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展
전시기간: 2016.5.4.-7.24
전시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글: 김진녕(아트 저널리스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 중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전시와 관련된 이의 제기가 많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기억될만한 전시였다.
서울관 1층과 지하1층에 걸쳐 600평이 넘는 면적에 53명의 작가가 200점 넘는 작품들을 내걸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진이라는 장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표한 자리라는 점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분류나 선택의 기준에 대해선 미술계나 사진계에서 ‘이의 제기’가 잇달았다.
전시회는 ‘챕터1. 실험의 시작’ ‘챕터2. 개념적 미술과 개념 사진’ ‘챕터3. 현대미술과 퍼포먼스, 그리고 사진’ ‘챕터4. 이미지 너머의 풍경: 상징, 반미학, 비평적 지평’으로 구성돼있다. 이어지는 전시인지 별도의 전시인지 흐름이 불분명한 ‘사진특별전, 패션을 넘어서’가 별도의 공간에 따로 전시되어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해 보인다.
기획자인 이지윤씨는 전시회소개 리플렛에 전시회의 기준점을 1989년으로 잡은 이유와 관련해 “본 전시는 한국미술에서 리얼리즘에 근거한 공적 이미지로 시작한 ‘사진’이라는 매체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작가의 표현수단과 심미적 언어로 기능하게 된 것에 주목”했다며 “한국 사회는 1988년 올림픽개최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를 통해 글로벌화의 급격한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작가들의 시선과 태도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기획자 쪽에서는 챕터1부터 4까지 나름대로의 설계도를 리플렛에서 6쪽에 걸쳐 설명했지만 관람자 입장에서 보면 이 전시회의 1층 공간은 나이도, 전성기 활동 연대도 제각각인 사진계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히 하고 있는 유명 작가들, 주명덕이나 구본창, 배병우, 민병헌, 오형근 등의 모듬전이고, 지하 1층은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시각종합예술’ 작가 모듬전처럼 보인다.
오인환 우정의 물건(2000-2008)
지하 1층에 작품이 걸린 오인환, 정연두, 양혜규, 김수자 등은 사진가로 분류되기 보다는 자신의 작업에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작가다. 물론 지하 1층에도 사진을 출발점으로 삼고 활동하는 김아타나 노순택 같은 작가도 포함돼 있지만 ‘한국현대미술’의 한 갈래로 소개되고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기획자가 내세운 ‘1989년’이라는 시점을 앞세운 이정표도 전시 작품을 보다보면 굳이 왜,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배병우 소나무 작업과 송영숙의 폴라로이드 작업
1층 전시물 중 송영숙의 폴라로이드 작품은 1980년작이고, 이승택의 <이끼 심는 예술가>는 1975년 작이다. 주명덕의 ‘잃어버린 풍경’ 시리즈는 1981년 겨울 설악산에서 시작된 것이고, 배병우는 1983년부터 소나무 작업을 시작했다. 1층 전시실에 걸린 작가들의 작품은 ‘1989년’이라는 시간적인 이정표가 무의미해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성능경 S씨의 후손들
전시 연출도 관람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개념 사진으로 분류되는 작업을 분류한 챕터2에서는 성능경의 (1992)는 멀리서 색채의 반짝거림을 감상하는 작품인지, 작품을 구성하는 개개의 사진과 눈을 맞춰야 하는 작품인지 헛갈렸다.
성능경의 작품은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지금은 거의 추억상품이 된 3X5사이즈의 스냅사진 수백 장을 벽면에 늘어놓고 그 사진 사이사이 빨갛고 노란 원색의 사탕껍질을 함께 붙여놓아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한 ‘색 점’의 설치물로 보인다.
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벽면에 바짝 붙어 사진 한 장 한 장을 응시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성인키의 세 배 이상의 높이로 전시돼 있어서 전체 작품의 극히 일부분만 응시할 수 있다. 성인키를 넘는 높이에 걸린 사진과 색색의 사탕 껍질은 말 그대로 색 점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 궁금해졌다.
포토저널리즘에서 출발한 노순택 작업의 전시방법에 대해서는 사진계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이기도 한 이상엽은 자신의 칼럼에서 “2부 개념과 3부 퍼포먼스 양쪽에 등장하는 노순택은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알려졌지만 과감하게 분열되어 여기저기 걸쳐있다. 북한의 아리랑공연 사진이 퍼포먼스 사진으로 분류된 것을 보면서, 저 아리랑 퍼포먼스가 ‘작가가 연출한 것인가?’하는 기괴한 상상마저 하게 한다”고 썼다.
