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한국현대미술의 눈과 정신Ⅱ-리얼리즘의 복권
장 소 : 가나인사아트센터
기 간 : 2016.1.28.~2. 28
추억팔이-레트로 마케팅의 시대에
최근 대중문화 쪽에서 복고 즉 추억팔이 마케팅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더니 도처에 추억팔이가 한창이다. 대표적인 추억팔이로는 아마도 MBC의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90년대 인기가수들을 다시 무대로 불러냈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라 할 것이다. 물론 이전에 영화 “건축학 개론”이나 “써니”같은 영화로 촉발되어 “응답하라”시리즈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추억 또는 기억에 오늘이라는 시제를 입혀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거나 또는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함으로서 추억을 공유하는 잠재 고객들이 존재함으로서 손쉽고 실패 확률이 낮은 ‘안전한' 아이템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즈음부터 소위 레트로 마케팅이라는 복고 마케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과거를 오늘로 옮겨놓지만 과거를 통째로 가져올 수는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순간, 기억들은 언제나 애틋하고 향수를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 추억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복고마케팅 즉 레트로 마케팅이 먹히는 것은 오히려 힘들고 못 살았던 그 시절보다 지금, 오늘이 더 팍팍하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웠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거나 또는 잊도록 해주었던 사람들 간의 정, 싸고 조악했지만 그 물건을 장만했을 때의 만족감 같은 것들이 비록 지금이 풍요롭다할 지라도 그 풍요를 위해서 지불해야하는 나의 노력과 시간이 너무 스스로에게 벅찬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레트로 마케팅은 영화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식음료 분야, 가전제품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효하다. 아니 어느 분야건 가리지 않고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실 마케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미술동네의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레트로 마케팅의 기류와 전혀 무관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색조 회화에 이어 이 붐을 이어가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민중미술 중심의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마케팅의 진원지, 단색조 회화
최근 들어 민중미술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면서 민중미술에 대한 관심이 새삼 대두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열리고 있는 전시는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의 눈과 정신Ⅱ-리얼리즘의 복권> 전 하나 뿐이고 추후에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나아트센터의 이호재가 기증한 100여점의 민중미술계열의 작품을 오는 5월에 <사회 속 미술>(가제)로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한 후 서소문 본관에 상설전시공간을 마련해서 순차적으로 전시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여기에 학고재갤러리가 오는 3월 민중미술 1세대 작가인 주재환의 전시에 이어 올 하반기에 신학철의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부이다. 민중미술에 대한 다시읽기가 지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같은 보도는 실은 사실과 다르다. 따라서 최근 이러한 보도와 움직임은 따지고 보면 민중미술에 대한 학술적, 미술사적 관심보다는 시장에서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복고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혐의가 짙다. 즉 '시장이여, 날 좀 보소'라는 손짓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마케팅의 저간에는 소위 단색조 회화가 2014~15년 미술시장을 주도 견인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2~3년 동안 미술시장에서 관심주 정도로 머물던 단색조 회화에 대한 마케팅이 콜렉터들의 관심을 유도하면서 미술시장의 주도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단색조 회화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어 전체적으로 경기가 하락할 즈음 하락세가 확실시 되는 미술시장을 선도하면서 최근 미술시장을 선도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단색조 회화의 시장적 성공의 배경에는 70년대 이후 자신의 작업을 일관되게 이끌어 온 작가 개개인이 저력과 함께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 한국 사회도 근대적 정서로부터 모더니즘적 가치로 옮겨가야 하는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진 점이 유효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관심있게 들여다보면 마치 증권시장의 작전세력처럼 소위 한국미술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주요화랑들이 앞 다투어 또는 주거니 받거니 단색조회화에 올인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한 화랑이 적어도 지난 5~6년간 해외 주요 아트페어에 계속해 뚝심 있게 들고나가 꾸준하게 전시하고 판매를 지속해왔다는 점 그리고 그중에는 외국의 주요 미술관과 컬렉터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과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해외 주요화랑의 기획전시 등으로 이어지면서 소위 '해외에서 떠야 국내에서도 뜬다'는 마케팅이 주효한 때문이다. 이렇게 단색조 회화가 새롭게 주목을 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위 미술시장의 ‘마케팅’의 결과였다. 그래서 단색조 회화의 시장에서의 잠정적인 성공이 마뜩치가 않은 이유이다.
