(fine art)라고 볼 수 있다. 나머지는 공예이고 종교미술이다.
심사정 <벼베기> <노승> 견본담채 18세기
그렇다면 양적으로는 어떤가. 압도적인 수가 도자기이다. 그 다음은 아마 목가구나 장식품 같은 민예품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생활에 직접 쓰인 것들이다.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말할 것도 없이 서화는 이들에 비해 극소수이다. 전체의 몇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제자 김희성이 그린 <초충도> 견본담채 18세기
강세황 화평은 ‘원나라 사람의 운치가 있으며 앞폭보다 크게 낫다(有元人韻致 大勝前幅)’이다.
이런 서화를 다시 글씨와 그림으로 나누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도 그렇다. 글씨가 열이라면 그림은 하나에도 못 미친다. 조선시대에 글씨는 문인, 사대부라면 누구나 썼다.(물론 잘 쓰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지만 그림은 그럴 수 없다.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즉 조선시대 그림은 귀하다. 귀한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다.
작자미상 산수선객도첩 중의 <이철괴> 견본채색 17세기
쉽게 볼 수 없다는 이 사실은 조선시대 그림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조차도 그렇다. 여기는 물론 다른 이유도 더해진다. 조선시대 그림은 쉬 상한다는 점이다. ‘지천년(紙千年), 견오백년(絹五百年)’이란 말이 있긴 하다. 이는 종이와 비단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의 시간이다. 종이든 비단이든 펼쳐 놓고 그대로만 있어도 빛과 공기 그리고 온도, 습도 에 따라 열화(劣化)된다. 쉽게 상하는 것이다. 종이, 비단 뿐만 아니라 먹도 날아간다.
작자미상 <이 잡는 노승> 지본담채 19세기
서양의 미술관에서 대개 같은 자리에 언제나 같은 그림이 걸려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파리 루브르의 드농관 2층 회화실에는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언제나 걸려있다. 미술관의 대대적 보수공사가 아니라면 10년이고 20년이고 이는 변함없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결코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작자미상 <하관계회도>(그림부분) 지본담채 1541년
그래서 소장 명품(名品)이라도 보려고 치면 특별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언제나 특별전에만 그림을 꺼내놓는 것은 아니다. 회화실이 있는 이상 상설전시는 있다. 여기서도 그림 보존을 위해 같은 그림은 그저 서너 달 출품(?)이 고작이다. 그래서 1년을 몇 번이고 그림이 들락날락한다. 그런데 근래 들어 ‘기왕에 바꾸는 것이면’이라고 생각했는지 약간씩 모아서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작자미상 <평시서 계회도>(그림부분) 지본담채 16세기
상설전에 소개하는 그림의 종류는 폭넓다. 풍속화에서 산수화, 화조화, 기록화, 초상화 그리고 민화까지 다양하다. 명품, 일품이 섞이는가 하면 작자미상인 때문에 어느 특별전에도 끼일 수 없는 미공개작도 포함된다.
작자미상 <유영수양관연명지도(留營首陽館延命之圖)>(그림 부분) 지본담채 1580년경
중기의 문신 윤두수가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후손인 아나운서 윤인구씨가 2015년에 기증했다.
이 정도 폭과 범위라면 누구든 테마로 엮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늘어놓고 보면 묘하게도 묶여 보이는 게 있다. 지난겨울의 교체에는 설경(雪景) 그림과 매화 그림이 많았다. 당연히 ‘겨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작자미상 <동관(同官)계회도>(그림부분) 견본채색 1670년경
이번에는 계회도(契會圖)가 많이 걸렸다. 계회도는 같은 관청에 다니는 관리들이 모임(과거에는 이를 계라고 불렀다)을 갖고 기념으로 그림을 그려가진 것을 말한다. 사간원 관료들의 모임인 미원(薇垣)계회도, 병조 관리들의 하관(夏官)계회도, 종로의 난전 관리를 맡은 평시서(平市署) 계회도 그리고 어느 부서인지 알 수 없는 동관(同官) 계회도 등이 내걸렸다.
작자미상 <권대운 기로연회도(權大運 耆老宴會圖)> 견본채색 1689년경
전체가 있는 서울대박물관과 달리 국박에는 2폭만 전한다.
시기는 1540년에서 시작해 1670년까지에 걸쳐있다. 그런데 이를 연대별로 훑다보면 어느새 시대별로 표현방식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보인다. 보는 사람에게 이런 발견은 전시장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이 된다.(물론 의도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작자미상 <사장원 송도부 동료계회도(四壯元松都府同僚稧會圖)> 견본담채 1612년
상설전의 또다른 매력은 마지널한 그림을 볼 수 있는 점이다. 작자미상 말고도 훼손이 있는 그림은 테마가 근사한 특별전에 초대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이들의 번외출품 장소로 이런 교체상설전이 제격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쉽게 보기 힘든’ 조선그림인 것은 사실이다.
작자미상 <송도 사장원 계회도(松都四壯元稧會圖)> 지본담채 1772년
1612년 그림의 후손 중 한 사람인 홍명한이 160년 뒤에 다시 그리게 한 그림이다.
교체상설전은 테마도 없고 주제도 없다. 왼쪽부터 보아도 되고 오른쪽부터 보아도 상관없다. 그런 점에서 서서 듣거나 앉아 듣거나 혹은 누워듣거나 기대 들어도 상관없는 원조 실내악 연주 같은 전시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급은 특급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B급 전시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을 일러 가히 ‘진정한 조선그림 애호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