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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념미술의 쇼! 쇼! 쇼!-<쓰리스타쇼>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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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쓰리스타쇼
전시기간 : 2015.7.7.-8.8
전시장소 : INDIPRESS
글 : 황정수 (미술사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서촌 효자동에 자리 잡은 조그만 화랑에 별난 미술가 셋이 모였다. 조선시대 후기 중인들이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열었던 인왕산 자락 아래 이 시대 중인 같은 세 남자(주재환·박이소·최정화)가 만났다. 단지 한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 것이 아쉽지만 이들은 모두 이 시대 주류에서 벗어난 중인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시 중인들이 그랬듯이 자신들을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이 시대 지식인들 누구보다도 더욱 깊은 지식과 논리, 치열한 비판의 눈으로 세상을 가르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며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발산하는 시대의 이단자들이다. 

한 달 간 동안 벌어지는 이 난장(亂場)은 그토록 이해하기 어렵다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의 다정한 쇼케이스(Showcase)이기도 하다. ‘쓰리스타쇼’라는 제목이 이처럼 적합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 서로 간의 조합이 너무 잘 어울리는 까닭이다. 한국의 개념미술이 태동하여 한국적 정체성을 가지는 과정과 발전 가능성을 이 세 사람을 통하여 이처럼 간결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소품 20여 점으로 열리는 이 번 전시는 규모는 비록 작지만 예술은 없고 자본만 살쪄가는 우리 미술계에 정신적 화두를 던지는 완력이 강한 이벤트이다.

전시 규모는 작지만 전시 설명서는 메이저 화랑의 큰 전시회 못지않은 작은 책 한 권 분량이다. 개구리 술 한 잔 먹고 “뱀 나와라” 소리치듯, “미술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세상에 소리 한 번 쳐 보자는 심사다. 작가들이 중인이듯, 기획하고 글을 쓴 이도 중인 같은 이다. 이 전시는 미술 판에서 다소 생소한, 그러나 미술 판에 정통한 김동화라는 한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기획되었다. 미술에 해박한 그의 작가 선택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으며, 새롭기도 하고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다. 더욱이 조선후기 이야기꾼들의 조곤조곤한 이야기처럼 뽑아낸 설명서는 한국 개념미술의 속성을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하여 그의 내공을 느끼게 한다. 



<전시회 광경> 1



<전시회 광경> 2



그의 작가들에 대한 규정은 “1세대 개념미술 작가인 주재환의 미술은 아기자기하니 ‘구멍가게 사설미술’쯤 될 것이며, 썰렁하고 헛헛한 박이소의 댄디(dandy)한 작업은 ‘커피숍 사설미술’쯤 될 것이며, 알록달록하며 떠들썩한 최정화의 미술은 ‘대형마트 사설미술’ 쯤으로 설명하면 좋을 것”이란 틀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발상은 조선 후기 지배 계층의 부조리를 풍자한 사설시조에서 힘입은 바 큰데, 한국 개념미술의 속성을 꽤 뚫어보는 꽤 괜찮은 실마리가 아닐 수 없다. 기획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세 명 작가의 작품세계에 독창적인 새로운 이름을 붙여 설명한다.

먼저 현실 경험에 기초한 감성적 개념성을 가진 주재환의 작업에는 ‘사설미술(辭說美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1979년 「현실과 발언」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패러디(parody)에 맥을 둔 정치적 발언(propaganda)으로서의 현실적인 개념미술을 형성하여 왔다. 그의 정치적 풍자는 촌철살인의 기발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 진솔한 애환의 페이소스를 보여준다는 미술적 장점이 가득하다. 



<몬드리안 호텔>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당시의 그의 작품 <몬드리안 호텔>(1980)이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1980)는 몬드리안이나 마르셀 뒤샹의 작업을 패러디하여 당시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몬드리안 호텔>은 러브호텔처럼 보이는 격자 공간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권력자의 오줌 줄기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차 굵어지는 모습을 은밀하게 그려 당대 풍속과 부패상에 대한 시원한 풍자를 보여준다.  

이후 그의 작업은 1980년대 주로 정치 사회 분야의 주요 아젠다(agenda)들-군부 세력 집권, 서울 올림픽, 미국의 견고한 지배와 영향력 등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1990년대의 작업은 정치적 맥락이 줄어들고 생활과 일상 즉 자본, 예술, 종교, 우주 등으로 자리 이동하였으며 특히 자본 구조에 취약한 인간성 마비의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세상을 후벼 파는 힘이 있다. 

<현기증 12>(2011)은 에프라임 키손(Ephraim Kishon)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여 예술적 평가가 허황된 언어의 장난을 통해 실제와 얼마나 유리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마태효과>(2011)는 “무릇 있는 자는 더욱 넉넉해지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신약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유명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껌과 무명가수의 담배 꽁초를 대비시켜 자본주의적 빈익빈 부익부, 브랜드만을 신뢰하는 세태, 대중성이 예술성을 압도해 버리는 세태들을 비꼬고 있다.  



