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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자 없는 방 - <정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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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의 정수(精髓), 제거된 세속의 진여(眞如)

전 시 명 : 정현展
전시기간 : 2015.10.24-11.14
전시장소 : 서울 동선동 권진규 아뜰리에
글 : 조은정(미술평론가)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을 오르며 “조각가가 이런 곳에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건, 다 지게꾼 덕분이야.”라고 되뇐다. 지게꾼이라는 직업이 있었음을 권진규 아틀리에에 이르는 계단을 오를 때 말고는 생각할 일이 없다. 버스 정류장마다 그들은 그늘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보따리를 든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반짝 하고 빛을 발하던 그들의 눈을 나는 기억한다. 


동선동 언덕길의 계단을 처음 오르던 날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담장 아래를 비집고 나와 웃자란 커다란 민들레와 볼품없는 화분을 내놓았던 작은 집들의 반쯤 열려진 문들도 기억한다. 하늘과 닿아있을 것 같던 계단의 끝은 지금 은빛 구조물로 막혀있다. 다닥다닥 열린 감들로 가지가 찢어져버릴 것만 같은 커다란 감나무가 담벼락과 문기둥만 남은 집을 지키고 있다. 흔적, 권진규 아틀리에는 그 흔적의 공간에 섬처럼 떠 있다. 


  
전시장(사진 허준율) 


권진규 아틀리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1973년 5월4일 그 화창한 날의 저녁으로 빠져든다. 만난 적 없는 타자의 부재를 그렇게 쉽게 확실히 인정하게 하다니. 권진규 아틀리에는 기억의 공간이다. 그곳은 항상 우리 시선을 흑백사진 속에 머무르게 하고 눈앞에 부재하는 것들을 소환한다. ‘저 복도에는 선반형의 전시대가 있었지. 거기에는 작은 두상들이 올려져 있었어. 오른쪽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역시 나무로 만든 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권진규의 테라코타가 말, 여자 얼굴 이런 순으로 놓여 있었어...’   


권진규의 손에 의해 지어졌고 권진규가 사용하였으며 권진규가 남기고 간 이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다. 조각가 정현이 이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아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곳에 정현의 작품이 들어갈 곳이 도대체 어디에 있지? 이 작은 아틀리에 어디에 그 엄청난 스케일의 작품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단 말인가.    


시공의 교착지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마당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천연덕스런 나무였다. 마치 원래 거기가 제 자리인양 가지를 이리저리 내뻗은 나무는 화단을 뒤로 하고 블록 사이에 열려진 사각형의 땅 위에 버젓이 서 있었다. 잡목의 위용이라고나 할까. 구부려진 철근과 용접으로 구성된 나무는 그렇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고 있었다. 재료의 변용, 자연의 상징 그리고 순수함의 결정체에 대한 지독하리만큼의 추구. 권진규의 질질 신발 끄는 소리가 지난 그 자리에 꿈틀대는 정현의 철 나무가 서 있다. 



정현 작품과 전시장(사진 허준율)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다. 동그란 우물 뒤 벽에 선 조카를 위해 만들어주었다는 정릉 집의 벽화 앞에서 생각에 잠긴 사람을. 우물 뚜껑을 들어 아래를 들여다보면 어떤 가뭄이 들어도 권진규집 우물은 마른 적이 없었겠다 싶다. 그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찬 우물 옆 기다란 철기둥 위에 인물이 쭈그린 채 있었다. 


사실적인 인물조각을 하던 작가가 도대체 내가 인체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만들었다는 첫 작품이다. 굳기 전의 흙을 각목으로 치고 또 치고, 온몸의 힘을 다해 내리쳐서 작가의 에너지가 흡수되어 탄생한 인물이었다. 그 날카로운 파괴의 흔적들이 탄생의 에너지를 증언하는 아이러니는 생존했음을 알려주는 삶의 고통과 닮아 있다.