2015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광경
파리 패로탱갤러리에서 열린 박서보 전시 광경
사실 미술품이나 특정 경향의 미술이 미술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전에 필수적인 것이 미술사적, 미학적 검증과 함께 사회사적인 검증이다. 하지만 여전히 단색조 회화는 영어의 모노크롬(Monochrome)의 번역어인 ‘단색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그 정체성을 제대로 그덜내지도 못 한 채 저자거리에 나앉음으로서 새롭게 ‘읽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는 단색조 회화를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등 미술사적 담론을 생산하고 검증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기관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콜렉터들의 관심과 기호, 투자가치 등등이 더 중시되는 시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장에서의 성공을 마치 미술사적 가치를 획득한 것처럼 오인한다면 단색조 회화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일시적인 것으로 즉 재판매(Re-Sale) 판로가 막히면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추후 시장의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다 학술적 즉 미학적, 미술사적 검증을 꾸준히 해서 미술사적인 영속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는 민중미술도 마찬가지이다. 단색조 회화가 마케팅을 통해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를 그대로 벤치마킹하려는 작금의 시도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단색조의 회화 이후? 민중미술
단색조 회화의 활황은 미술시장을 지탱할 주도주가 없는 상황에서 구원투수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마치 야구에서 투수로 치면 5~6회까지만 던져주면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투수가 8회 말까지 던진 격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색조 회화의 마케팅 범주가 작가의 숫자와 시기적으로 워낙 한정적인 관계로 미술시장을 이끌 견인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그 견인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것이 중론이고 보면 시장에서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을 터이다. 그래서 발빠르게 민중미술을 마무리 투수로 내 세운 것이다.
이렇게 민중미술이 대척점에 있던 단색조 회화의 뒤를 이어 미술시장에 뛰어들었다. 왜 누가 무슨 이유로 민중미술을 시장으로 불러냈을까. 그것도 ‘민중미술’이라는 적어도 80년대 이 미술운동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름을 슬그머니 내리고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물론 시장에 나오면서 민중미술이 갖는 80년대의 저항과 반정부 등등의 이미지를 희석시킬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보다 적확하게 ‘민중미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 ‘민중미술’이라는 명칭이 미술시장에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혹여 있다하더라도 그 미술사적, 미학적 논의와 가치를 위해서 정직하게 민중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오히려 더 많은 콜렉터와 대중들에게 어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민중미술 대신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많은 작가들을 이 군에 포진시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길게 끌고 갈 요량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민중미술이라는 강력한 이미 브랜드가치를 확실하게 점유하고 있는 용어를 뒤로 미루어 두었다는 것은 순전히 마케팅 차원에서만 본다면 실책임이 분명하다.
