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통일아! 서예박물관 재개관전
기 간: 2016.3.1.-4.24
장 소: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삼일절 행사의 애국가 제창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인 3월1일 12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은 서예인들로 때 아닌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일층 로비를 제외하고 2층과 3층 전시실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점잖은 것 좋아하는 일부 원로에게는 ‘무질서하다’는 타박의 말도 들렸다. 전신인 서예관 시절을 포함해 서예박물관의 전시를 찾는 관람객이 하루 십 수 명에 불과했던 나날의 굴욕적 기억에 비추면 이날의 성황(盛況)은 초특급 대사건이자 감개무량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무슨 일인가. 우선 서예박물관이 오랜 숙원 사업인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재개관한 것이다. 그동안 말이 서예박물관이지 사실 전시공간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다 아는 얘기로 서예박물관은 5공 시절 예술의 전당의 아카데미 시설로 지어졌던 건물이다. 그러던 것이 당시 청와대 서예사범이던 원로 서예인이 청을 넣어 하루아침에 서예관으로 쓰게 됐다.
당연히 전시장으로 부적합할 수밖에 없었다. 리모델링이나 개축이 필연적이었으나 서예는 전당 내에서도 우선순위가 밀렸다. 그러다 20년을 훨씬 넘겨 2014년 가을에 예산이 확보되고 14개월의 공사를 마침으로서 드디어 ‘우연히 얻어 걸린 곁방살이’를 청산하게 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재개관을 알리는 자리로 서예인들이 감격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새 집 구경을 겸한 나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만이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재개관전에 출품한 자기작품 확인하기 위해 가족 나들이를 한 경우도 있다. (재개관전에는 ‘통일’을 테마로 서예인 1만 명에게 글씨 한 점씩을 받아 다양한 형태로 설치해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표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실로 서예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한 것은 서예계 내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바람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서예는 오래 전부터 인기 하향이다. 서예관이 세워질 때 이미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했다. 이십년도 더 지난 지금은 상황은 더 나빠져 팔면, 십육면초가 이상이 됐다. 글씨 이콜 자판 시대가 된지는 이미 오래이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수신(修身)이나 교양(敎養)을 위해 붓을 잡지 않는다. 거기에 南이라고 써놓고 北이라고 읽으면서도 태연하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시류가 변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절박함을 느끼는 것은 시류도 시류지만 서예 내부에서 계속해서 답을 못 찾고 있는 답답함, 불안감이 아닐 수 없다. 글씨를 쓰고는 있지만 ‘書가 藝術인가’하는 존재론적인 물음이다. 현대 예술(The Contemporary Arts)의 세계에서 서예에 있는 본래의 무엇이 당대 예술에 견줄만한 예술적 특성이 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균형을 맞춰 쓴 글자의 미적 아름다움인가. 아니면 미술적으로 보이는 글자 점과 획의 모습인가. 또 그도 아니면 오토마티즘처럼 자유분방하게 그은 개성적 선인가.
서예계는 오랜 비인기와 파벌 내분으로 인해 심한 내외상(內外傷) 상태이다. 시중의 서예 사범들이 서실 문을 닫은 지 오래됐고 몇 안 되던 대학의 서예과 역시 한둘씩 폐과(廢科)되고 있는 중이다. 내상도 심해 비전 이전에 인재 부족이 겹치고 있다. 정교하고 치밀한 이론가, 미래를 내다보고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가, 노련한 술수로 목표를 달성해가는 행동가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한마디로 작금의 한국 서예는 초라한 행색에 저무는 사거리에 서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서예박물관 재개관에 많은 서예인들이 모인 기대와 희망은 사실 여기에 있다. 절박함을 행동으로 묶어내고 희망을 비전으로 승화시켜줄 구심점 역할을 서예박물관이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고 갈 길도 멀어 보인다.
이날은 모처럼 서예 행사에 문화부 장관까지 참석해 축사를 했다. 주최측은 여러모로 고무된 인상이다. 출발선 상의 마라톤 러너처럼 ‘오늘 컨디션 좋습니다’ ‘기대해주시니 해 볼만 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하기도 하다. 어째든 서예박물관 재개관으로 書가 現代藝術 속에 살아남아 부활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를 풀어갈 현장이 새삼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늘 그렇듯이 기대와 희망 속에 ‘땅’하고 출발 신호총은 이미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