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및 장소:
2016. 7.5.(화)~2016. 9.4.(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2016.9.27.(화)~2016.11.27.(일)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 작품: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소장품 231건 1412점
아프가니스탄의 귀한 유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초대되었다. 3년 전 이슬람의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으로 방문했을 때도 한국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화려함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충분히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전시물이 그득하다.
유물들을 보러 가기 전에 머리 속에 유적지들의 이름을 넣어 두면 다소 낯선 지명과 인명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특징을 구별해가며 감상하기 좋다. 테페 풀롤, 아이 하눔, 틸리야 테페, 베그람이 그곳이다. 이 네 곳에서 출토된 기원전 2100년부터 기원후 2세기에 이르는 유물이 전시 범위이다.
전시는 테페 풀롤 Tepe Fullol 무덤에서 나온 유물로 문을 열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순도가 높아 보이는 금으로 만든 잔이 쭈그러지고 나눠져 있다. 오랜 세월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1966년 이곳의 유물을 처음 발견한 길가던 농부들이 금을 나눠가지기 위해 도끼로 쪼개어 남겨진 흔적이다.
<기하학 무늬 잔>, 기원전 2200년~기원전 1900년경, 금, 테페 플롤 출토
테페 풀롤은 청금석 산지 바닥샨으로부터 다른 지역까지의 이동 경로 중에 있는 곳으로, 서쪽에 1,000미터, 동쪽에 3,000미터의 산이 있는 계곡 같은 평지 지형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권력자였을 터. 농부들에게 발견된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과 함께 묻힌 채 발굴되었다.
<키벨레 여신이 있는 둥근 판>, 기원전 3세기, 은, 금 도금,아이 하눔 출토
다음은 아이 하눔(Ai Khanum). 1961년, 아프가니스탄의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머물게 된 촌락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헬레니즘시대 코린트식 기둥머리를 알아본 왕에 의해 조사가 시작됐다. 소련의 통제 하에 프랑스 고고학자들의 조사단이 꾸려져 1964년 발굴을 시작했다. 아이하눔에 있었던 도시는 BC4c말~3c전반 또는 BC 100년 정도까지 존속했던 도시로 천 개의 도시를 가졌다고 알려져 왔던 풍요로운 나라 고대 그리스 ‘박트리아’ 왕국의 도시였다. 아이 하눔은 현재 지명으로 ‘달의 여인’을 뜻한다.
해시계
전시장의 해시계 유물 주위에 틀을 만들고 내부에 조명이 움직이도록 스텝모터를 달아놓아 조명이 움직일 때마다 시간을 가리키는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여지도록 배려했다. 해시계 자체의 조형이 틀 때문에 감상에 방해된다는 점과 모터 소리가 조금 신경쓰이기는 하지만, 어린이 관객의 이해를 돕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틸리야 테페Tillya Tepe 무덤군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1969년부터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조사단에 의해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 유적은 1.5km 둘레의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로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발굴된 무덤은 총 6곳으로 무덤 안에 묻힌 이를 치장하고 있는 화려한 금제 장식들로 인해 세계적인 빅 뉴스가 될 만 했다. 순회전의 포스터와 도록 표지를 장식하는 유명한 금관도 틸리야 테페의 6호묘에서 발굴된 것이다. 금관도 금관이지만 4호묘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의 묘였기 때문인지 금제 장식의 화려함과 완성도, 수량 또한 대단하다.
<금관>, 1세기, 금, 틸리야 테페 6호분 출토
<마카라 위에 서 있는 여신>, 1세기, 상아, 베그람 출토
1992년 아프간에서 공산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만 해도 카불 국립박물관은 건재했다. 그러나 이후 아프간의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카불 국립박물관에 있는 유물은 대거 약탈당하거나 파괴되는 신세가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현재 카불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의 70% 정도가 분실되거나 파괴되었다고 추정한다. 기원전 6세기께부터 사용된 금화와 은화는 대부분 도둑맞았다고 하니, 그 안타까움은 우리 고된 역사에서 유실된 문화재에 대한 안타까움에 버금가는 것일 게다.
아프가니스탄은 동양과 서양의 주요 육상 연결고리인 실크로드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자, 유목민, 상인, 군인들의 통로였고 중동과 아시아 여러 지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그야말로 문명과 사상의 교차로. 그 때문에 알렉산더 대왕과 무슬림, 몽골, 영국, 소련, 영국 등등 수많은 세력의 정복지가 되었던 이 땅의 고된 역사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색깔의 문화를 남겼다. 우리에게 페르시아의 후예 아프가니스탄은 그동안 ‘소련이 침공한 나라’,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 석굴’ 등의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옛날 그 곳을 지배했던 사람들이 남긴 화려한 문화의 정수, 그 일부가 전 세계를 돌다가 우리에게까지 와서 이미지 개선을 요구하니 가서 수긍해 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