이쯤이면 조각가 정현의 권진규 아틀리에의 위장전입은 성공한 셈이다. 마치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은 대상의 양감이 덜어내져 형성된 형태 때문이다. 어떤 물체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의 형태 때문이 아니라 힘의 균형 때문임을 말하는 그의 조각은 모든 형태의 진수(眞髓)에 다가간다. 권진규의 조각이 갖는 가장 큰 힘이야말로 그 덜어가는 것에 있지 않던가. 이 가시화한 힘의 균형이 권진규와 정현이 시간을 넘어 조우하게 하는 원리인 것이다.



이경성은 ‘침묵의 소리를 양괴(量塊)에 담은 조각가 정현의 작품세계는 원리 원칙으로 달음박질하는 예술가의 진지한 태도’라고 말했다. 그의 조용하고 묵직한 작품에는 비명과 고함이 난무한 삶의 희로애락이 가득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부질없는 생의 일상이 하나의 형태, 본질로 환원하여 어떤 때는 물질로 어떤 때는 흔적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간 그가 선택한 것들은 여기서 저기로 무겁고도 긴 선을 붙잡고 서 있던 키 큰 전봇대, 기름기 먹은 기찻길의 침목, 철거된 건물에서 수거된 휘어진 철근들, 무수히 많은 자동차들의 마찰력을 견디어낸 아스팔트 포장재, 길가에 구르던 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다른 것들이었다. 


일상의 물질이자 용도 폐기된 그들은 물질 자체가 주는 미니멀리즘적 감각과 일상의 에너지를 소유한 기능적인 것이라는 기준에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들은 모두가 크고, 강하고, 작품 자체의 윙윙거리는 자장(磁場)을 지닌 것들이어서 이 동선동 언덕배기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지 못하였다. 그래서 천연덕스럽게 원래 그곳이 자기 자리인양 시선을 교란시키는 조각을 만날 지는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형태의 정수(精髓), 제거된 세속의 진여(眞如)


권진규 작품이 쪼란히 놓여있던 자리에 정현의 작품이 놓여 있다. 이 선반들에는 한동안 먼지만 쌓여 있었다. 주인이 떠나고도 오랜 시간 동안 공간을 지키던 작품들이 옮겨졌을 때, 생전의 작가와 함께 했던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작품가(作品價)였다. 


이 가난하고 쓸쓸하며 조용했던 공간은 권진규를 소중히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보존되었다. 권진규가 연필로 쓴 글씨 하나라도 없어질까 노심초사한 덕에 ‘면 다실 94-0405’이라든가 인부의 전화번호 등이 간직되었다. 정성어린 공사를 통해 단장되었던 그 벽에 언젠가부터 금이 가고 그 금은 바닥을 가로지르고 있다. 언덕배기 위에서 서울의 풍광을 즐기려는 호사가의 건축공사로 몸살을 앓은 흔적이 시간을 초월하여 눈앞에 상처를 드러낸다.

 

작가 정현은 아틀리에로 들어서는 문 위에 하얗고 자그마한 석고로 만든 인체를 걸어놓았다. 정현의 권진규에 대한 직설적인 오마주이다. 이 작은 조각은 놀랍게도 이 공간을 다시 과거의 시간으로 환원시킨다. 수전증과 고혈압을 넘어서 파랑새 되어 날아간 조각가 권진규의 자유를 그 작은 조각에서 본다. 위로란 상징의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아니라 그렇게 정말 진심으로 내뱉는 진솔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권진규의 작업실은 항상 권진규 작업실로 규정되었다. 어떤 다른 작품도 그곳에 깃든 적이 없으며 섣불리 그곳에 자리하려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 금기를 깬 터이니 작가의 맘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예견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실현할 수밖에 없었던 이 전시는 아마도 작가 자신과의 약속이었을 것이다. 테라코타로 만든 권진규의 손을 둘러싸고 배치된 그의 작품들은 권진규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 방식을 통하여 자신의 부정否定을 통한 존재의 확인이라는 변증법적 명제규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각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하고 싶다고 만들었던 두상(頭像)은 이 전시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예전 같으면 화갑이라고 하였을 나이가 된 중견의 작가가 40년 전에 처음으로 만든 조각을 보여준다는 것. 정현 그에게 있어 이 전시는 그동안 내로라하는 커다란 공간과 유명장소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자기 확인의 시간을 펼치는 장소인 것이다. “조각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잘 하고 있나요?” 조각가 정현과 권진규의 대화가 시간을 넘는 듯하다.


