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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치 없는 시절에 다시 보는 四君子 그림 - 사군자 다시 피우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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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사군자 다시 피우다
전시기간 : 2016.3.30.-5.25
전시장소 : 서울 포스코미술관
글 : 윤철규(아트 라이터)

자리 보존을 위해 이권 넘겨주는 일, 아랫사람 월급 뺏어먹는 일, 남들 안본다고 뇌물 받아 먹는 일, 나라를 위한다면서 제 몸만을 챙기는 일. 
지위도 그럴 듯하고 큰 차에 널찍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자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그리고서는 말로는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다. 당연하듯이 살기 힘들다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받아서는 안 될 것을 받아먹는 일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나와 세상을 위해 일한다고 할 때에는 적어도 염치를 차리고 품의는 갖춰야 한다. 품의는 예의와 같다. 예전에 이 예의와 염치는 관리가 갖춰야할 기본 덕목이었다. 그 당시 사대부는 세상의 부름을 받아 쓰일 때는 관리가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산림에 있으면 학자로서 자기 절제와 수련을 통해 학문과 교양을 쌓았다. 쓰이든 쓰이지 않던 이들이 인간으로서 도달하고자 했던 최종 목표는 군자(君子)였다. 군자는 인간이면서도 도덕이나 인격 그리고 교양과 학문 면에서 인간 존재를 훨씬 뛰어넘어선 곳에 있는 이상적 인간상이다.  


유덕장 <묵죽도 6곡병 중> 종이에 수묵 각 92.5x52.5cm 개인 


이런 완전체로서의 군자를 조선시대 문인, 사대부들은 한 결 같이 추구했다. 그리고 5백 년 동안 열렬히 추구한 나머지 이는 아래위 할 것 없이 한국인의 머리와 가슴 속에 깊이 분명하게 새겨진 것이다. ‘요즘이 어느 때라고 조선 시대 운운하느냐’라고 하지만 파렴치, 몰염치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손가락질을 해댈 수 있는 것은 바탕에 이런 유전자나 DNA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약용 <매화병제도>(부분) 1813년 비단에 담채 44.7x18.5 


이런 군자를 늘 가까이 보고서 배우기 위한 상징으로 중국에서는 매난국죽 네 식물을 꼽았다. 이 넷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상징화되면서 문인들의 이상처럼 자리 잡았는데 그 뒤에는 본받을 만한 문인들의 일화와 엮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가장 먼저는 난초로 난초는 초나라의 애국시인 굴원(屈原, 기원전 343-278 추정)이 조정에서 쫓겨나 양자강 하류를 떠돌며 가을 난을 허리에 찬 일화부터 시작한다. 두 번째는 대나무로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王徽之 338-386)가 하루라도 대나무를 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대나무를 사랑하며 ‘그대(此君)’라고 불렀던 데서 아취 있는 문인사회 속으로 들어왔다. 

작가미상 <매학> 종이에 담채 125x89cm 인주문화재단 


그리고 그 무렵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알량한 벼슬자리를 버리고 돌아와 유유자적하며 국화를 감상한데서 국화 역시 문인의 반려가 됐다. 마지막으로 매화는 좀 늦지만 매화가 있다면 아내쯤 없어도 상관없다고 한 북송의 시인 임포(林浦 967-1028) 일화에서 더욱 문인들이 가깝게 여기게 됐다. 이렇게 넷이 세트가 됐지만 북송, 원나라 때까지만 해도 각각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어쩌다 송죽매가 세트가 되는 정도였다. 


송수남 <선면 국화> 2004년 종이에 담채 25x50cm 개인 


매난국죽 사군자가 하나가 된 것은 명나라 말기 진계유가 이 넷을 다룬 화보집을 내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 후기에 전해진 뒤 열렬한 군자 지향의 유교국가 조선에서 중국 이상으로 애호하게 된 것이다. 조선 후기 이후에는 유달리 사군자 그림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전시는 공사립 미술관 소장품이 아닌 개인 소장만으로 꾸민 점이 특이하다. 따라서 미공개 작품이 대거 볼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전기와 중기는 사례가 드물어 여기에서도 이정의 대나무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후기를 대표하는 심사정, 강세화, 조희룡, 김규진 등이 드물게 보는 작품들이 소개중이다. 


문봉선 <매화> 2010년 천에 담채 145x299cm 개인 


사군자 정신은 여전히 ‘현재적’이란 의미에서 전시는 전통에 그치지 않고 근현대로도 이어진다. 근대를 대표하는 이상범의 사군자 병풍에서 시작해 현대의 장우성, 송수남, 김지하, 장일순, 문봉선, 조환, 이이남 등의 사군자 그림을 보여준다. 이들 속에서 근현대 화단의 한 뿌리가 문인화 정신에 깊이 착근해 있음을 보여준다. 
괄목한 부분은 항일(抗日)운동에 몸을 담았던 지사 화가인 박기정, 김진만. 김진우, 김일 등의 묵죽화, 사군자 그림이다. 이들 그림은 어딘가 주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군자행(君子行)을 추구한 이들의 그림에는 기품과 위엄 같은 정신적 가치가 풍겨나는 것을 사실이다.  


조환 <무제> 2015년 철, 폴리우레탄 290x578x15cm 


파렴치한, 몰염치한의 세상에 ‘사군자’ 다시 보는 일은 꽃향기나 대나무 줄기만 보고 즐기자는 것에 그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자랑스럽다는 포스코가 망가졌다는 세간의 소문도 있고 보면 전시가 얘기하고자 하는 뜻도 그렇고 무게와 흥미가 적잖이 남다르지 않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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