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산수, 이상향의 재현
전시기간: 2016.8.9 ~ 2017.2.12
전시장소: 서울 삼성미술관리움
그럴 리 없겠지만 때가 때인 만큼 달리도 보인다. 물론 산수화의 본령을 다시 살펴보자는 취지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정치의 계절이 아닌가.
작자미상 <금니 금강전도> 19세기
산수화는 애초에 정치와 관련이 깊다. 정치적 박해에서 시작된 장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3,4세기 중국의 분열 시대. 살육의 정치가 밥 먹듯이 일어났다. 그 시대 문인, 사대부들은 산과 들로 몸을 피했고 그곳에서 의외로 심신의 여유와 정신적 자유를 맛보았다.
유숙 <소림청장도(疏林晴嶂圖)> 견본수묵 72.5x34.0cm
거칠고 통제 불능이라고 생각했던 자연(自然)에 대한 선입견과 달랐다. 그래서 새로 지어낸 말이 ‘산수(山水)’였고 그 산수를 찬양하면서 그림으로 그린 게 산수화의 시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김수철 <하경산수도> 지본담채 114x46.5cm
물론 시대에 따라 그리는 양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문인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이들의 진퇴와 깊이 연관됐다. 나아가서는 공(公)을 위해 봉사하고 물러나면 향리로 돌아와 수신과 학문에 힘쓰며 산수를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의탁할 이상처로 삼았다. 이들에게 산수화는 그를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모두가 손을 들고 야단스럽게 국가, 사회에 봉사하길 자처하는 시절에 새삼 산수화가 남달라 보이는 사정이 거기에 있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중년의 명작인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도 그렇다. 1801년 겨울 12살의 어린 왕 순조(純祖)는 수두를 앓았다. 내의들이 치료를 맡았지만 홍의영(洪儀泳)을 비롯한 몇몇 신하가 이를 감독했다.
김홍도 <삼공불환도> 지본담채 133.7x418.4cm 1801년
병은 오래지 않아 낫게 되면서 감독한 이들에게 그림 상이 내려졌다. 이 그림을 받은 사람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 주판(州判)이란 벼슬 이름만 전한다. 하지만 위독한 채로 임금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났더라면 이들의 신변에 큰 위험에 닥쳤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그는 ‘삼공(三公)의 벼슬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겠다’는 전원 산수생활의 그림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림에는 후한시대 전원생활 예찬자인 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樂志論)’도 적혀있다. 이만한 사정이면 달리 볼만하다 할 수 있다.
안중식 <도원문진도> 견본채색 164.4x70.4cm 1913년
안중식(安中植)의 <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도 그렇다. 이는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園記)’에서 연유한 소재라는 것은 너무도 유명이다. 무릉도원에서 돌아온 어부가 태수를 데리고 다시 도화원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그림은 다시 도화원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때는 1913년. 조선총독부 정치가 본격화하고 있을 때였다. 중년의 안중식(53살)은 식민지 2등 국민의 처지를 새삼 실감하면서 난을 피해 도원으로 몰려간 진나라 사람들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19세기 전반의 문인화가 윤제홍(尹濟弘)의 그림 역시 그렇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큰 바위 아래 나무로 둘러싸인 초막 하나를 그려 놓고 이렇게 썼다. ‘수목이 무성할 때 새는 목소리를 바꾸면서 기쁘게 유유자적 한다. 혹시 북쪽 창문 아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면 나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불러야 할는지?’
윤제홍 <지두(指頭) 산수도> 지본수묵 67x45.5cm 1833년
그는 노론정통 출신이다. 하지만 40대 초반 당쟁에 휘말려 3년간 유배 생활을 겪었다. 돌아온 뒤에는 몸이 병들어 10년 동안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리고 다시 관직에 나아갔다. 유배와 생활고 같은 과거를 기억하면 북쪽 창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가 꿈꾼 세상은 그림 속의 이상향이었음을 추측하기 힘들지 않을 것이다.
이 전시는 상설전시의 작품 교체를 하면서 산수의 이상향 테마에 포커스를 맞춘 전시이다. 대대적인 특별전이 아닌 만큼 설명이 소략한 점이 있을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그림 모두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아니다.
정선 <인왕제색도> 지본수묵 79.2x138.2cm 1751년
그보다는 크게 세 갈래의 이상향을 그린 그림들로 구성돼 있다. 심사정(沈師正), 이인문(李寅文), 김수철(金秀哲), 허련(허련)의 그림은 문인들이 지닌 가슴속 이상향을 그린 정통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김홍도의 <삼공불환도>나 안중식의 <도원문진도>를 비롯해 유숙(劉淑)의 <서원아집도>, 전기(田琦)의 <귀거래도>는 문인들이 본받으려한 내용의 문학적 소재를 차용한 이상향 묘사이다. 그리고 18세기 들어 자주정신 아래 조선의 이상향으로 여겨졌던 금강산을 그린 것은 진경산수화 계통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풍속화와 화조화를 곁들인 것은 다분히 사족이다. 그렇지만 평소 보기 힘든 조선의 명화를 다시 보고 즐기는 기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