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고대불교조각대전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 간 : 2015.9.25 ~ 2015.11.15
글 : 주수완(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이번 전시의 부제는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이다. 이에 의하면 지구상의 일부 제한적인 지역의 불상 조각에 대한 전시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세계 불상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광범위한 범위의 불상을 다루고 있다. 불교가 전파되고 불상이 활발히 조성된 지역을 생각해보면 인도, 간다라,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적은 수이긴 하지만 동남아의 불상이 소개되었다는 것은 거의 모든 지역을 망라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통해 역사적으로는 단 한 사람이었지만 세계인의 기억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고다마 싯달타 붓다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996년도에 일본 나라박물관에서는 “동아시아의 부처들”이라는 주제로 멋진 전시를 개최한 적이 있다. 또한 그 전시를 위한 훌륭한 도록은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그 전시에는 불상 뿐 아니라 불화와 불구도 출품되었는데,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오롯이 조각에 집중하여 각문화권의 불상조각이 지닌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차별성을 통해 “동아시아의 부처들”과 비교해 손색없는 세계적 수준의 전시를 선보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이른 시기의 불상으로 평가받는 카니시카 대왕 금화에 새겨진 불상. 서기150년경. 지름 2㎝. 브리티쉬 박물관.
또한 이보다 앞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990년도에 <삼국시대불교조각> 특별전을 개최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불교조각의 정수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획기적인 전시였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 조각의 정수를 국제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에 국립박물관의 위상과 기획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실감할 수 있어 감개가 무량하다.
전시된 불상 중 대부분의 중요 작품들을 현지에서 이미 본 연구자들도 있을 것이고 필자 또한 그렇다. 하지만 만약 전시관람을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깊은 의미와 교감하는가 못 하는가 하는 관람자와 유물 사이의 경기라고 비유한다면, 이번 경기는 홈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경기이고 그만큼 국내의 관람자들에게 유리하다. 아무리 여유를 가지고 해외여행 중에 박물관에서 차분히 유물을 감상한다고 해도 이렇게 국내에서처럼 마음 놓고 다음 여정에 쫓기는 일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홈그라운드의 매력이다. 덕분에 필자도 현지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몇몇 요소들을 이제야 새삼 발견하고 놀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크게 인도 불상, 중국 불상, 그리고 한·중·일의 반가사유상 이렇게 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방대한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마니키알라 스투파에서 출토된 사리기와 공양물. 2~3세기. 높이 22.9㎝. 브리티쉬 박물관.
가장 먼저 마니키알라 대탑 출토의 사리기(브리티쉬 박물관 소장)가 눈에 들어온다. 사리기는 많은 경우 도굴당한 상태로 사라지거나 사후에 구매되는 사례가 흔한 편인데, 이 사리기는 영국인 고고학자에 의한 발굴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특히나 대형의 스투파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고대 간다라 지역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리를 품었던 사리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사리기와 달리 비교적 단순한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불상 복장에 넣어졌던 공양물을 담던 용기와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는 “아미타”라는 명호가 들어간 명문이 새겨진 불입상의 대좌가 눈에 들어온다. 상은 다 파손되고 아미타불의 발과 공양자의 발만 남아있어 일반 관람객에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구자들에게는 대승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아미타불이 불교조각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알려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당시 아미타불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여 석가모니와 차별화되었을까 궁금하지만 상이 없어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아미타불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도에서의 대승불교 활동의 흔적을 읽을 수 있어 고무적이다. 상을 만든 목적도 “일체 중생이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를 바라며” 발원한 것이었으니 이 얼마나 대승적 심성이란 말인가. 자세히 보면 한쪽 구석에 마치 연봉오리 같은 것이 얕은 부조로 남아있는데, 혹시 서방극락정토에서의 연화화생을 표현하는 것의 시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미타’의 명호가 있는 명문이 새겨진 불대좌. 마투라 출토. 서기2세기 무렵. 너비 50㎝. 인도 마투라 박물관.
마투라 불상 중 유명한 작품은 이번에 몇 작품 출품되었지만 간다라 불상은 그다지 큰 비중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동안 간다라 불상 중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주요 금동불을 출품시킨 것은 간다라 불상에 대한 아쉬움을 잊게 만든다. 실제 파키스탄의 박물관에서는 적지 않은 금동불을 발견할 수 있지만, 워낙에 압도적인 비중으로 전시되고 있는 석조불상 앞에 금동불은 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고는 했다. 하지만 불상조각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데 있어 보다 직접적인 영향은 이동이 어려운 석불상 보다는 이와 같은 금동불상이었을 것이므로, 동아시아에 영향을 끼친 정도로 보면 금동불상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금동불상들은 간다라 불상의 범위에 있으면서도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돌이란 지역에 따라 물성이 달라서 조각기법도 틀릴 수 밖에 없지만, 금동은 성질이 비슷해서 보다 더 코스모폴리탄적인 디자인을 보여준다.
