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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화(讀畵)에서 독해(讀解)로 - 독화讀畵, 그림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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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독화讀畵, 그림을 읽다
전시기간 :2015.11.24-2016.2.9
전시장소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글: 조은정(미술사학자, 미술평론가)

어떤 전시는 참여작가를 보고, 어떤 전시는 전시명만을 보고 찾는 경우가 있다. 그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려진 허상에 근거한 즉 이미지 작용에 불과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독화, 그림을 읽다》는 후자에 속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화(讀畵)’라는 개념을 ‘그림을 읽다’로 풀이한 전시는 생각보다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연구자로서 처음 실견하는 작품들도 있어 흥미 있는 전시였다, 분명. 

하지만 전시장을 나서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이를테면 옆집 할머니 안부인사 드리러 갔는데 마당에서 마주친 아줌마와 수다떨다가 “참, 할머니는 어떠셔요?”라고 묻자 “응, 괜찮으셔”라는 말을 듣고 골목길을 돌아섰을 때의 느낌 같은 것이랄까? 방문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런데 정녕 안부 인사를 한 것이 맞는가. 이 무언가 같지도 다르지도, 맞지도 틀리지도 않은 상황은 미끄러짐이라고 해야 할까.

50여 명의 작가 100여 점의 작품이 4개의 전시실에서 ‘1. 자연의 이치를 읽다, 2. 사람의 마음을 읽다, 3. 사물의 원리를 읽다’라는 주제로 전시되고 있다. 브로슈어에도, 보도 자료에도 50여 명의 작가 명단은 제시되고 있지 않으니 감상자로서의 독자만이 존재하는 저자의 죽음을 염두에 둔 성도 싶다. 바로 이 지점 ‘독화(讀畵)’의 의미는 그림 읽기가 아니라 ‘텍스트 읽기’화함으로써 의미의 미끄러짐에 이른다. 

소동파가 왕유의 작품을 보고 읊조렸다던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공감각적 상황이나 동음이자(同音異字), 고전명구(古典名句), 우의(寓意) 등 이를테면 도상학적 분석이 따르지 않는 세계로 초대받았던 것이고, 그곳은 감상(鑑賞)이라는 근대의 세계였다.


조석진 <노안도> 1910년 종이에 수묵담채 125x62.5cm 


전시 기획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뚫어져라 쳐다본 브로슈어에서 알아낸 것은 소림 조석진의 〈노안도〉를 세 컷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는데, 공중에 있는 기러기(혹은 오리) 두 마리가 두 개의 화면에서 중복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한국민족대백과 사전』에는 ‘노안도(蘆雁圖)의 노안을 노안(老安)과 같은 의미로 여겨 노후의 안락함을 기원하는 그림으로도 그렸다’고 정의하며 이번 전시의 브로슈어에 실린 작품을 예로 소개하고 있으니, 노안도의 ‘동음이자’ 원리를 말하는 성도 싶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전시구성은 자연의 이치, 사람의 마음, 사물의 원리라는 세 항목으로 구분되고 있어서 독화하는 통로를 열어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변관식 <춘경산수> 1950년대 종이에 수묵담채 140.5x432cm  


‘1. 자연의 이치를 읽다’에는 산수화를 포진시키고 있다. 노수현의 세세한 붓질이 돋보이는 초기 산수에서부터 약간은 매너리즘에 발을 담군 작품들은 서화미술회에서 배운 충실한 학생으로부터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로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변관식의 〈춘경산수〉는 자신의 경험공간이자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덮어씌운 곳이다. 따라서 전국을 떠돌던 변관식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행복을 구가하는 곳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임을 내비치고 있다. 



이상범 <아침> 1954sus 종이에 수묵담채 69.3x27.4cm 


이상범의 〈아침〉은 예의 깔깔한 대지와 풍토 속의 농촌 풍경을 보여주지만 지게 진 초부와 머리에 짐을 진 아낙을 표현하고 있어서 굳이 독화하자면 세속을 떠난 자연생활의 한가로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그들은 도(道)를 찾는 구도자라기보다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의 주체로 인식되고 있음은 어쩔 수 없다. 산수가 풍경이 될 때, 그 고리가 드러나야 했다.


박래현 <노점> 1956년 종이에 수묵담채 267x210cm 


‘2. 사람의 마음을 읽다’에는 인물화를 위치시켰다. 전통회화에서 인물화는 공신녹권에 기반한 
사회의 보상과 정치적 기록의 목적이었다. 즉 일반인은 초상화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근대기 신분제가 해체된 이후 인물화는 그 해체의 증거로서 존재한다. 누구든 원하는 이들은 금전만으로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 초상이었고 그것은 근대이자 바로 자본주의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전후 생활, 실직과 폐허에서 가정의 주도적 위치에 자리하게 된 어머니들을 전면에 배치한 박래현의 〈노점〉은 여성의 눈에 의해 여성이 처한 사회상을 드러낸다. 


박노수 <선소운> 1955년  


인물의 뎃생이 어그러진 박노수의 〈선소운(仙簫韻)> 등도 한국화의 새로운 개척을 위한 시도라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굳이 시비 잡을 생각은 없으나 일본화의 영향으로 채색인물화가 그려졌다거나 향토적 주제의 다양한 인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하고 있는 것도 의아하다. 일본미술의 영향과 향토적 주제를 변화의 추이로 용인하고 유포하는 것은 연구자로서는 불편한 마음이 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3. 사물의 원리를 읽다’는 전통의 화조화와 동물화를 해석하여 그 의미를 적용하고 있다. 화훼, 기명절지, 사군자를 포함하고 있는데, 사군자는 자연의 이치일까 사물의 원리일까 의문을 가지며 화면을 들여본다. 더불어 세한삼우는 자연의 이치일까 사물의 원리일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일까, 자연의 묘사일까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질문과 답이 머릿속에서 오간다.

이 모든 상념들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지닌 미덕은 과거의 독화방식으로 작품을 규정하였을 때 오는 명백한 기의(signifié)로 닫혀지는 위험을 탈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호를 벗어나 텍스트로 위치할 때 작품은 열려있고 무한한 에너지로 수용되며 탈중심화할 수 있다. ‘독화’라는 전통의 감상 언어를 차용하여 환기시킨 그림 보는 방법은 그렇게 독해되고, 감상되고 그리고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론 번거롭더라도 반드시 설명되고 거쳐야 하는 기본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쉽게 넘어서서 유영하는 언어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부메랑과 같은 것임을 노출한 점이 아쉬운 것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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