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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막한 화면, 그리기의 조건 <김홍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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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김홍주 전
기 간: 2015.12.17.-2016.1.24
장 소: 서울 국제갤러리

김홍주는 현재 한국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중요한 이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인 1970년대 중반에는 당시 주류 미술이었던 단색화와 더불어 거의 동시에 전개된 소위 '극사실화'라 불리는 경향의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오브제와 이미지를 교차시키는 작업을 통해 관습화된 회화 개념을 반문했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를 매체로 회화의 기본 전제인 일루져니즘(Illusionism)을 역설적으로 비판 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에게 회화는 의미 전달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기에 무엇을 그리는가라는 개념보다는 어떻게 그리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실 모든 미술은 추상적임과 동시에 무언가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재현적이다. 미술은 외부세계와 나란히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이다. 김홍주는 분명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의미의 공백’을 주며 촘촘한 붓질로 산포된다. 결국 그려내는 대상은 독립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무수한 붓질이고 회화는 하나의 구성이다. 화가는 실재의 것을 택하며 그것을 해체하고 재조직하는 자이다. 그의 그림은 결국 모든 그리기가 사물을 그대로 베껴내기가 아니라 구성임을 강조한다. 

김홍주는 실재와 회화적 환영간의 간극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오브제이며 동시에 일루젼으로서의 이중적 작품 구조를 지니고 있다. 꽃잎이나 잎사귀는 세필로 섬세하고 완벽하게 표현되었으며 이 작가 특유의 세련된 화면 구성에 힘입어 새로운 형상성의 매력을 발휘한다.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리얼 오브제)를 이용해 그린 곳과 안 그린 곳의 미묘한 관계를 문제 삼고 회화적 재미를 교묘히 감추면서 즐겨 사용하는 매력, 그리고 캔버스의 조직과 붓 자국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동질화된 상태로 화면을 만들어 보는 이의 시선을 이완시켜 시각적 착각에 빠지게 한다. 아울러 그로테스크한 환상, 조감도적인 배열, 대상의 왜곡이나 변형, 오브제 콜라주의 독특한 구성, 변태적인 왜상(歪像), 투시화법에 의한 이중상과 같은 특이한 구성과 방법에 의존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은 수를 놓은 것 같이 세밀하면서도 촉각적인 필법에 의한 무수한 시간의 축적, 노동에 힘입어 이루어졌다.

작가는 세필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물리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회화에 개입시킨다. 세필의 반복적인 터치로 완성되는 그의 작업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의 시간과 행위를 캔버스에 담으면서 회화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보다는 회화 자체, 그리기 본연의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감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꽃이나 문자, 혹은 풍경 등은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도식화된 이미지일 뿐,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어떤 의미를 강요하지도 않으며 단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전적으로 다시 보기를 제안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질문한다. 이는 ‘그리기’라는 회화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귀결되는데, 작가는 회화의 본질을 다룸으로써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을 인식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다루는 소재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낯익은 요소들을 바라보는 관습적 시선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김홍주의 회화는 2차원이라는 회화의 공간성에 신체성과 ‘느림의 미학’과도 같은 지루하고 막막한 시간성(장시간의 붓질이라는 수공성)을 개입시켜 회화의 촉각적 매력을 적극 발산하고 있다. 근작은 구체적인 형태가 거의 사라지고 오로지 단색으로 물든 화면, 작은 붓질만이 가득한 화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림의 최소한의 조건으로만 충족된 화면을 제시한다. 어쩌면 그림이란 더도 덜도 아닌 붓질, 막막해 보이는 화면을 채워나가는 무모해 보이는 수고로운 노동은 아닐까?(*)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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