<현기증 12>



<마태효과>


박이소(朴異素)는 그의 예명 ‘이소(異素)’만큼 매우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이다. 그는 미술평론가 강수미의 말대로 우리 시대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누구와도 다른 머리와 호흡으로 살았던 예술가이다. 그의 미술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속적 현실을 원천으로 했지만, 한 번도 세속에 떨어지지 않은 ‘정신의 예술’이었다. 이러한 그의 격조 있는 예술정신은 때로는 보는 이들에게 독해의 어려움을 주는 경향이 있기도 하는데, 기획자는 이러한 박이소의 미술을 ‘관조미술(觀照美術)’이라 이름 짓는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이 ‘쓰리스타쇼’인 것은 박이소의 작품 <쓰리스타쇼>(1994)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은 이 번 전시회에 출품되지는 않았지만 개념미술 전시회의 속성과 이번 전시회에 세 명이 선택된 연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커피와 콜라, 간장 세 종류의 매체로 그린 세 개의 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같은 행위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결과는 매우 다르다. 이렇듯 같아 보이는 것 사이의 이질적인 모습을 탐색하는 것이나 공간의 차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을 인식하는 것이 개념미술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위 예술인 셈이다.     



<쓰리스타쇼>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박이소의 작품은 모두 4점이다. <쌀과 드럼통>(1985), <자본=창의력>(1986), (1996), <유엔탑-D>(1997) 등이다. 이중 <자본=창의력>은 박이소의 현대미술에 대한 냉소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 속 위아래 부분에는 “요셉 보이스의 그림을 내가 번역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말 속에는 특히 ‘내가’라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 요셉 보이스의 말을 패러디 하지만 곧 자신의 생각과 꼭 같으며, 이는 곧 진실이라는 말이다. 그 아래 가운데에는 촌스럽기 이를 데 없고 유치하기 이를 데 없이 졸렬한 글씨로 ‘자본=창의력’이라 쓰여 있다. ‘자본’이란 글씨는 지나치게 큰 글씨로 화려한 금빛으로 썼으며, ‘창의력이란 글씨는 상대적으로 작고 조의(弔意)를 표하듯 검은 색 글씨로 썼다. 이 시대 예술의 창의력은 자본에 의해 결정되며순수한 예술의 동력은 죽었음을 의미한다.이는 요셉 보이스를 필두로 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는 기치를 내건 아방가르드 운동이 후에 자본이 지배하는 제도권으로 포섭되며, 예술도 산업이나 노동으로 전이되어 버리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빚어지는 현대 미술계를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일갈하는 호소력이 있다. 

예술과 일상의 구별이 사라진 원색의 향연을 묘사한 최정화의 미술은 “화려미술(華麗美術)‘이라 칭한다. 최정화는 한국의 근대화가 만들어내 온 대량생산과 소비를 과잉 집착과 과잉 소비라는 키워드로 해석하여 특유의 한국적 팝을 만들어낸 작가이다. 스스로 디자이너, 건축가라고 하듯이 보통 그의 작업은 거대하고 징그럽고 화려하다. 커다란 미술관이나 건물, 공원 등이 그의 작품이 자리 잡는 곳이다. 그러던 최정화가 처음으로 작은 작품들을 만들어 조그만 화랑 안에 작품을 전시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스스로도 처음으로 하는 일이 매우 쑥스러운 표정이다. 

전시회를 맞이하듯 윈도우에 걸린 <여여 4>(2015)와 <여여 5>(2015)는 최정화의 미술이 살롱(Salon)화 되었을 때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상의 기성품(Ready-made)을 활용하여 메시지를 주는 작가의 작업은 같으나 감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는 느낌에 많은 차이가 생긴다. 이번 전시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사실 박이소의 작업이 탈속의 맥락에 가깝고, 주재환의 작업이 세속과 탈속을 오가고 있다면, 최정화의 작업은 예술을 일상으로 속화시키는 면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정화의 작품을 규모를 줄이고 조그만 실내로 들여오니 그의 독특한 냄새가 많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자본=창의력>



좌 <여여 4>(2015) · 우 <여여 5>(2015)


<여여 4>와 <여여 5>는 권총과 파리채라는 두 가지의 이질적인 살상의 무기를 퇴색시켜 배치하여 오랫동안 이어온 인류 살상의 역사를 풍자하고 있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것이나 인간이 미물인 파리를 죽이는 것이나 별만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인간들이 전쟁이나 살상을 위한 변명을 하지만 서로 총구를 겨누는 인간들의 일은 순연한 인간 본성의 뒤틀림일 것이다. 최정화가 총을 뒤집어 놓은 것도 인간 본성의 믿음이 뒤집어져 있음을 보여준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여여 3>


실내에 자리 잡은 작품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코 <여여 3>(2015)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래된 의자인 듯한 오브제 위에 진한 핑크색 플라스틱 꽃 한 송이를 꽂았다. 일견 남성과 여성의 성적 은유로 생각되지만, 음양의 조화의 모습도 보이고, 신구(新舊)가 양립된 듯하기도 하고, 성(聖)과 속(俗)이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 미(美)와 추(醜)의 근원적 탐색이 시작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하였든 오래되었지만 자연스럽게 퇴색되어 자연물처럼 되어 버린 오브제에 새로이 인공적인 플라스틱으로 꽃을 만들어 예술가의 창조적 입김을 불어넣어 새로이 아우라(aura)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최정화가 가진 미술가로서의 능력이다. 그가 가진 살롱미술가로서의 면모,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친근한 작가로서의 최정화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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