민중미술 대신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많은 작가들을 이 군에 포진시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길게 끌고 갈 요량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민중미술이라는 강력한 이미 브랜드가치를 확실하게 점유하고 있는 용어를 뒤로 미루어 두었다는 것은 순전히 마케팅 차원에서만 본다면 실책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사용되는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도 문제이다. 리얼리즘의 뜻은 그 폭이 매우 넓다. 민중미술이 주를 이루는 전시에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우리는 사회적 리얼리즘을 우선해서 떠 올린다. 우리나라에서 리얼리즘이란 단어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사회주의라는 말과 짝을 이루어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얼리즘이 자연주의적 사실주의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와 중첩되면서 의미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의미는 하늘과 땅차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현대미술의 눈과 정신Ⅱ-리얼리즘의 복권>전시는 그 스스로가 의미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즉 여기서 사용되는 리얼리즘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진 리얼리즘이라는 점에서 의아하다. 시작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시작했지만 말끝을 흐려 말의 진정한 의미를 얼버무린 꼴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에서의 관심 이전에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같은 공공성과 비영리성이 전제되는 시설이나 기관에서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전시와 각종 학술행사를 통한 의미부여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80년대 민중미술은 사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장르가 아니다. 여전히 공동체미술, 커뮤니티 아트, 생태미술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오늘 벌어지고 있는 미술운동의 근원이 되고 있다. 또 80년대의 민중미술 즉 리얼리즘미술의 경향도 따져보면 세상의 모든 것과 스스로 단절한 채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던 추상미술 중심의 모더니즘적인 경향의 미술 즉 단색조 회화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이리하여 당시 경제 발전이 최고의 가치로,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하면서 피폐해진 민중의 삶에 주목하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최저한의 삶조차 담보되지 않은 민초들의 현실에 주목했던 “현실과 발언”,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 등의 그룹들이 역사 또는 사회, 민주, 인권, 도시와 대중문화, 자본주의적 현실 등의 소재를 통해 시회를 비판적으로 표현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두렁”이나 “광주자유미술인협회” 등의 그룹들이 민중과 직접 소통하고 민초들이 직접 제작하는 사회변혁에 기여하는 미술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시민판화학교를 열어 집단 창작을, 탈춤 등 연희문화를 통해 연대를 강화하며 일과 놀이가 병행하는 운동을 노동현장에서 벌여나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또한 민중미술은 작가 개개인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미술활동 외에도 판화운동, 출판미술,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 현장의 걸개그림 등으로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런 광범위한 민중미술을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미술시장에 담으려는 이번 전시는 스스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릇 전시란 맥락이 중요하다. 이렇게 전시의 주제어를 넉넉하게 잡다보니 작가 선정에도 적확한 기준이 서지 않는다. 뜬금없이 민중미술계열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70년대 말 등장한 극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이 등장하는 것은 그 맥락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또 작가들의 면면이 민중미술의 중심을 이루어 온 작가라 하더라도 그들이 이번 전시에 함께 하게 된 이유와 논거가 분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때문에 시장을 염두에 둔 전시를 큐레이팅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화랑에서 준비하는 상업적인 전시에는 원래 큐레이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화랑에서 일하는 이들을 큐레이터라 부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랑전시는 미술사적인 맥락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이 우선시되는 때문에 좋은 작품도 중요하지만 잘 팔릴만한 작품이 더 중요한 때문이다.
이종구 <이씨의 여름> 1991
민중미술의 시장에서의 미래
사실 민중미술은 민족미술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또 일부에서는 사회적 리얼리즘 또는 소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단색조회화가 우선 급 한대로 모노크롬이라는 영어의 번역어를 명칭으로 사용하면서 그 의미와 미학적 틀이 어긋난 것처럼 민중미술도 그러한 오류를 줄이고 미술시장에서 주도적인 블루칩으로 기능하기위해서는 그 이전에 그 개념과 용어의 정의 그리고 의미의 갈래치기 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민중미술도 민족미술을 주창했지만 민족미술, 민족문화라는 용어를 먼저 사용하고 민족문화의 창달을 문화정책의 목표로 삼았던 박정희 정부의 ‘민족’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대한 개념정의도 필요하다. 사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민중미술만큼 많은 논객들이 글로 다룬 미술의 경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담론이 생산되었지만 이를 정리하고 걸러 제대로 된 민중미술론으로 완성시킨 예는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민중미술 15년 전>외에 언 듯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관점에서 필자가 2005년부터 추진해서 2007년 실현된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일본 5개 도시를 순회한 <민중의 고동: 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이 민중미술의 폭을 넓게 잡고 역사적으로 맥락을 추적해본 전시가 고작이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전 기사 및 도록 표지
2005년 일본 5개도시를 순회한 민중미술전 民衆の鼓動 - 韓国美術のリアリズム1945-2005의 포스터
따라서 이제라도 시장을 주도하려면 민중미술을 새롭게 읽고 다듬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초아래 민중미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읽은 전시들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는 남는다. 가장 우선되는 것은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미술을 자처하는 민중미술이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 또는 천민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움직이는 미술시장에 종속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예술이 아니 민중미술이 화상들의 이익에 봉사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대상으로 전락 할 경우 민중미술은 그 동기의 순수함과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통속적인 상업주의의 희생물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중미술이 그토록 혐오했던 매판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결정인 미술시장과 손을 잡을 때 그 진정성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미술의 미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단색조 회화의 현재를 반면교사로 삼을 때 지속 가능하다. 70~80년대 대한민국 미술동네의 반은 적어도 단색조 회화가 차지했다. 상당히 많은 작가들이 소위 '행위는 계속되지만 의미는 지워가는 작업'을 지속해왔고 그 중심에는 각 지방도시에서 우후죽순처럼 열렸던 현대미술제를 통해 자신들의 작업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단색조 회화를 시장에 끌어내면서 그 범위를 너무 좁게 잡으면서 특정작가들로 단색조 회화는 특정되고 말았다. 여기에 인기작가 또는 팔리는 작가들이 ‘단색’이라는 현상만을 토대로 함께 하면서 스스로의 성격을 모호하게 하고 말았다.
