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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지 않는 선과 점으로 그려낸 평범한 물건들의 아름다움 - 황규백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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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 황규백 회고전
전시기간 : 2015.4.28.-7.5
전시장소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일본말 주토한빠(中途半端)라는 말은 우리말의 중둥무이와 뜻이 같다. 적당히 하다가 중간에 흐지부지 그만두고 만다는 의미이다. 사람이나 일에 대놓고 이런 말을 하게 되면 대개는 핏대를 올린 반격을 예상해야 한다. 좋은 뜻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뉘앙스의 반대쯤에 있는 말을 찾자면 ‘독하다’는 말이 있다. ‘끝장을 본다’는 말도 비슷하다.      


<흰 손수건(White Handkerchief)> 1973년 메조틴트 33x27cm  


중둥무이를 제쳐놓고 ‘주토한빠’를 쓴 것은 우리 얘기를 좀 하기 위해서다. 이 ‘주토한빠’와 ‘독하다’를 나란히 놓고 우리 미술에 대입해보면 아무래도 전체적 인상이 ‘주토한빠’쪽으로 기우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이는 비단 오늘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런 우려가 있었다. 실사구시를 신봉한 대표적 실학자 정약용 선생께서는 적당히 그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는 당대에 ‘시원치 않고 미련한 그림쟁이가 모지랑붓을 가지고 먹물을 찍어서 제멋대로 기괴하게 그려놓고는 나는 뜻을 그렸을 뿐 겉모양은 그리지 않았다고 자랑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흰 손수건 위의 나무(Tree on the White Handkerchief)> 1978년 


‘뜻을 그린다’는 것은 사의(寫意)이다. 이는 문인화의 핵심적 내용 중 하나인데 실은 그것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문인화 열풍이 몰아치면서 모두가 이것만이 금과옥조인 듯 사실적 묘사나 치밀, 정교한 표현은 우습게 여겼다. 그리고 적당히 그린 다음에 붓을 내려놓고 사의, 선비, 문인 운운했던 것이다. 극언하면 그 폐해가 오늘에까지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실패와 연필(Spool and pencil)> 1983년 메조틴트 17x27.5cm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어느 민족이든 심층에는 어느 한 쪽이 아니라 마치 플러스, 마이너스와 같이 대치되는 문화적 요소가 늘 공존해있기 마련이다. 시대에 따라 어느 한 쪽이 우세를 보일 뿐이다. 조선 시대는 처음부터 자기 절제, 검박, 교양을 모토로 한 문인 사회가 주류를 이루면서 과도한 표현을 삼간 것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한 왕조를 거슬러, 고려를 보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귀족 문화를 상징하는 화려하고 정교한 표현과 장식이 대세였다. 

황규백은 모두가 대충대충 그리고서 엉거주춤하게 끝내고 있을 때 엉덩이를 붙이고, 소위 죽치고 앉아 치밀하고 꼼꼼하게 끝장을 본 ‘독한’ 작업을 해낸 특출한 화가이다. 이런 태도는 한국 화단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작가상(作家像)이다. 그런데 그는 수십 년에 걸쳐 독한 작업을 끝장내면서 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돌 세 개(Three Stones)> 1981년 메조틴트 30x34.5cm  


그가 이렇게 자기류를 찾은 것에 대해 ‘세상의 화가는 수없이 많은 그들 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것을 하는 나를 찾고자 했다’고 했다. 그런 다짐 끝에 찾아낸 것이 ‘황규백’ 하면 떠올리게 되는 ‘메조틴트 작업’이다. 원래 메조틴트 기법은 동판에 부식을 가해 형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으로 형상 이외의 면은 검은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역전시켰다. 검은 면에 셀 수 없는 점과 선을 찍고 긁어 이를 흰색으로 반전시킨 것이다. 


<우산(Umbrell)> 1982년 메조틴트 드라이포인트 35x30cm   


아이디어의 참신함도 그랬겠지만 무엇보다 ‘독한’ 공력(功力)을 인정받으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것이다. 서울에 소개된 것도 바로 이런 평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메조틴트에만 주목하는 것은 주객전도이다. 메조틴트 기법 자체는 독특하기는 하나 도구이자 방법이다. 그의 본령은 부드러우면서 조심스럽고 잘 나서려하지 않는 그런 한국적 서정주의의 표현에 있다. 


<지붕(Roof)> 1990년 메조틴트 27.5x33.5cm 


그는 이 작업을 펼쳐진 채로 잔디밭 위에 하늘하늘 내려앉는 흰 손수건부터 시작했다. 이 모티프를 떠올린 것은 뉴욕의 한 공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분명 부드럽게 펄럭이는 무명 손수건과 잔디밭에서 어머니의 무명 치맛자락이었을 것이다. 또 한국의 푸르른 들과 산이 잔디밭 위에 겹쳐 보였을 것이다. 

 


<문(Door)> 1996년 메조틴트 27.5x34cm  

오랫동안 이 소재를 다루면서 손수건은 차음 우산, 성냥, 돌, 안경, 꽃, 시계로 바뀌어 같고 배경 역시 잔디밭과 흰 하늘에서 테이블, 오선지, 꽃무늬 벽지, 담장으로 변했다. 개중에는 여인의 누드도 있다. 손수건이든 우산이든 또 잔디밭이든 오선지이든 그 안에 그가 담고자 한 것은 평범한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속에 담긴 고요한 평화였다.  


<시계(Watch)> 2014년 캔버스에 유채 122x102cm 


수많은 작은 터치를 통해 재현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드러움이나 따뜻함, 애정, 그리움 드을 그려낸 그는 이제 고배율 돋보기를 버리고 캔버스를 상대하고 있다. 이 전시는 메조틴트에서 시작해 캔버스의 유화까지 계속되는 황규백의 ‘독함’속에서 꽃피운 서정적 자연주의를 회고하는 전시이다. 화가는 여기에 이르도록 늙어버려 84살이 되었다.(y)
(안타깝고 눈살 찌푸려지는 일은 4월에 시작된 이 원로화가의 大회고전 도록이 이제껏 발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관장 부재로 돌릴 것인가.)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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