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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셰크의 방’에서의 선택 - <김이유>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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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5.11.3.-11.7
전시장소 : 서울 류갤러리
글 :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 미술평론

김이유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작은 전시공간을 선택했다. 길가에 위치한 이 전시공간은 지나는 행인들이 유리창 너머로 마음껏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아가 전시장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 볼 것인가 안 볼 것인가!

전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공간이다. 동시에 그곳에 놓인 것들은 우리가 미술작품이라고 이해하거나 믿고 있는 것들과는 다소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배열되어 있다. 바닥에는 연탄이 수직으로 쌓여있고 그 옆에는 산소통이 놓여있다. 벽에는 열 한 개의 산소마스크가 수건처럼 걸려있다. 이른바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작품이다. 

화이트큐브(사각의 전시 공간)에 들어온 이 사물들은 공간에 개입함으로써 모종의 상황을 자아낸다. 작가는 이 사물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전시장에 놓아두었다. 그 사물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가공되거나 연출되었다기보다는 그 사물 그대로, 날 것으로  제시되었다. 가게에서 구한 사물들을 전시공간에 놓아둔 것뿐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흔적이 최대한 지워져있다. 아니 작가의 흔적이라고는 없다. 특정 가게에서 구한 사물들을 전시장으로 이동한 것, 그것만이 작가의 일이다. 이 사물들은 공간에 들어온 관객들의 시선과 마음에 의해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오브제다. 우선 관객들은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전시장에 들어가서 볼 것인지, 보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해야한다. 들어온다면 그곳에 놓인 사물들을 보면서 또 다른 선택을 요구받는다. 

좌측에 쌓아둔 연탄을 보면서 연탄가스(일산화탄소)로 채워져 있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고 그로인해 죽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러나 곧바로 옆에 놓인 산소통과 벽에 걸린 산소마스크를 선택해 죽음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전시공간은 생과 사의 선택을 은연중 요구한다. 삶과 죽음은 수시로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음을 인지시킨다. 공간에 들어온 관객에게 삶과 죽음의 상황과 그 선택을 상상하게 해주는 작업이다. 

결국 이 작품은 공간에 놓인 사물을 빌어 관객의 상상적 참여를 요구하는 셈이다. 작가는 자신이 연출한 방에 ‘에셰크의 방’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에셰크란 체스를 둘 때 외통수에 걸린 것을 나타내는 말로 ‘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을 의미한다. 극한적인 상황(에셰크)에 처한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과 자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관객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 ‘에셰크의 방’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죽음과 삶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도록 권유받는다. 연탄가스를 선택할 수도 있고 산소마스크를 집어들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전시공간은 결국 관객의 산택에 의해 죽음의 방이 될 수도 있고 삶을 긍정하는 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업이 “자살방조나 예찬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권리에 대해 그리고 삶과 죽음의 깊은 연관성에 대해 환기시켜 주기 위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김이유의 작품은 하나로 붙어있는 삶과 죽음이 한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자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신이 감당하고 결정해야 할 자유로운 권리임을 새삼스럽게 일러준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0.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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