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Olafur Eliasson –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
장소 : 삼성미술관 리움
기간 : 2016. 9. 28 – 2017. 2. 26
국내에서도 여러 번 개인전을 가졌던 세계적인 동시대 미술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대표작들로 구성된 전시가 리움에서 열리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이끼를 설치한 <이끼 벽>(1994), 중력을 거스르는 <뒤집힌 폭포>(1998)과 같은 초기 작품들에서 물과 빛으로 만들어진 <무지개 집합>(2016)에 이르기 까지 총 22점이 출품되었다. 대규모 전시는 아니지만 그의 예술 세계 전반과 동시대미술의 한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기획전이 주로 열리는 아동교육문화센터 쪽으로 들어서서 지하로 내려가면 맨 처음 눈에 띄는 작품이 <이끼벽>(1994)이다. 사실 작품은 시각보다 후각적인 자극으로 먼저 관람객에게 접근한다. 노르웨이의 이끼를 이용해 거대 벽을 만들어낸 이 작품은 이끼의 상태에 따라 색도 다르고 머금은 습기로 인해 수축되거나 팽창되기도 하면서 인공과 자연의 경계에서 경보음 대신 자극적인 냄새를 뿜어낸다.
<이끼벽>(1994) 부분. 순록 이끼, 목재, 철사, 가변크기
이어지는 움직이는 조각물, 사진, 다양한 설치 작품들에서는 인지 과정의 오류 가능성을 짚어 주거나 빛의 굴절과 반사를 이용하여 시각적인 장을 비틀거나 하는 흥미로운 시도들을 읽을 수 있다.
<뒤집힌 폭포>(1998), 비계, 강철, 물, 목재, 플라스틱 판, 펌프, 호스, 312x278x160cm
<자아가 사라지는 벽>(2015) 부분. 스테인레스스틸 거울, 강철, 목재, 각 모듈 50x50x50cm(가변크기)
마름모꼴의 거울과 삼각형 모양으로 뚫린 부분이 번갈아 배열된 터널을 지나가며 열린 구멍 안쪽으로 반사 이미지들이 무한반복되고 거울 부분은 뚫린 것처럼 보여 공허하게 느껴지는 착각을 일으킨다.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2016) 유리구슬, 은, 금, 페인트, 색유리구슬, 스테인레스스틸, 합판, 330x1100x30cm
검은 벽 위에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유리구슬 천여 개가 구성되어 있다.
<당신의 미술관 경험을 위한 준비>(2014) 아크릴 프리즘 고리, 색유리, 스포트라이트, LED조명, 가변크기
서서히 돌아가는 아크릴프리즘 고리에 강한 빛이 비추면서 양쪽 각도가 좁은 벽에 다양한 움직이는 무늬를 만들어낸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2003년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선보여 주목받았던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2003) 등을 통해 유사 자연을 제시하여 관람자가 작품을 다양한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방식의 감상을 유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작은 물방울인 연무를 뿜어내어 무지개를 생성해 내는 초기 작품 <뷰티Beauty>(1993) 등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번 리움 전시에 설치된 <무지개집합>(2016)도 이의 연장이다. 리움 전시에서는 이 <무지개집합>을 클라이막스에 배치했다.
<무지개집합>(2016)
어두운 공간 안, 이세한 물안개가 둥근 장막을 이루며 떨어지고 있다. 상단에서 비춰지는 강한 빛으로 인해 무지개가 생겨나는데, 장막 안에 들어가야 잘 보이며 미세한 공기 흐름에 따라 연무가 움직이며 무지개도 변형된다.
엘리아슨의 작품세계에는 '인공' '자연현상'이라는 키워드가 있고, 시각적인 환영이 아닌 재창조된 자연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는 이를 위해 기술적 부분을 아주 적절하고 미묘하게 사용할 줄 안다. 빛과 물질의 특성, 테크놀러지, 인체의 지각 메커니즘을 세심하게 점검한다. 이때 오브제로 관찰 대상이 되는 작품에 집중된다기보다는 관람자와의 관계, 작품이 만들어내는 감상의 장(Field)이 중요하며, 이를 매개하는 주된 요소는 빛, 열기, 물과 바람 등이고 이러한 환경 요소들은 관람자가 지구상에서 살아온 인간으로서 온몸으로 경험해 온 감각의 기준점을 활용하도록 한다. 관찰자가 아닌 환경 속의 관람자 자신은 자연스럽게 오감을 열고 더 나아가 명상과 사색의 세계로 유도된 자신을 발견한다.
물질성, 시간성, 공간과 시간의 왜곡 등 다양한 주제와 제재를 보여주는 이들 작품 하나하나는 현대미술사에서 이제는 너무 많이 제시된 주제와 방법들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또 이번 전시는 특히 엘리아슨의 대표적인 형식을 보여주는 것을 골고루 선정해서 보여주는 것이었어서 신작이라도 크게 참신하지는 않은데도, 조심스럽게 배치되고 만들어진 제작물을 통해 관람객이 서서히 감상의 장에 들어서도록 유도함으로써 지루하거나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난해하거나 잡다하지 않아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
급진적인 시도가 없더라도 잘 설계되고 정돈된 완성도 만으로도 작품 감상의 질을 좌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은 다 알아 익숙한 것이라도 언제든 감상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현대미술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이들 중에는 그 가치를 획득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동시대 설치 미술의 난해함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차분하게 되새기며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테고,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얇은 요약본의 느낌일 수도 있다.
동시대 설치 미술의 난해함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차분하게 되새기며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테고,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얇은 요약본의 느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