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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계획과 개발독재의 합창을 위한 전주곡: 불도저 시장의 1960년대 후반 서울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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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전 시 명 : 불도저 시장 김현옥
전시기간 : 2016.07.01.-2016.08.26.
전시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수도 서울의 도시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지속적으로 열어 온 서울역사박물관이 이번에는 전임 서울시장 가운데 한 사람을 선정해서 전시회를 꾸몄다. 앞선 전시에서 서울의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그 역사적 변천상을 구명하는 작업과 전시를 통해 물리적 실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온 반면, 이번에는 시장직을 역임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치적을 정리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조금은 낯설다. 특히 1960년대 후반 ‘도시계획’이란 이름 아래 ‘불도저식’이라 불릴 만큼 폭압적으로 서울을 개조했던 ‘김현옥 시장’을 대상으로 한 전시라는 점에서 기획자의 의도가 전시내용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전시의 시작은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이호철의 소설 제목에 기대어 1960년대 전반기 서울에 불어 닥친 부정적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통계자료, 신문 만평, 사진 등 급속한 인구팽창에 따른 주택난, 식수난, 교통난 등의 심각성을 강조한 자료가 동원되었다. 바로 이때 시장으로 임명된 김현옥이 등장하여 약 4년간 ‘만원 서울’의 문제를 열정적으로 해결해 갔음을 보여주는 데 전시의 반 이상이 할애되어 있다. 즉, 두 번째 방의 전시는 시장실 집무 사진을 중심에 두고 왼쪽 변면에 취임사와 취임식 보도기사를 시작으로 하여, 그가 시장이 되자마자 수립했다는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반영한 ‘최신서울특별시전도(1966)’와 당시에 도시계획종합계장이었던 최상철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동영상 모니터로 연출되었다. 




시장실 집무 광경


  그 계획은 도로확장, 변두리개발, 도시입체화 등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궤도전차를 없애고, 지하도를 파고, 차도와 보행로를 분리하여 질서와 속도를 갖춘 신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대형화면에 비추어진 인터뷰 영상은 당시 서울시장비서의 입을 통해 그러한 사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삼각지 입체 교차로 모형



세종로 지하도 건설


  세운상가, 한강개발, 여의도개발 등 굵직한 사업도 김현옥 시장 시절에 진행되었다. 이들 사업과정에서 생산된 청사진(세운상가, 여의도토지이용계획 등), 책자(도시계획 전시회 안내서, 여의도종합개발계획, 서울도시기본계획 등)는 물론, 박물관 전시용으로 제작된 세운상가 모형, 여의도 개발 모형, 삼각지 입체교차로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세운상가 설계와 여의도개발 계획을 주도했던 건축가 김수근(한국종합개발공사 대표)의 역할에 대해서 한 마디 언급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번 전시의 초점이 오로지 전임 시장의 공적을 소개하는 데 치우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운상가와 여의도 개발


  세 번째 전시실에서는 북한 정찰국 124 부대의 1968년 1월 21일 청와대침투사건 이후 급작스레 세워진 이른바 ‘서울요새화계획’과 빈민주택가 철거후 졸속으로 진행된 시민아파트 건립계획을 다루고 있다. ‘평화교’(유사시에 한강에 설치할 배다리), 북악스카이웨이, 남산터널 등이 전자의 산물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 빈민가 철거에 활용된 ‘불량주택지구조사보고서(1965)’, ‘불량건물정리계획(1967)’ 등은 후자에 속한다. 이 두 문서는 ‘불량’의 기준이나 철거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자료이다.
 
  철거된 집자리에 새로 지은 이른바 ‘시민아파트’에 일부 주민을 입주시키는 정책은 환영받을 일이었지만, 철거민을 대단위로 변두리에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은 ‘광주대단지 사건(1971)’에서 보듯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번 전시에서 기획자는 ‘시민아파트 건립계획문서’(1969), ‘시민아파트 입주증’(1969.4.3.) 등의 문서는 물론 ‘청운시민아파트 모형’, ‘배치도’(1970) 등을 함께 전시하여 긍정적인 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이주 정책의 문제점은 전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의도했든 의도치않게 시민아파트 건립의 타당성만을 홍보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전시실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채움으로써,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된 시민아파트 건립의 문제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다만 여기서도 철거후 제한적 입주, 철거후 강제이주 등 미비하고 무자비한 철거민대책으로 촉발된 민심의 향배가 어떠했는지, 시민사회의 저항은 어떠했고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시장 김현옥의 도시행정에 초점을 맞춘 탓에 개발독재로 인한 피해상황은 다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전시의 막바지는 오로지 낙향후 부산시 기장면으로 거처를 옮긴 채, 장안여고 교장으로 재직하며 훌륭한 교육자로 변신에 성공한 김현옥의 인간적 모습을 조명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시장 퇴임후 마포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거나, 약 2년간(1971.10. 7~1973.12. 2) ‘돌격장관’이라고 불린 데 상응할 만한 내무부장관 재직 시절의 활동 등은 모두 누락되어 있어서 아쉽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족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자손 대부분이 미국에 살고 있어서 인간 김현옥에 대한 탐구를 충분히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장안여고 졸업생들은 인터뷰에 참여하여 교장선생님의 교육자상을 인터뷰 동영상에 담아 전시해도 될 만큼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김현옥의 인물상을 연보에 견줄 만큼 온전히 구현해내지 못한 대신, 시장 퇴직 후 교육자로 변신한 인생 후반기의 모습을 잘 조명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이번 전시기획의 최대 성과이다.

  이번 전시를 보고 나면 김현옥이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도시계획 전문가나 건축가와 함께 서울을 개조해간 과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서울을 확장하고, 변두리를 개발하고, 도로를 확장, 신설하고 빈민촌을 철거하며 시민아파트를 건립한 일 등은 사회경제적으로나 정치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불도저식 도시건설’로 인하여 서울시는 규모가 확장되고 기능이 분산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도심부 공공공간은 지배권력이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되었다.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위원장: 장동운 중령, 육사 8기)의 활동(1968-72년)이 민족전통 속에서 군사적 상징을 찾아내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군사주의 문화, 냉전 이데올로기 등을 분단체재하의 통치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것이 한 예이다. 

  관람객들은 김현옥의 서울 개조 사업이 1960년대 후반 서울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놓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강화하는 구실을 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끝 -

이강근(서울시립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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