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위대한 낙서
장 소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기 간 : 2016.12.9-2017.3.12
거리의 예술, 힙합, 스프레이로 만드는 문자 도안, 눈에 띄게 만들기 위한 강렬한 색과 테두리. 빠르게 치고 빠져나가는 에너지.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거리 악동들의 그라피티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의 기획전시 제목처럼 어느새 “위대한 낙서”가 되어 있다.
전시장 초입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제우스ZEVS의 작품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 최근의 뱅크시 정도 외에는 국내에 뚜렷하게 잘 알려진 작가들은 아니지만, ‘미국 1세대 그라피티 작가’로 알려진 크래시Crash, ‘흘러내리는 명품 브랜드 로고’ 시리즈의 프랑스 그라피티 아티스트 제우스ZEVS, 몇 년 전 LG전자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진행한 바 있던 존원JonOne, 각국 글자를 형상화하는 라틀라스L'ATLAS, 스텐실 기법을 통해 그라피티를 회화 영역으로 끌어온 영국의 닉 워커Nick Walker, 그라피티 아티스트 겸 그래픽 디자이너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사진과 그라피티를 결합한 프랑스 아티스트 JR 등 일곱 명의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작품을 차례로 전시하고 있다.
ZEVS, Louis Vuitton Murakami Multico
전시장 곳곳에 생소한 작가의 작업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영상과 해설을 담고 다이나믹하고도 안정적인 배치에 신경써서, 외벽이 아닌 박물관 큐브 안에서 그라피티 자체 특성이 위축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흥미롭게 낯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JonOne, Open Your Eyes 2014
Nick Walker, Mona Simpson
Crash, Spiderman 2016
굳이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낙서화는 인간의 근본적인 예술적 욕구 발산의 한 형태로 현대 도시의 발전과 함께 그 형태를 갖춰나갔던 스토리를 이해할 만하다. 1970년대 전 세계 대도시에 생겨나기 시작한 지하철의 수많은 벽 표면은 그 양적인 팽창을 담보했을 것이고, 힙합 음악이나 춤 등의 거리문화와 함께 보편화되고 예술장르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경찰의 단속을 피해 사유재산인 건물 벽이나 공공장소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남겼던 그라피티 아티스트들. 그러나 몇몇 '거장'이 된 예술가들의 작품 외에도 이제는 그 장소특정적인 성격을 포기하며 미술관 안으로 쉽게 모셔올 수 있게 되었다. 이것에는 그라피티 아트 자체의 성격이 현대에 와서 변화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익명을 전제로 태그를 달아 작업하던 거리의 '작가writer'들은 이제 현대로 넘어오며 다양한 기법과 표현으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 그야말로 예술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도록에 실린 닉 워커의 거리 작업 장면 사진.
7명의 전시 작가 중 제우스, 라틀라스, 닉워커, 존원 네 작가는 별도의 도록이 만들어져 있다.
이 전시는 한 신진 미술전시기획사의 기획으로 이루어졌다. <문자도, 책거리>와 <타이포그라피> 전시만으로도 서예박물관의 본분에 대해 한 소리 들어야 했던 서예박물관으로서는 재개관 기념의 마지막을 외부기획의 서양 그라피티 아트로 들여오는 데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서예'박물관이 서양현대미술을, 그것도 서브컬처를 그 내용으로 하게 된 연결고리는 ‘문자’ 혹은 ‘기호’가 될 것이다. 그라피티 작품들의 형식적인 면에서 '기호'만을 그 공통분모로 삼은 것은 아니다. 채홍기 서예박물관 학예사는 “그래피티는 선과 색의 변주로 이어져 내려오는 서양미술의 전통과 시대의 구분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큰 획을 긋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동양미술의획의 정신과 상통하고 있다”며 “서의 근본 정신이 우리 시대의 소통언어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래피티가 보여준 현장성, 지금 여기에 소통되는 글씨 또는 그 행위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서예박물관의 분위기와 달리 전시장 도우미도 많고 관객도 많고, 야심차게 두툼한 작가별 도록과 다양한 아트상품들이 전시장 밖에서 고객을 부른다. 건물의 외벽과 바깥 마당 바닥면까지 신경 써 관객이 박물관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 서예박물관의 변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투자한 만큼 남길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이나, 그라피티 아트에 블록버스터 전시의 모양새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서울서예박물관이 ‘서화동원’을 말했던 옛 정신과 현재 우리들의 감각과 시대정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