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그리고 쓰고 새긴 듯한, 검은 그림 - <김정환 전>
  • 3144      

전 시 명 : 김정환 전
전시기간 : 2016.9.1.-9.7
전시장소 : 서울 백악미술관
글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김정환의 그림은 검정색의 물질이 점유하고 있는 부분과 나머지 부분, 이른바 여백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종이위에 칠해진 영역과 칠해지지 않고 의도적으로, 우연적으로 불가피하게 남겨진 영역으로 형성된 이 미니멀한 화면은 주어진 사각형의 평면을 다양하게 절개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재현하기 보다는 공간을 분할하고 나누고 의미 있는 구성으로 응고시켰다는 인상이다.


김정환,  묵음(吟, Poetry with Silence)15-03-14,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stone powder, chinese ink on canvas

순간 칠한 부분과 남겨진 부분, 의미를 부여한 공간과 나머지 부분, 보여주는 부분(가시적 영역)과 의도적으로 은폐한, 억압한(비가시적 영역) 부분간의 상호작용, 길항관계가 이루어진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한 공간, 음양의 공간 대비가 흥미롭다. 또한 그것은 쓰기와 그리기, 문자와 그림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그러한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원초적인 흔적과도 같다.

종이의 일정 부분을 검은 물질이 단호하게 채우고 덮어나갔고 미처 다 메우지 못하고 남겨진 공간에 생겨난 자연스런 흔적이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그림이다.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캔버스에 한지를 3차례 붙여 긴장감 있는, ‘짱짱한’ 화면을 만든 후에 그 위로 한 달 이상 삭힌 먹물, 이른바 퇴묵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런 후에 돌가루(금강사)를 바인더로 붙여서 완성을 한다.

따라서 화면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한지의 표면과 일체가 된 수묵과 그 위를 일정한 두께를 형성하면서 뒤덮고 있는 물질의 층은 이원적이면서도 마치 하나의 층 인 것처럼 보인다. 단단하고 힘 있는 검정물질이 덮고 있는 층의 바닥에는 먹의 번짐이나 얼룩이 불가피하게 배어나오면서 그 윗면의 물성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인위성으로 단호하게 칠해진 측면과 우연적,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취의 대조!     

김정환의 화면은 마치 전각의 작은 사각형안에서 구현되는 방촌의 미학이나 서예에서 엿볼 수 있는 검은색과 여백의 미감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작가의 다양한 이력에서 연유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했고 이후 서예작가를 위시해 전각 및 서예평론, 회화작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온 이다. 현재 그는 서예와 전각을 기본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추상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지 서예와 전각을 응용한 특정한 조형행위에 머물지 않고 그 저간에 자리한 특유의 조형론, 동양의 예술론 등에서 길어 올린 문제의식을 대상화하면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검은 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검을 현’이 지닌 여러 뜻, 그 문자가 거느리고 있는 언어적 의미망을 반추시킨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수묵의 미학이 중심축일 것이다. 동시에 동양화론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언어와 회화의 관계(문자와 그림, 시와 언어) 또한 중요해 보인다.

동양문화권에서, 동양화에서 그림과 문자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근대 이후 문자와 그림은 별개의 세계로 나뉘었다. 이번 근작의 제목은 <묵음>이다. 묵음이란 ‘소리 없이 시를 읊다’라는 뜻이다. 그의 그림은 문자의 자취를, 시의 자리를 이미지화시킨다. 이미지와 문자는 상호보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옛 그림을 보면 이미지와 문자는 항시 화면 안에 공존하고 길항했다. 우리가 접하고 경험하고 추억하는 세계는 이미지만으로, 문자만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세계다. 김정환은 흑백의 단순한 구성을 통해 마치 그리듯이, 쓰듯이, 새기듯이 무엇인가를 흔적화 했다. 그것은 문자의 어느 한 부분을, 전각의 어느 한 파편을, 그림의 어느 한 부위를 추측케 한다.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최대한 단순한 이미지와 검정색만으로 모든 것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힘 있는 회화를 지향한다. 서예나 전각 같은 그림일 것이다. 서예나 전각이 현대회화로서 승화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작가의 의도가 투영된 그림이란 얘기다.

사실 이런 시도는 근대 이후 동양화가들이나 대다수 작가들이 한국의 전통미술을 서구 현대회화와의 충격 속에서 어떻게 계승, 접목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지난한 과제 속에서 매번 부딪쳤고 부대꼈던 문제의식이다. 또 그러한 흔적의 결과가 한국 근·현대미술의 궤적이기도 하다.

김정환은 서예, 전각, 서예평론, 회화를 두루 관통해 온 이로서 그 모두를 아울러서 앞서의 과제를 구현하려 한다. 최근작은 그에 따른 의미 있는 결과물로 보인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15:10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