노순택의 작업에서 포토 저널리즘적인 맥락이 배제된 채 개념 사진이나 퍼포먼스 사진으로 전시 연출을 한 것과 관련해 기획자 이지윤은 한 인터뷰 기사(『월간 사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큐멘터리와 포토저널리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기록과 보도를 위한 것이 아닌 사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아주 사적인 언어로 나타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적인 언어가 바로 사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시를 사진전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현대미술전이다. 정확히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각도로 조망해보는 것이다.”
노순택의 작품에서 기록과 보도를 위한 포토저널리즘 맥락을 배제한 ‘사적인 언어’에 주목한 작품 선정과 전시 연출을 했다는 이야기다.
북한 당국은 체제 선전을 위해 아리랑 축전 공연을 외부에 공개했고 노순택은 포토 저널리스트로서 이 행사에 참관할 수 있었다. 노순택은 현장사진 중 자신의 필터를 통해 외부에 공개하는 사진의 크기와 형태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가 공개한 아리랑 축전 사진 속에서 엄격하게 통제되는 공연자의 모습이 빨갛고 노란 규칙적인 무늬로 보인다. 이 사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퍼포먼스사진 파트에 걸었고, 이 ‘무늬’ 중 일부는 오려져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전시를 알리는 배너로 제작돼 현대미술관 서울관 앞 삼청동 거리에 내걸렸다.
북한 체제선전용 공연인 ‘아리랑’의 현장 사진 일부가 배너로 제작돼 한국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에 들어가는 길 초입에 나부끼는,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풍경이 가능했던 것도 이 전시회에 사용된 ‘맥락의 배제’라는 마술 덕분인 셈이다.
이 전시회의 주제가 ‘현대미술과 사진’이라는 기획자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해도 이 전시회의 마지막 코너인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라이센스 잡지의 패션 사진전의 의미를 알아채기 어려운 것도 당황스럽다.
주최측은 리플렛에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라이센스 패션지들이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의 패션 사진들 중 흥미로운 네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현대미술과 사진’이라는 맥락에서 패션 사진이 어떤 의미인지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옷가지나 장신구, 귀금속 제품을 다루는 화보 사진도 현대 소비사회의 한 부분인 만큼 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는 소재일 것이다. 다만 이번 전시회의 주제로 내건 ‘현대미술과 사진’이란 관점과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영업을 시작한 라이센스 잡지의 패션 사진이 어디서 만나 어떻게 한국 현대미술의 한 갈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인지 전시물만 보고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일한 물적 단서는 1층에 전시된 작가 중 한명인 구본창 작가가 패션화보 사진작업으로 이 섹션에 다시 등장한다는 정도였다.
패션 사진전에 전시된 작품의 전시 연출도 어리둥절했다. ‘한국의 문화, 미적 정체성을 찾아서’, ‘패션 사진과 현대 미술, 창조적 대화’라는 ‘선언문’이 커다랗게 프린팅된 공간은 이전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전시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마치 취업 박람회장에 단독 부스를 처음 마련한 야심찬 신생 기업의 홍보 부스를 연상시켰다.
작품에 사진가와 제작 시점만 명기한 것도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패션지의 화보 사진은 연출 사진이다. 이 연출을 위한 사전 기획과 진행은 에디터로 불리는 잡지사의 기자의 몫이기에 패션 사진은 에디터와 사진작가의 공동작업 결과물인 셈이다.
라이센스 잡지가 국내에 상륙한 뒤 바뀐 관행 중 하나는 에디터는 잡지사 소속이고, 사진작가는 외주(프리랜서)인 경우가 많아졌다. 상업 잡지에 실렸던 이 공동 작업물을 외부 전시회에 거는 경우 사진작가의 이름과 함께 그 사진이 실렸던 매체의 이름도 함께 병기하는 식으로 판권을 표시한다. 한 잡지의 편집장은 “진행 기자는 잡지사 직원이기에 매체와 사진작가만 판권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사진작가의 이름만 명기했을 뿐 매체 이름을 명기하지 않았다. 이 특별전을 진행한 객원 큐레이터가 현업 잡지계 종사자임을 감안하면 이런 관행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매체 이름을 누락한 것이 실수인지 의도인지 궁금해졌다.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전은 5월에 시작돼 7월24일 끝났다. 한국의 미디어에는 이 전시회에 대해 “지금 사진판에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인 사회 현장의 다큐 사진과 미술판 사진의 균열과 대립은 전시의 논점에서 아예 빠졌다. 대신 한국 미술·사진판의 알량한 권력, 인맥의 지형도가 희미하게 엿보일 뿐”(한겨례 노형석)이라거나 “유명작가 작품의 ‘종합선물세트’ 이상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국민일보 손영옥)이라는 식의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