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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3년, 서울관을 탐험하다 <보이드 V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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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공간, 보이드가 서울관의 핵심

전시명 : 보이드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 간 : 2016.10.12~2017.02.05

글/  김진녕

 

1.

일반인이 건축도면을 보는 경우는 대개 집을 구하러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들렀을 때일 것이다중개 사무소마다 근방 아파트 단지의 평형대별 아파트 도면이 대형 패널로 걸려있다.

이 도면에 X로 그려진 공간이 등장한다대개는 베란다다베란다처럼 실내공간도 아니지만 외부도 아닌 공간이런 공간을 도면에서 X로 표시한다기둥으로 떠받쳐진 공간이지만 한쪽 벽면 이상은 외부에 트여있는 연립주택 1층의 주차장도 도면에서 X로 표시되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을 건축 용어로 보이드라고 부른다.

건축용어로서 보이드는 솔리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보이드와 솔리드는 건축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로 건축 기초 사전에선 대개 보이드를 아무 것도 없는 비워진 공간으로 솔리드를 특정 물질로 꽉 찬 부분으로 설명한다.

아파트에서 공용 공간인 복도나 계단은 보이드로전용 공간은 솔리드로 이해하면 편하다.

 

2.

요즘 아파트 분양광고 홍보물에는 ‘20평형대 후반이지만 30평형대 중반 같은 집이라는 식의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이는 암묵적으로 베란다를 없애고 거실을 확장해 도면상의 전용 면적보다 실사용 공간이 크다는 의미이다도면에 있는 X의 소멸이다.

20세기 초반 서울 서촌이나 북촌익선동 등에 세워진 20평 안팎의 서민용 살림집에도 사라진 ‘X’가 널려있다지을 때 목수는 X로 표시되는 중정이 있는 자 또는 자형 한옥을 지었지만 사용자가 나중에 마당에 천정을 씌워서 실사용 면적을 극대화시켰던 것.

1980~90년대에는 연립주택 붐이 일었다이 연립주택에는 1970년대의 양옥집과는 달리 주차장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개는 무늬만 주차장이었다건물 준공허가가 떨어지면 가벽을 쌓고 셔터를 달아 점포로 전용되기 일수였다이 주차장도 도면상에는 X로 표시된다.

이렇게 1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X의 실종은 한국인에겐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의 경험이다건축법상의 규제를 우회해 부동산의 획득 비용에 대한 가성비를 향상시키는 경제적 선택으로 치부되곤 한다.

 

3.

미국에서 교육받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최춘웅은 이 건축도면상에는 존재하지만실제 건물에선 사라진 X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보이드>(~2/15)에 실종된 X를 찾습니다란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한국의 건축물 도면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X의 존재와 활용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이다그는 서울관 도면에서 X만 40개가 넘는 특이한 현상을 포착하고거꾸로 서울관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건축가가 왜 보이드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다고 한다.

지하 1층 7전시실에 전시된 최춘웅의 작업물은 세 번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물과 이 퍼포먼스에 사용된 가로로 길고 중간 중간 사각 구멍이 뚫린 납작한 나무 무대와 세로로 세워지고 중간에 사각 창이 뚫린 가교앙상한 나뭇가지에 LED조명줄이 걸린 설치물 석 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납작하고 가로로 긴 나무 무대는 실종된 보이드(X)’에 대한 은유다.

이 전시회 도록에는 한국 건물의 건축 도면에 등장하는 X에 대해서 건축 청사진 속에서 보통 X로 표기되는 보이드 공간은 한국 건축의 핵심 요소이다그 중 납작한 보이드란 바닥에 뚫려 바로 아래층까지만 열려있는 얕은 평면적 보이드다납작한 보이드는 공간적이라기보다 개념적이고 볼륨을 만드는 것보다 영역을 나누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다영 큐레이터는 예를 들면 과거에는 살림집에도 중정이라는 보이드를 만들었다요즘은 그런 공간조차 뚫을 데가 없다주어진 땅을 최대한 활용해 집을 짓기에 보이드가 불가능하다보이드를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그런 맥락에서 각자의 알레고리를 만들고 레이어를 여러겹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춘웅 <실종된 X를 찾습니다>


4.

최춘웅의 작품에서 보듯 이 <보이드>전의 구체적인 주인공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보이드>전은 서울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오픈하우스서울의 보이드 커넥션은 조선시대 말부터 현재까지 서울관을 중심으로 광화문과 소격동 일대의 공간이 사적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도표와 색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신의 .5:보이드 옵.은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참여한 관객이 미술관 지하 1층을 구석 구석 한바퀴 돌도록 만들어 전시물이 아닌 미술관 건물 자체가 어떤 구조인지 인식하게 만든다.정 큐레이터는 .신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서울관에서 작품이나 사람을 거둬내고 미술관 자체를 바라보자는 전시라고 말했다.

 



.5:보이드 옵.


5.

조선 시대에는 종친부가일제시대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이한국전쟁 때는 육군통합병원으로, 1970년대 이후엔 국군기무사령부로 쓰였던 서울 소격동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문을 연 것은 2013년 11월이다. <보이드>전은 서울관 개관 3년 만에 서울관 자체를 건축적으로 탐구하는 전시다.

정다영 큐레이터는 서울관 자리는 기무사종친부 등으로 쓰였던 역사적 이야기가 많은 장소이고 미술관 개관까지 많은 얘기가 있었다서울관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같은 군도형 미술관으로 설계됐다. ‘은 전시장과 같은 분명한 기능을 가진 공간을 뜻하고 바다는 특정한 기능은 없지만 미술관의 여러 잠재적인 빈 곳을 은유한다서울관의 많은 보이드는 불확정적인 현대미술의 여러 양태를 품을 수 있는 공간 전략이다서울관에는 보이드복도나 마당같은 규정되지 않은 빈 곳이 많다그래서 관람객이 쓸데없는 공간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다하지만 서울관의 핵심 공간은 바로 두 개의 보이드라고 설명했다.

서울관에는 6,7전시실과 미디어랩 공간 사이에 일종의 중정인 전시마당이 있고 2,3,4,5전시실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1층 로비로 이어지는 아트리움은 서울박스로 명명돼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현재 전시마당에는 김수자의 연역적 오브제서울박스에선 양지앙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연역적 오브제


서울박스의 양지앙그룹전


정 큐레이터는 서울박스와 전시마당이 두 개의 보이드가 서울관 전시실의 중심축이다서울박스를 중심으로 1,2,3,4,5전시실이 이어지고여긴 전통적인 화이트큐브로 활용된다전시마당을 둘러싼 6,7전시실과 미디어랩실은 블랙박스로 퍼포먼스나 영상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이걸 봐도 서울관의 주요 공간은 보이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관에 열린 공간이자 공용 공간이기도 한 보이드가 없었다면 불확정적이고 다양한 스타일의 현대미술의 여러 양태를 품을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이는 외부를 끌어들이고 다양한 기능성을 가진 아파트 베란다나 자형 한옥의 중정을 없애고 얻은 것이 대개는 손바닥만한 폐쇄형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이드>전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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