여인 두상들과 동물이 얹혀있던 선반에는 골조가 드러난 덩어리들이 놓여 있다. 그 골조와 석고로 이루어진 물체를 우리는 인체라 한다. 뼈다귀 같은 그 덩어리들은 ‘허영과 종교로 분신한 모델, 그 모델의 면피를 나풀나풀 벗기면서 진흙을 발라야 한다. 두툼한 입술에서 욕정을 도려내고 정화수로 뱀 같은 눈언저리를 닦아내야겠다. 모가지가 몇 치쯤 아쉽다. 송곳으로 찔러 보아도 피가 솟아나올 것 같지 않다’고 했던 권진규의 글을 상기시킨다. 




권진규의 여인 두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현의 인체는 세상의 모든 욕망, 그 타자의 시선을 거두어낸 지점에 위치한다. 그리하여 고독하였던 권진규의 공간은 기억의 장소에서 현실의 장소로 환원된다. 고독과 고립이 아닌 예술가의 혼돈과 치열함이 넘실대는 분투의 장소로서 생명력을 얻는다.


흑백사진 속 둥근 탁자 위에는 드로잉 북과 접시 하나와 차를 끓이는 손잡이가 달린 물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그 탁자에 정현은 꽃을 만들어 올려놓았다. 건축공사에서 콘크리트를 지지하는 철근을 묶는 30센티미터 짜리 와이어를 엮어서 폭발하는 꽃, 불꽃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가 그 자리에 있기까지의 여정을 내용으로 화한 것이다. 


권진규의 테라코타와 정현의 철은 불로 달구어져 변용된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문맥의 구조를 띤다. 돌을 가져다 툭툭 쳐서 만든 얼굴이나 석탄을 떠내어 주물로 제작한 얼굴을 연상시키는 정현의 작품들도 그러한 점에서 권진규의 테라코타와 같은 위치에 있다.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


언덕 아래 교회에서 권진규에게 부탁하여 만들었던 예수상은 고난의 예수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그 조각은 변두리 교회의 신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아름답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보통의 예수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예수상은 주문자의 간곡한 거절과 작가의 혜량을 거쳐 아틀리에 벽에서 권진규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통스럽고 슬퍼 보이지만 그래서 예수님의 존재를 더욱 드러내는 팔 벌린 예수처럼, 나무를 쪼개 만든 정현의 나무가 시멘트 바닥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 더 이상 생명이 아닌 물질에서 피가 흐르는 생명을 느끼게 하는 이 감각은 권진규 아틀리에라는 공간의 아우라 탓도 있다. 철저히 권진규에 몰입하게 하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하는 그 공간의 힘에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이 강한 공간에 정현의 작품이 찾아들고 거주하는 방식은 위장전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비온 뒤에 작업실로 넘쳐 들어오는 뒤뜰의 빗물처럼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스며드는’ 것이다. 김복진에서 권진규로 내려오는 그 구상조각의 연연한 흐름에서 적장자를 가리는 진검을 뽑아든 작가는 일찍이 없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피가 흐르는 살코기를 던져 가르친다고 했다. 우리는 용감한 제자가 선사禪師의 가르침을 찾아든 산사山寺에서 그들이 나누는 선문답을 듣고 있다. 그 용기가 또한 보상받을 것임을 안다. 그는 혼자 힘으로 선사의 날고기를 낚아채었다.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했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우리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옥 바깥 또한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것은 고독을 참아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선뜻 발을 디딘 사람들, 그들을 일러 예술가라 한다면 이 지옥같은 세상에 희망을 주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권진규는 ‘범인(凡人)에게는 침을,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에겐 감사를’이라고 썼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이제 명확해진다.(*)


(이 글은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열린 정현 조각전에 쓴 미술평론가 조은정씨의 서문입니다. 리뷰를 대신해 소개 합니다 - 편집자 주)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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