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재현된 기억들–이순영 展
전시기간: 2016년 7월 11일 – 2016년 7월 29일
전시장소: 갤러리 관악
글: 김세린
기억은 순간의 장면, 또는 스토리가 존재한다. 이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와 함께 영화의 컷처럼 맞물리거나 스틸컷과 같이 굳어진다. 일상에서 겪어나가는 많은 일들은 의미와 함께 추출되어 오랫동안 뇌리에 꽂히는 기억으로 재탄생된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일 수도, 특별함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둘러싼 것이기에, 결국 개인은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순간과 흐름을 재현하고, 끊임없이 선별적인 망각을 시도한다. 이순영은 지속적인 기억의 재현과 편집을 통해, 형상화로 기억에 다가간다. 작가는 기억에서 이미지를 최대한 단순화하고, 의미와 순간의 모습을 극대화해 기억을 되짚어간다.
이순영, <기억의 모션>(white), 실, 구슬, 천, 2014 ⓒ 관악갤러리
이순영, <기억의 싸인>, 실, 구슬, 천, 2015. ⓒ 관악갤러리
일상의 삶은 개인의 생각과 움직임이 맞물린다. 움직임은 짧더라도 본능적으로 생각이 들어간다. 결국 움직임은 생각이 기반으로 작용한다. 생각은 움직임을 주도하지만, 움직임은 일상에서 빚어지는 모든 일들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도, 아이스크림을 사겠다는 생각만 한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작가는 이 순간의 장면장면을 포착한다.
이순영, <일상>, 천, 실, 구슬, 2015 ⓒ 관악갤러리
여러 칸으로 구성된 틀 안에는 천과 손바느질로 만들어진 비슷한 형태의 인형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비슷한 형상의 인형들은 다리를 들거나 허리를 구부리는 등 각기 다른 율동을 관람객에게 보여준다. 인형의 행동은 지극히 무의미해보인다. 틀 안에서 어찌하지 못해 버둥대는 인상까지 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인형의 행동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일상에서 취했을 법한 모습이다. 여기에서 작가가 작품에서 추구하는 기억이 드러난다. 특별함으로 가득찬, 그래서 너무나 차곡차곡 잘 정리된 기억보다는, 일상에서의 평범한 기억과 행동. 작가는 무의식속에 잠재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행동 또는 각기 다른 패턴의 천과 장식을 통해 재현한다.
이순영, <반짝이는 것에 갇힘>, 천, 실, 구슬, 2015 ⓒ 관악갤러리
기억은 결국 순간과 서사를 갖는다. 그것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기억은 결국 시간과 공간 그리고 행위가 공존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과 되뇌임을 통한 감정이 혼입된다. 유쾌함도 되뇌임을 통해 찝찝함으로 바뀌기도 하고, 아쉬움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기억은 그렇게 하나 둘 뇌리에 각기 다른 형상으로 흡수된다. 보편적인 패턴의 기억도, 특별한 순간의 기억도 결국 되뇌임의 과정을 통해 감정과 형상의 변질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에 대한 치열한 반복과 재현을 통해 그것이 정말 온전한 형상의 기억이었을까? 그 순간에도 그것이 진실이었을까? 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최대한 작품의 형상을 간결화하고, 행동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의 온전한 의미와 형상을 치열하게 재현한다.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한 것이다.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1943~ ),
기억과 내면에 대한 성찰, 이에 대한 바라보기와 형상화에 대한 작업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프랑스 설치작가 아네트 메사제의 작가노트에 적힌 위의 문장은 그 작업이 어떠한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이순영 역시 ‘일단 한걸음 물러서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라는 작가노트의 구절을 통해 ‘바라보기’와 ‘성찰’을 통한 형상화 작업을 지속하고 있음을 밝힌다. 모든 기억들은 결국 나의 일상이다. 순간도 서사도 어느 하나 일상을 관통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것을 회피하고 묵인하려해도 결국 사실과 생각을 통해 빚어낸 ‘나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일상의 기억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통해, 과거에 대한 일상적인 기억은 물론 회피하려 했던 기억까지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