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서있는 사람(L’Homme Debout)》, 팔레루아얄 정원(Jardin du Palais-Royal), 3. 30 - 6. 12.
강애란 외, 《Living on the Border》, 실렌시오 클럽(Silencio Club), 3. 29. - 4. 2.
한불수교 130주년 행사가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5년 9월부터 2016년 12월말까지 1년 4개월 동안이 ‘한불상호 교류의 해’라고 하니 앞으로도 많은 행사가 열릴 것이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는 지난 9월부터 올해 8월말까지, 한국 내 프랑스의 해는 이번 3월부터 12월말까지로 시차가 있다. 따라서 행사가 양국에서 이루어지는 3월부터 5개월간이 가장 많은 행사가 진행되는 최성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불수교 130주년의 초점은 문화에 맞추어져 있기에 미술 이외에 문학,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3월 30일부터 4월 3일까지 그랑 팔레에서 있었던 아트페어의 주빈국이 한국이어서 한국의 화랑, 작가들의 기대와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었다. 실지로 파리 화단에서 한국 단색화가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들에 대한 프랑스의 관심은 흥미를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3월 30일,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왕궁의 정원에서 개막한 정현의 작품은 좌우로 길게 늘어선 나무 사이에 선 인간 군상이었다. 그 특유의 재료인 침목(枕木)을 거칠게 잘라 형상화한 작품은 옆에 선 나무와 함께 동질적인 자연의 모습이기도 하고,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표면이 상처로 뒤덮인 하나의 물질이기도 했다. 턱턱 잘라 최소한의 손질, 최대한의 물질성을 강조한 그의 나무들은 ‘서 있는 사람’으로 명명되었고 관객들은 이 사이를 돌아다니며 작품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그 규모와 이질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든 작품들은 이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시를 기획한 이부갤러리의 디렉터 시실은 정현의 인간은 마치 땅에서 솟아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돌로 된 흰 건물이 둘러싼 중정,그 안의 반을 갈라 만든 나무 터널 사이가 작품이 위치한 곳이다. 반대쪽에는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신문을 읽거나 햇살을 즐기는 곳이다. 바로 옆 중정에는 솟아나는 물의 힘에 의해 항상 그 모습 같지만 절대로 같지 않은 폴 부리의 작품이 좌우로 벌려있고 그 앞으로 모든 사람들을 뛰어다니게 만드는 다니엘 뷔렌의 인상적인 작품들이 영구 설치되어 있다. 인상적인 조각적 장소라 할만한데, 그 곳에 정현의 작품이 선 것이다. 물론 10년 전에 심문섭의 설치가 바로 그곳에 섰었던 적이 있다.
파리왕궁정원은 문화성이 그곳에 있어 문화성정원이라고도 불린다는데 5년 전에 이 전시가 기획되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한복판에서 오픈을 한 것이다. 수년 전에 이루어져야 했을 전시가 이제야 열린 이유는 정원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많이 길어졌던 때문이다. 공교롭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한불수교 130주년의 일환으로 국가가 주체가 되어 장소를 얻고 작가를 선정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역으로 한 작가의 전시에 한불수교 130주년이라는 타이틀이 얹어갔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품의 안전을 위하여 땅 속 깊이 기초공사를 하는 고단한 작업을 마친 후 개막식은 11시부터였지만 정작 식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30분도 더 지나서였다. 국가기념물센터장이 일정이 밀려 예상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대사는 2시부터 시작하는 그랑 팔레의 아트페어 개막식에 늦어질까 적이 마음을 쓰고 있었다. 정현의 ‘서있는 사람’ 개막식은 11시, 2시는 아트 페어 개막식 그리고 6시부터는 이미 전말에 시작한 한국작가들의 영상전이 실렌시오 클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실렌시오 클럽은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디자인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몽파르나스의 피카소가 사용하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지내던 그가 자신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등장하는 실렌시오 클럽의 이름을 빌려와 현실의 공간에 구현한 장소이다.
검게 칠한 외벽은 그곳이 어디쯤인지 상상할 수 없게 하며 게다가 간판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돌아내려가는 벽면의 그림들 하나하나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널찍한 홀을 중심으로 여러 방이 연결되고 그 방 하나하나가 다양한 극장의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필름을 상영할 수 있는 영화관, 연극을 상영할 수 있는 극장과 공연을 할 수 있는 곳 등으로.
요즘 이른바 파리에서 가장 핫하다는 그 멋진 장소에서 한국 작가들의 영상작업이 상영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 첫번째 방이라 일컬어지는 곳에서 데이비드 린치가 디자인한 특별히 안락하고 널찍한 소파에 앉아 한국작가들의 영상을 감상했다. 필자를 포함한 단 4명의 관객이. 영상을 감상하는 시간 내내 뉴욕의 어느 커다란 강당에서 출연자와 그 관계자들을 제외한 외부관객이라곤 필자 그리고 필자를 만나러온 친구들 3인이 전부였던 강연회에서 한국 홍보전문가로 알려진 이의 인사말이 귀를 울리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 많은 교포분들이 함께 하여 주셔서 기쁩니다.” 이 말에 뒤를 돌아본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텅텅 빈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눈, 카메라였다.
