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한중옥 전
전시기간 : 2016.3.5.-3.14
전시장소 : 제주도 서귀포예술의 전당
글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한중옥은 제주도의 자연으로부터 작업의 단초를 마련한다. 작가는 기이한 색채와 무늬, 결을 지닌 제주도 돌을 보았고 발견했다. 그것은 자연이 만든 흔적이고 시간이 완성한 예술작품이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경지를 지닌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물질이다. 자연만이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인간은 다만 그것을 발견할 뿐이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돌을 공들여 재현했다. 완강한 바위이자 거대한 돌의 피부에 육박해 들어가 그 장소에 들러붙듯이 그렸다. 그것은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뱀의 시간이나 물의 시선이고 바람의 시선이다. 그리는 방법이 참 특이하다. 종이에 크레용을 칠하고 난 후 칼로 긁어내어 그린 그림이다. 믿기지 않는다. 화가들이 저마다 독특한 재료, 물질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기는 하지만 크레용만으로, 또한 이토록 특이한 방법론으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중옥은 크레용으로 기존 회화재료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독특한 방법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우선 그는 검은 종이위에 크레용으로 밝은 색상을 가득채운 바탕 면을 만든다. 여러 색채의 층을 두텁게 올리고 난 후에는 날카롭고 예리한 칼끝과 칼날로 긁어내고 새기고 문질러서 돌을 그려 보인다. 돌처럼 보이는 표면과 흔적을 상기시킨다. 종이의 피부에 육박해 들어가 그 표면을 긁어서 내부에 깃든 색감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칠하고 긁어 그린 이 그림은 회화이면서도 다분히 조각적이기도 하다. 칠하는 행위는 표면을 색으로 덮는 일(회화)이고 긁어내는 일은 다시 그 크레용의 질감들을 삭제시키는 일(조각)이다. 더하기와 빼기로 이루어지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크레용이란 재료를 가지고 이토록 매혹적이고 정교한 돌의 피부를 재현하고 있다.
그가 그린 돌은 바위의 표면/살이다. 잘게 쪼개진 개별적인 돌멩이가 아니라 넓적한 바위의 표면이고 굴곡이 심하거나 무수한 주름, 선이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구멍이 숭숭 나 있거나 울퉁불퉁한 요철효과를 간직한 돌의 피부다. 이 돌은 제주 해변의 용암석이다. 제주도 서귀포 앞 바닷가 언덕의 용암층과 조간대의 용암석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자연적으로 응고된 제주 용암석은 다공질의 표면과 기이한 형태, 피부의 다채로운 변화, 색감과 질감 모두에서 매혹적인 존재다. 그 돌의 피부는 시간의 흔적을 받아 생긴 자취다.
그러니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결국 영겁의 시간인 셈이다. 이처럼 돌을 하나 그린다는 것은 그 돌의 아득한 역사, 까마득한 시간, 형언하기 어려운 자연의 변화무쌍한 내력을 그려내는 일이다. 그것은 특정 돌의 묘사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돌이 짓고 있는 표면의 질감과 물성, 그리고 자연이 만든 신비스러운 아름다움과 불가사의한 이미지에 대한 경외감에 기인하는 것 같다. 돌에 내려앉은 아득한 시간의 흔적을 읽어내고 그것을 공들여 재현하는 일이자 자연의 신비를 몸소 체험하는 일이다.
동시에 자연이 만든 흔적을 통로 삼아 그 내부로 들어가 모종의 신비에 도달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그의 작업은 돌을 통한 몽상하기이자 그 여정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그 여정의 지도화는 돌의 피부에 난 무수한 결과 구멍들이 제공한다.
다른 어느 곳의 돌보다 제주도의 돌은 흥미롭고 재미나며 신기한 형상과 색감, 피부 표면의 여러 상흔을 안기고 있다. 저 돌이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에게는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모든 돌들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환영을 자극했으며 또 다른 존재를 그 돌 안에서 찾아내도록 권유해준 매개들이다. 이미지를 가능하게 해준 결정적 존재라는 얘기다. 비로소 돌을 통해 사람들은 상상하고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유하는 인간', '예술 하는 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돌들은 현실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존재의 이름을 부여받아 왔으며 저마다 신화와 전설, 이야기를 하나씩 간직하게 되었다. 돌로 인해 이미지행위와 상상력, 꿈과 환상을 보는 눈들이, 마음들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한중옥이 그린 저 돌 역시 그러한 신화를 하나씩 달고 있다. 그가 재현한 돌의 피부를 통해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에 마냥 빠져들고 있다. 저 돌들이 지닌 기이한 질감으로 인해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이 자극되고 그로 인해 영감과 몽상 또한 마냥 부풀어 오른다. 옛사람들이 돌을 품고 돌을 완상하며 자연과 생의 이치를 깨달았던 생의 철학을 그의 그림 앞에서 얼핏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