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 간 : 2016. 5. 24-2016. 6. 12
한국에 국보 78호와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있다면, 일본에는 코류지(廣隆寺)와 츄구지(中宮寺)의 목조반가사유상이 있다. 물론 국보 83호 반가상과 쌍둥이처럼 닮은 코류지 반가상이 우리에게는 더 익숙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츄구지 반가상이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 전시 소식은 한두달 쯤 전에 들었는데 이는 마치 한·일 월드컵을 다시 개최한다는 이야기를 월드컵을 불과 한달 앞두고 듣는 것만큼이나 흥분되고 믿기지 않는 사건이었다. 그만큼 움직이기 어려운 불상이 한국을 찾았다.
일본 나라 츄구지(中宮寺) 전경
그러나 주인공이 츄구지 반가상 단독인 것은 아니다. 이미 작년 <고대불교조각대전>에서 실컷 국보78호 반가상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국보 78호 반가상 전시는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를 가까이서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때문에 미세하게 찌그러진 부분부터 땜으로 연결한 부위까지 말하자면 민낯의 78호 반가상을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특히 평소 약간 높은 레벨로 전시되던 것과는 달리 거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함으로써 마치 막 주조되어 나온 작품을 접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감흥을 느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추구지 반가상도 마찬가지인데, 일본 호류지에 인접하여 위치한 추구지의 법당에 안치되어 있는 이 반가상도 너무 멀리서만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옆과 뒤는 아예 볼 수 없어서 사실 그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모든 각도에서, 그것도 국내에서 이 반가상을 볼 수 있다니, 이 또한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절호의 기회다. 물론 코류지 반가상이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코류지 반가상이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작품임을 고려하면, 일본을 대표하는 반가상은 츄구지 반가상이기에, 한·일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는 더욱 뜻깊은 전시라 하겠다.
左) 츄구지 반가상, 아스카시대, 7세기후반, 높이 167.6㎝
右) 국보 78호 반가상, 6세기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높이 82㎝
우선 현장에서 들어서 압도되는 것은 츄구지 반가상의 크기이다. 일본에서 볼 때는 멀리 있어 높이 1.67m라는 크기가 실감이 가지 않았지만, 막상 실내에서 보니 국보 78호 반가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 반가상이 원래부터 지금처럼 한 법당의 주존으로 봉안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가상은 중국에서는 주존이 될 정도로 중요한 도상은 아니었고 주로 협시보살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이르러 특별한 도상으로 숭앙되면서 점차 중심 존상으로 격상되었다고 보는데, 말하자면 중국에서는 엑스트라 역할을 하던 배우가 우리나라에서 주연급이 되어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를 찍은 셈이다. 국보78호나 83호 반가상도 주존 내지 그에 준하는 존상으로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 송화산 출토 석조반가상,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 등은 틀림없이 주존으로 조성된 사례일 것이다. 그런 전통이 일본에도 전해져 반가상이 절의 주존으로 모셔지기 시작했으니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츄구지 반가상이다. 비록 현재의 츄구지 법당은 오래된 건물은 아니지만, 반가상이 법당의 주존으로 봉안되는 실제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국보78호 반가상과 츄구지 반가상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사실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 전에는 오히려 83호 반가상과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까이서 면밀히 살펴보니 78호 반가상의 조형성과 공유하는 점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뺨에 갖다 댄 오른손의 손등이 바깥으로 향하도록 되어 있는 점과 독특하게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손가락들, 마치 어떤 틀 속에 맞도록 설계된 듯한 인체의 비례, 길죽길죽한 발가락, 은행잎 모양 옷주름의 반복적 사용 등은 사실상 두 반가상이 공통의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左) 츄구지 반가상(伊東史朗, 『日本の美術』9, 至文堂, 1992)
右) 국보 83호 반가상, 7세기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높이 93.5㎝
하지만 그 위를 감싸는 다른 부분은 국보 83호 반가상과 닮아있다. 상체에는 천의를 걸치지 않아 인체를 강조하고, 옷주름의 처리도 깊고 입체적이다. 대좌 위로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방식도 국보 83호상과 맥을 같이 한다. 보관은 쓰지 않았지만, 이마에 남아있는 구멍을 보면 금속으로 만든 별도의 보관이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마도 78호 반가상의 일월식 보관보다는 83호 반가상의 삼산형 보관처럼 장식성을 최대한 절제한 보관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결국 국보 78호 기반에 국보 83호의 옷을 입혀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츄구지 반가상을 단순히 국보 78호와 83호의 과도기적 성격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옷주름을 보자. 국보 83호나 츄구지 반가상은 매우 역동적으로 물결치는 듯한 옷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국보 83호가 자유분방하면서도 불안정한 떨림이 느껴지는 반면에 츄구지 반가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적이다. 국보 83호의 옷을 입었지만, 정제된 느낌은 국보 78호를 닮았다. 늘어뜨린 왼발 정강이 앞의 옷주름은 국보 78호의 같은 부분에 있는 ‘U자형’ 옷주름이 아니라 83호 반가상과 같이 ‘끊어진 U자형’ 옷주름을 보이는데, 이는 원래 옷이 신체에 밀착되었을 때 나타나는 옷주름이다. 그러나 츄구지 상은 ‘끊어진 U자형’ 옷주름을 표현하고 있지만 옷은 여전히 두껍고 그 아래의 다리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더구나 끊어진 U자는 서로 지그재그로 교차하여 장식적인 면모마저 보인다. 이미 동적인 것마저 넘어 그 자체로 다시금 정적인, 아니 정화된 단계로 넘어선 미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따라서 이는 과도기적 단계가 아니라, 이미 국보 83호 반가상의 표현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이를 장식화한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야할 듯하다.
