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주재환: 어둠 속의 변신
전시기간 : 2016년 3월 4일(금) - 4월 6일(수)
전시장소 : 서울 학고재갤러리
섣달그믐에 몰래 집에 찾아와 아이들의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이 있다. 그 귀신의 이름은 야광귀(夜光鬼).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한 해를 불행하게 보내게 된다. 그런데, 아이 신발을 감추고 체를 벽에 걸어두면, 그 야광귀는 신발은 잊고 체의 눈을 세다 세다 새벽 닭이 울어 신발을 못 훔쳐가게 된다고 한다. 왜 야광귀는 바보같이 체의 눈을 셀까. 무서운 야광귀도 체의 ‘눈’은 쉽지 않은 장애물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무수히 많은 눈. 악귀를 쫓아내는 눈의 시각적 이미지는 다른 문화에서도 많이 발견되니, 그 눈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체는 귀신을 쫓는 능력이 가장 우수한 물건 중 하나일 것이다.
셀 수 있을까 이 구멍을 Can One Count These Holes, 2010, 캔버스에 아크릴, 체, 모조꽃 Acrylic, sieve, artificial flowers on canvas, 53x45.5x16.5cm
콜라주 작품 <셀 수 있을까 이 구멍을>(2010) 속의 오브제 ‘체’를 들여다보면서 야광귀의 심정을 아주 잠시 느껴 본다. 어둠 속에서 홀린 듯이 눈을 세며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왜 여기 와 있는지. 현실에서 환상으로, 심각함에서 유머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전시장의 한 가운데.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1세대 개념미술 작가라 할 수 있는 주재환의 전시가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80년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역할을 했던 민중미술이 새로운 시대적의 요구(?)에 여기 저기서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에 대한 염려의 말은 잠시 접어두고, 독특한 이력과 작품세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예술가의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괴산괴우 怪山怪雨 Strange Mountain, Strange Rain, 200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90.5x116.5cm
주재환의 대표작으로 자주 이야기되는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비틀어 미술사적 신화를 풍자하고 계급사회와 권력을 씁쓸한 웃음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오줌(봄비)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굵어지는데, 오줌발의 반전 실루엣인 인물은 계단을 오르려는 방향으로 반복된다. 작가는 “말하자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인권강령이 허울 좋은 ‘구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풍자”라고 말한다.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ed. 27/45) Spring Rain Descending a Staircase, 2003, 판화 Engraving, 61x42cm
주재환은 자기 자신을 '광대형' 작가로 표현한다. 그가 말하듯 그의 작품은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러내는데,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변신'이라는 사건은 자주 등장하는 제재가 된다. 밤은 어둡고 준비 기간이며 마이너이고 가능성이다. 밤에는 변신이 가능하다. 일상과 예술이 경계를 허물고 익숙한 데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심연같은 하늘이나 핏자국 같은 커피 등.
커피의 논쟁 An Argument between Coffee, 2010, 종이에 커피 Coffee on paper, 106x77cm
주재환은 2000년대에 들어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이 그의 다양한 작업 방식에서 느끼는 해방감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민중미술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미학적, 형식적인 특징에 대한 논의가 깊이있게 진행된다면 그 하나의 축으로도 생각되어야 할 부분이다.
세계의 욕설 100 One Hundred Curses of The World, 2015, 인쇄물 Print, 41x28.5cm
<태풍 아방가르호의 시말> <몬드리안 호텔> 등 경쾌한 기호학적 뒤집기를 통해 문화적 아우라와 자본과 권력을 해체해 온 주재환 작품 세계에 대한 논의는 작품의 사회 비판적 주제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는 어떤 이념이나 시대정신을 강조하는 면이라기보다 미학적인 평가를 기대하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시대라는 맥락으로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일면 부분적인 한계를 지닌다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민중미술의 여러 시도들이 읽힐 수 있도록 한차례 호흡에 들어간 결정적 국면이라고 이해한다면, 요즘의 이런 들뜬 분위기도 다소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수정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최)
몬드리안 호텔 Mondrian Hotel, 2000, 컬러 복사 Color Print, 148.3x11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