이제 전 세계를 하루 안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금방 안다고 하지만 정작 사실이라는 것은 그리 단순하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 순간이었던 그 때의 기억이 파리 몽마르뜨 거리의 멋진 극장에서 재생되었다. 사실보다는 기록이, 기억보다는 기사가 진실을 넘어서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그런데 실렌시오 클럽에서의 《Living on the Border》는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거개의 사람들은 그랑 팔레에서의 ‘파리아트 페어’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고 실렌시오 클럽에 대해 아는 이도 없었다. 이 장소에서 영상을 상영하기 위해 기획자 전상아는 노력했을 것이다. 실지로 파리 아트 페어 주최측에서는 VIP클럽이라고 칭할 정도로 중요한 장소였지만 정작 이곳에 영상을 낸 한국인 작가 이외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아트 페어 입장을 위해 줄서고, 아트 페어 참여를 기뻐하기 위해 파티를 여는 그 시각에 상영된 영상의 시작은 리버풀 비엔날레에 출품하였던 임민욱의 작품 ‘The weight of hands’였다. 사대강 개발과 이에 따라 이별하게 되는 자연과 사람들을 보여주는 작품은 내용상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 해석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어서 강애란은 ‘Re Voice’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증언에서 시작한 종군위안부 문제를 한국 역사의 시작에서 해석을 시작하여 성노예 피해자라는 문제로 확산시켜 인권문제로 부각시키려는 시도를 보였다. 이번 전시에 맞추어 기존의 작품을 약간 손보아 텍스트를 강하게 부각시킨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화연의 ‘Coreen 109’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소개되었던 영상으로 프랑스가 가져간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의 열람을 신청하자 인터넷 링크만 답변을 들은 경험을 그대로 이미지화한 것이다. 두 나라 간 역사의 문제를 선명히 드러낸 작품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뜬금없이 작품 앞에서 프랑스인들도 과연 이 사실을 알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화의 장면과 재연을 섞어 고문의 적나라함을 보여준 최원준의 작품은 한국사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다큐멘터리와 영화 그리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는 기법이라는 점에서 분명 외부세계에서 관심을 가질 만 했다. 안정주의 ‘10번의 총성’은 6명의 무용수가 10번의 총을 맞고 죽어가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준다. 그 죽음의 몸짓은 저항의 몸짓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역사와 개인 그리고 사회의 모습을 유추케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내용의 것이다. 그리고 이수경, 전소정, 정연두, 이완, 장민승 등의 영상도 이미 검증된 역사와 의식의 흐름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 것들이었다.
결국 한 시간 동안 상영된 여러 작가들의 영상은 이미 익히 알고 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라는 장소성에 의해 재해석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듯한데, 물품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이는 판매의 장소에 위치하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기획자는 파리 아트 페어라는 이름을 빌어서라도 한국의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과는 시장에만 가고 극장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이고, 장을 펴는 사람들이 지닌 미술의 장에 대한 이해의 한계에 있을 것이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한불수교 130주년의 프랑스 속 한국의 많은 행사들 중 미술은 현재 진행형의 것들이다. 플랑시 공사가 정식 공사가 아닌 ‘대행’이었던 위치에서 시작한 역사는 열강제국의 침탈기에서 시작한 한불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철도, 우편, 법률, 그리고 미술에서 프랑스는 한국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비록 불합리하고 비공정한 조건이 많았을지라도 프랑스의 도기기사 레미옹이 그린 유화를 보고 가승이 뛰었던 한 청년이 훗날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그에 대한 사실을 행사들 속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외교사를 뒤로 하고 현재를 찬미하는 행사 속에서 간간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전시’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에 새삼 놀란다. 구석기라는 오래된 역사를 지닌 한국이 보여지는 방식은 그 옛날 한국인들을 인종학적 연구대상으로만 보았던 그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시간이 멈춘 그 의식의 세계는 과연 현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결론은 개인과 후원의 문제로도 보인다. 개인인 무용가, 개인인 가수, 개인인 미술가들의 열정과 노력은 현재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힘이 주체가 개인이라는 점에서 한국 예술의 미래는 밝다. 그것이 오늘날 한불수교 130주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헌데 과거의 해석은 결국 국가 혹은 사회적인 자본과 기획에 의해 다루어져야 하는데 일반인들의 상상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역사적 인식의 부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130주년’이라고 하면 우리는 ‘130년 전’의 어떤 사건이나 시간 그리고 경험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