사실 단색조 회화의 국외에서의 선전의 배경은 먼저 꾸준하게 단색조 회화에 대한 연구서가 외국에서 발간되었다는 점이다. 2013년 조앤 기 미시건주립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저서에 이어 싱가포르에서 단색조 회화에 대한 연구서가 발간되었고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민관이 각각 한국현대미술의 세계화를 단색조회화들을 모아 학술적이며 문화적인 목적으로 전시를 이어나갔고 한국의 상업 화랑들은 외국 유수의 화랑과 연계하여 전시를 이어나갔기 때문이 가능한 것이었다.
외국 화상이나 콜렉터들이 관심을 가진 배경도 알아야 한다. 한국미술시장의 성장보다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예상한 외국 화상들의 관심은 한국의 단색조 회화에 집중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미술시장을 살펴보면 결국 자국의 미술품의 자국에서 소비되는 경향을 지닌다. 또 미술시장의 파워는 자국의 국력에 비례하며 자국 컬렉터의 힘에 의존한다. 유럽작가는 유럽에서, 미국작가는 미국에서, 남미작가는 남미에서 상종가를 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언젠가 한국시장에 리세일을 위해서 외국의 컬렉터들이 관심을 갖고 선점하려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임옥상 <귀로> 1984, 종이 부조에 먹
외국 화상이나 콜렉터들이 관심을 가진 배경도 알아야 한다. 한국미술시장의 성장보다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예상한 외국 화상들의 관심은 한국의 단색조 회화에 집중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미술시장을 살펴보면 결국 자국의 미술품의 자국에서 소비되는 경향을 지닌다. 또 미술시장의 파워는 자국의 국력에 비례하며 자국 컬렉터의 힘에 의존한다. 유럽작가는 유럽에서, 미국작가는 미국에서, 남미작가는 남미에서 상종가를 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언젠가 한국시장에 리세일을 위해서 외국의 컬렉터들이 관심을 갖고 선점하려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단색조 회화가 비교적 2~3년의 성가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간 단색조 회화가 미술시장의 중심은 아니다 하더라도 꾸준하게 시장을 지켜왔다는 점과 90년대 이후 단색조 회화를 취급하는 화랑들이 많이 늘어나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참여와 공조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의 성공이 가능했다. 하지만 민중미술의 경우 그간 취급했던 화랑군이 좁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중미술의 정점이라 할 80년대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최고 아니면 안 통하는 미술시장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마케팅이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는 단색조회화의 초기작품들이 단색조회화 붐을 주도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그 바람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사실도 유념할 부분이다.
여기에 민중미술은 지금까지 어느 정도 미술시장에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급등하는 경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라 할 것이다. 이상의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채 시장 중심으로 민중미술이 다루어 질 때 우리는 또 하나의 귀중한 문화적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명분을 먼저 세우고 나중에 이익을 취할 것을 권한다.
민중미술 붐이 다시 일 것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지어내는 전시들을 맞닥뜨리면서 문득 오윤 형의 '민중을 자기실현의 대상물로 현현화하거나 또는 민중을 제물화'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말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4년 <민중미술 15년 전>이 개최될 당시 민중미술을 박제화한다고 비판하던 그때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