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헤더윅 스튜디오’ 전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
전시기간 : 2016.06.16.-2016.10.23
전시장소 : D MUSEUM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일명 ‘씨앗 대성당’)으로 국제 건축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우리시대의 다빈치로까지 불려진다. 건축가로서 또한 만능 디자이너로서 수식되며 아시아지역 5개 도시에서 순회전 “New British Inventors: Inside Heatherwick Studio”을 가졌고 그 마지막 여정이라는 6번째 도시 서울에 도착하여 ‘디 뮤지엄’에서 개막식을 가졌다. 2015년 3월 시작된 이래 싱가포르, 베이징, 상하이, 홍콩, 타이완을 경유하여 서울에 온 국제적인 순회전일 뿐더러, 영국문화원을 중심으로 영국의 국가적인 지원 아래 대아시아 홍보전략 차원에서 준비된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건축이 아직 한국에 세워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전시의 의도를 감지하고도 남을 것이다. 싱가포르, 상하이, 홍콩 등지에서 대규모 건축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저력을 뽐내면서 아시아지역 순회전의 마지막을 서울에서 연 것은 한국건축시장의 잠재력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헤더윅 스튜디오를 주목하도록 이끈 첫 전시는 2012년 영국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에서 개최한 “Heatherwick Studio: Designing the Extraordinary”였다. 두 번째 전시는 부룩 헛지Brooke Hodge가 기획하여 2014년 9월부터 2016년 1월 사이에 미국 3개 도시, 달라스, 로스엔젤레스. 뉴욕 등지를 순회하며 개최된 전시 “Provocations: The Architecture and Design of Heatherwick Studio”였다. 이번 아시아순회전은 세 번째 전시로 영국왕립예술원(Royal Academy of Arts)의 건축담당 수석 큐레이터인 케이트 굿윈Kate Goodwin이 3개월간 진행한 스튜디오 심층탐구를 바탕으로 기획된 것이다.
1994년 스튜디오 창립 이래 2014년까지 20년간 수행해 온 다양한 프로젝트를 ‘Beginning’, ‘Thinking’, ‘Making’, ‘Storytelling’의 4개 카테고리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는데, 전시의 제 1막은 맨체스터 공대와 왕립예술원에서 공부한 그가 얼마나 소재의 물성과 사용성을 남다르게 탐구했는지 나아가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실험과 시도를 얼마나 끈질기게 반복했는지를 이해시키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1994년 스튜디오 창립 이래 2014년까지 20년간 수행해 온 다양한 프로젝트를 ‘Beginning’, ‘Thinking’, ‘Making’, ‘Storytelling’의 4개 카테고리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는데, 전시의 제 1막은 맨체스터 공대와 왕립예술원에서 공부한 그가 얼마나 소재의 물성과 사용성을 남다르게 탐구했는지 나아가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실험과 시도를 얼마나 끈질기게 반복했는지를 이해시키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케이트 굿윈이 맨 처음 보여준 것은 헤더윅 학창시절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과 노트이다. 그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상이 바로 선형 소재를 서로 다른 각도로 기울여서 곡면 지붕을 만드는 데 성공한 ‘파빌리온(1992)’이다. 어린 시절 공예가 집안에서 눈으로 배우고, 공예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마을에서 협동하는 자세를 몸소 배운 젊은이가 장인적 건축가로 출발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 대학졸업작품으로 제출한 이 ‘파빌리온’이다. 설계안을 실현하기 위해서 후원자에게 건립비용이 꼼꼼이 적힌 편지를 써서 부지를 얻어내고, 동료 학생과 강사의 애정어린 도움을 끌어내어 건물을 실현하고 만 그의 용기와 끈기야말로 훗날 스튜디오를 워크숍 형으로 창립하고 운영하는 실마리가 되었음을 굿윈은 ‘편지’를 찾아내 전시를 통해 증명한다.
파빌리온(졸업작품)과 초기실험작
학창시절인 1989-1990년, 그가 재료에 대한 초기 실험에 몰두했음을 보여주는 여러 장의 사진과 시험작은 재료에 손질이나 공구질을 더하여 그 확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훗날 그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반추하게 하는 원형질과도 같은 것임을 보여준다. ‘가로세로로 켜서 확장할 수 있게 만든 통나무’(1994), ‘문짝을 비튼 캐비넷’(1994), 레스토랑 벽면을 장식한 ‘꼬아 놓은 리본’(2000)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소재로 ‘편지 부치는 방식’을 16년간(1995~2010)이나 탐구한 시도는 헤더윅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디자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2007) 같은 획기적 건축이나 ‘런던 버스’(2010) 같은 참신한 디자인이 어떻게 이 스튜디오에서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아울러 짐작케 한다. 이렇듯 ‘beginning’ 에 전시한 헤더윅 스튜디오의 실험적 시도에 담긴 의의를 깨닫고 보면, 길지 않은 시간에 ‘파빌리온’(1992) 설계에서부터 ‘Spun Chair’(2010)를 거쳐 구글본사 사옥 설계에 이르는 가파른 여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작은 체구의 거인 헤더윅과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협동작업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런던버스(2010)
그는 이번 전시 개막에 맞추어 디 뮤지엄 측에서 마련한 강연 자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임하는 자신의 자세를 친절하게 설명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런던올림픽 성화봉(2012)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그는 맨 먼저 사람들이 기존의 성화봉에 대하여 무엇을 기억하는지부터 조사하였다. 그리고 성화의 역할과 상징성이 ‘의례를 통한 사람들의 감정 화합’임을 깨닫고 이를 새로운 디자인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또 싱가포르 ‘난양 기술대학 강의동’(2011) 설계에서는 미래에는 책보다 사람이 영감을 주는 원천이기 때문에 쉽게 만나 소통할 수 있도록 긴 복도를 없앤 새로운 평면의 건물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난양기술대학 강의동(2011)
런던올림픽 성화봉(2012)
이 두가지 예에서 보듯 헤더윅 스튜디오의 독창적 디자인 프로세스는 전통적인 유형학이나 양식을 전제로 하는 대신, ‘왜’라는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여 기존의 해결책을 탈피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다시 이것을 ‘가시화’하는 과정이다. 전시실 곳곳에 놓여 있는 오브제들은 문제 해결과정의 중간 산물일 뿐이어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여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를 개념화할 때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에서는 ‘양식의 동질성’은 거부되고 ‘절차의 일관성’만 중요시된다.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감상 포인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도시의 공유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을 드러낸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Garden Bridge’(2018 준공 예정)가 주목된다. 런던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템즈강에 보행교를 설치하여, 걷고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유공간을 런던시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다리 상부에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화하는 계획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 중심의 공간이 되어버린 근대도시의 대안으로 ‘걷고 싶은 도시’를 제안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견해를 적극 따른다고 밝힌 터라, 그가 왜 사회활동가, 토목설계자, 조경설계자와 함께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모금을 하면서 이 사업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든 브릿지(2013)
헤더윅 스튜디오 안에는 디자이너 상호간의 소통을 위한 특별한 장치 두 가지가 있다. 중심에 놓인 원형테이블, 진행중인 아이디어 메모를 붙였다 뗄 수 있는 자석판벽이 그것이다. 아이디어를 가시화한 모형을 손에 들고 원형테이블에 앉거나 서서 끊임없이 토론하며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 집중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전시를 관람한다면, 이번 전시를 의식해 처음으로 선보인 ‘센서가 장착된 spun chair’에 올라 앉아 전시실 안에서 한바탕 웃고 떠들며 관람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Spun Ch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