左) 국보78호 반가상의 측면
右) 츄구지 반가상의 측면(金子啓明,『像のかたちと心-白鳳から天平へ』, 岩波書店, 2012)
앉아있는 자세는 우리나라의 두 국보 반가상에 비해 훨씬 영웅적이다. 우리나라의 두 반가상이 어깨를 앞으로 숙이고 얼굴도 다소 아래로 기울여 무언가 심각한 상태에 있음을 암시하는 반면, 츄구지 상은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 어깨도 더 당당하게 폈으며, 반가한 오른발은 비스듬히 기울이지 않고 수평에 가깝게 누워서 어떤 규칙적인 틀 속에 들어있는 인상이 더 강하다. 반가한 다리를 이렇게 수평에 가깝게 하면 무릎 높이가 낮아져서 사유를 상징하는 오른손이 얼굴에 닿기가 어려워지는데, 여기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국보 78호 반가상만 봐도 오른쪽 정강이를 휘게 하면서까지 무릎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른손이 오른쪽 무릎과 오른쪽 뺨을 이어준다. 그런데 츄구지 상은 오른쪽 무릎이 매우 낮게 설정되었음에도 더구나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지도 않고 꼿꼿하게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무리없이 오른팔이 얼굴과 무릎을 이어주고 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작가는 상체를 다소 짧게 만들고 더불어 대좌에 앉은 각도를 거의 90°에 가깝게 했다. 국보 78호가 비스듬하게 걸터앉음으로 인해 하체가 더 길게 표현되었던 것을 90°에 가깝게 깊게 앉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무릎과 얼굴의 거리를 줄였다. 이렇게 수평과 직각을 강조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어떤 틀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더 강조된 것이다.
더구나 대좌가 매우 크다. 국보 78호 반가상이 앉아있는 돈좌(墩座)는 천의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츄구지의 돈좌는 천의로 덮기에는 너무 크다. 거기다 늘어뜨린 왼발을 긴 연꽃줄기가 솟아나와 떠받치고 있으니 반가상은 더더욱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무래도 국보 78호 반가상에 비해 더 웅장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의도적으로 이 반가한 보살을 영웅적으로 우러러 보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츄구지 반가상의 사색(좌)와 국보78호 반가상의 사색(우)
이쯤 되면 반가상의 조형의지가 조금씩 읽힌다. 이 반가상은 국보 78호 반가상과 같은 깊이 있는 사색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영웅적 성격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반가한 인체는 이상화된 엄격한 틀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고, 옷자락도 파도처럼 요동치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질서 속에 정연하게 펼쳐져 있다. 마치 보살이 깨달은 우주의 질서, 코스모스를 형상화한 것 같다. 원래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마냥 반가상의 핵심은 사유의 표현이었다. 얼마나 깊이 있는 사유를 하는가, 또는 삼매에 들어 얼마나 그 삼매 자체를 즐기고 있는가 등이 반가상의 조형성이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츄구지 반가상은 왠지 그런 사유의 깊이나 즐거움 보다는 딱딱한 틀이 먼저 들어오는 것이 왠지 일본식 미감이라는 인상이 들어 그리 친근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딱딱한 틀은 사실은 사유의 결과를 통해 한층 정리된 사고의 체계를 나타내는 것 같다. 말하자면 츄구지 반가상은 사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마치고 그 결과를 음미하고 있는 단계의 즐거움이랄까.
반면 국보 78호 반가상은 한참 사유가 진행 중인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다만 로뎅의 작품처럼 고민하는 사유가 아니라, 사유 그 자체를 환희하는 사선(四禪) 중의 제이선(第二禪)이나 제삼선(第三禪)의 단계 쯤 된다고 할까.
이번 전시에서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전시된 반가상은 두 구이지만, 박물관 상설전시실에 가면 국보 83호 반가상도 만날 수 있다. 비록 한 공간에 전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나마 한·일의 명품 반가상을 감상하고, 몇 걸음 옮겨 다시금 국보 83호 반가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최고의 식사를 마치고 최고의 디저트를 음미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무척 이상하다.
국보 83호 반가상의 사색
그렇게 완벽하게 보였던 국보 83호상이 이상화된 틀 속에 형성된 한·일의 두 반가상을 보고나니 그렇게 엉성할 수가 없다. 두 다리는 짝짝이처럼 느껴지고, 상체에 비해 하체는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얼굴도 저렇게 안면돌출형 얼굴이었나... 갑작스레 결점들이 몰려온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 결점들이 조금만 지나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오로지 강렬한 꿈틀거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한·일 반가상을 둘러싸고 있었던 틀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 때문에 잠시 이그러져 보였던 것처럼 그 불균형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 SF영화에서 차원을 넘나들 때는 사람들이 이그러져 보이게 하는 특수효과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국보 78호는 사유 자체를 즐기는 반가상이다. 국보 83호 반가상은 사유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찰나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츄구지의 반가상은 깨달음의 결과를 음미하고 있는 상태의 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어쩌면 츄구지의 반가상이 두 개의 상투를 지닌 것도 부처와 보살의 중간적 존재임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아무쪼록 이번 전시를 통해 세 점의 반가상을 보면서 깨달음의 이전과 이후를 느껴보시길 권해드린다. 찰나의 깨달음만큼이나 전시기간도 길지 않다. 6월 1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며 이 기간 중 특별전시실만은 휴관일이 없다.(상설전은 월요일 휴관이므로 국보 83호 반가상은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