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전
전시기간 : 2016.4.12.-5.22
전시장소 : 서울 성북구립미술관
글 : 윤철규(미술기고가,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전통에서 현대 사이의 불안정한 시공간인 근대를 무대로 활동했던 한국화가 변관식은 그럼에도 그 시대의 여타 화가들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이다.
일제시대 조선전람회 참여 포기와 이어 해방후 국전 참여거부. 체제와의 불화를 이고 살았던 시절 반골화가라는 레텔은 매력적이었다. 미술사적으로 봐서도 민화 속에 들어가 지리멸렬해 있던 금강산 테마를 화려한 부활시켰다는 자랑스러움이 있다.
<금강산 옥류천> 1960년대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40x50cm 개인
무엇보다 그림 속에 드러나는 친근하고 푸근한 한국적 정서와 분위기에 이끌렸다고 말할지 않을 수 없다. 옷자락에 바람을 가득 안고 휘휘 발걸음을 내딛는 황포노인과 노란 초가집. 점경(點景) 인물과 그림 속 배경의 작은 집에 불과하지만 이를 보면 어디엔가 일부러 떼놓고 온 것 같은 과거에 대한 미안함, 애잔함 그리고 그리움이 겹쳐지기 마련이다.
<돈암동 풍경> 1960년대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65x97cm 인주문화재단
이 전시는 구립 규모답게 아담하다. 당연히 작가세계 운운하는 전체상을 짐작하기는 힘들다. 친근한 그 느낌과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반추해 즐기는 정도에 그쳐도 그만이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의외의 것이 있다.
그림 속 화제(畵題)이다. 소정 그림에는 거의 화제가 있다. 50년대 후반에 잠시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거의 언제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그림에는 글이 그림과 짝이 되어있다.
<외금강 삼선안 추색> 1966년 종이에 담채 125x125.5cm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외금강 삼선암 추색>이라고 제목을 쓴 1966년 그림도 그렇다. 수십 미터 높이의 바위가 삐죽 솟아 있는 금강산 삼선암을 그렸다.
그 위에 ‘왕우승이 읊은 시는 형체 없는 그림이요 그림은 말 없는 시이다. 모두 품격이 빼어나며 뜻이 높고 원대한 곳에 이르렀다(王右丞作詩爲無形畵, 作畵爲不語詩. 大都品格超絶, 思致高遠也)’라고 썼다.
<촌락풍일> 1957년 종이에 담채 133.5x420cm 국립현대미술관
여기만 쓴 것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1957년에 그린 <촌락풍일(村落豊日)>에도 썼다. 이 그림은 농촌 마을을 둘러싼 얕은 산과 개울을 파노라마식으로 그린 대작이다.
그림에는 초가집도 보이고 들판에서 밭일하는 농부도 그렸다. 그런데 여기에 또 같은 글을 적었다. 이번에는 원나라 유인(劉因)이 북송 미불 그림을 보고 읊은 시도 한 수 같이 적었다.
그가 잘 구사하는 시구는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왜 푸른 산에서 사느냐고 물으면 빙그레 웃고 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다’는 구절은 그의 금강산 그림에 수도 없이 반복된다. 여기에서는 평범한 촌가 풍경을 그린 <산수도>에 다시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산수도> 1970년 종이에 담채 118x32cm 고려대박물관
이런 화제는 아무나 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은 분명 있다. 예전 화가는 가슴속에서 그린 이상적인 가상(假想)의 산수에 대개 이러이러한 화제를 적었던 것이다.
반면 변관식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금강산에 적었다. 또 이름 없는 조선의 어느 평범한 산촌 마을을 그리면서 적었던 것이다. 한 발을 과거에 두고 출발했던 변관식에게 이는 다분히 근대적 자각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라 할 만하다.(y)
(사진제공 성북구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