간다라 금동불좌상, 서기1~2c 무렵. 높이 16.8㎝.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간다라 금동불입상, 중국 북위 5c. 높이 140.3㎝.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중국 전시실로 걸음을 옮기면 위풍당당한 북위시대의 불상이 두 팔을 벌려 반겨준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인 이 작품은 유사한 또 하나의 불상이 ‘태평진군’의 연호를 가지고 있어서 이 작품도 유사한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시기 금동불상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한데, 바로 북위 황제 태무제가 이 시기를 즈음하여 제국의 모든 불상을 파괴하라는 폐불령을 내림으로써 이 시기 이전의 금동불상을 찾아보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진 세월을 견디고 나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붓다는 인도 굽타 양식이 중앙아시아, 감숙성을 거쳐 어떻게 북위로 전해졌는지 대변해준다.
반면 한족의 남조 명문을 달고 있는 조각상들도 대거 출품되어 북조와 차별화되는 선을 강조한 조각양식을 보여준다. 남제의 ‘영명’ 연호를 지닌 비상은 앞뒤에 아미타불과 미륵불을 각각 새긴 것인데, 조각은 평면적이고 얼굴은 동아시아 사람의 얼굴과 닮아있어 남조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우리나라 경주 황룡사지에 있었던 금동장육상의 모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육왕상 계통의 석불입상도 출품되었는데, 간다라 불상 양식이 중국적으로 재해석된 양상을 보여준다.
남북조시대 남조양식을 대표하는 남제 영명 원년명 미륵·아미타불 비상. 483년. 높이 116.5㎝. 중국 사천성박물원.
법륭사 헌납보물 143호 금동불은 백제에서 건너간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불상이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 정교함과 인간적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 백제 미술의 우수함에 놀라게 되지만, 왠지 마음 속 깊이 백제의 작품으로서 자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우리가 그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백제불상만으로 백제불상의 이미지를 너무 편협하게 정립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백제 작품은 몇몇 마애불과 석불상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특히 백제의 금동불은 그 사례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 이런 상태에서 섣불리 백제불상양식을 규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일본에 전하는 백제의 불상을 통해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백제불상양식에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불상이다.
일본 법륭사 헌납보물 143호 금동삼존불입상. 백제. 5~6세기경. 본존높이 28.1㎝. 동경국립박물관.
이번 전시에서 단연 최고의 비주얼을 보여주는 작품은 경북대 박물관에서 힘들게 옮겨온 경북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사유상 편이다. 물론 이 작품은 국내에 있는 작품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전시가 끝난 뒤에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멋진 조명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 거대한 위용, 그럼에도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에 비해 뒤지지 않는 섬세함은 이것이 돌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특별전의 세 번째 주제인 반가상 전시실 공간에서 중심을 차지한 이 반가상은 그야말로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 마치 해외에서 공수해온 그 많은 불상들이 오로지 이 반가상을 찬탄하기 모인 것 같다고나 할까. 국보 78호, 83호 반가상은 여전히 밀림의 제왕 사자처럼 빛을 발하고 있으나, 북지리 반가상은 마치 그런 사자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코뿔소처럼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다. 날렵하게 솟아오른 무릎, 물결치는 옷자락, 묵중하게 걸친 장신구는 각기 다른 무게감을 하나의 돌에서 뿜어내고 있다.
경북 봉화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사유상편. 보물 997호. 높이 170㎝. 7세기후반.
정말 모처럼 나란히 앉은 국보 78호, 83호 반가상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관람포인트이다. 90년대 삼국시대 조각 특별전, 그리고 2005년 지금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직전 마지막으로 경복궁 전시관을 장식했던 두 반가상의 전시 이후 오랜만에 나란히 등장한 전시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반가상을 통해 유려한 선을 강조한 78호 반가상과 다이나믹한 양감을 강조한 83호 반가상의 특징을 더욱 분명히 읽어낼 수 있다. 아마도 78호 반가상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유의 깊이와 지속을 표현했다면, 83호 반가상은 찰나적 깨달음의 순간을 영원 속에 가두어 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 두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여 각각의 개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불교미술은 단지 한 종교의 미술이 아니라 아시아의 문화가 어떻게 교류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표식이다. 그 가운데 불상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성스러운 존재로서 직접 숭배했던 대상이라는 점에서 인류가 물질에 고도의 정신을 불어넣었던 다양한 방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옛 예술가들이 평범한 쇠붙이와 돌덩이에 어떻게 신성을 불어넣어 정신의 완성체로 승화시켰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꼭 둘러보시길 권한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