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박기수 사진전
전시기간 : 2015.6.2.-6.5
전시장소 : 서울 한전아트센터갤러리
글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박기수의 사진 속 대상은 다양한 색채로 뭉개져있을 뿐이다. 다분히 환상적이며 모호하다. 다만 화려한 색상들이 뭉개지고 흩어져 아롱질 뿐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윤곽은 부재하고 어렴풋이 이미지가 떠오른다. 꽃이나 나무 등의 흐릿한 자취가 암시적으로 부유한다.
분명 특정 풍경, 자연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진 안에서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저 색채와 빛으로 절여진 자취만으로 가득하다.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상 대신에 다만 흐릿한 흔적, 몽환적인 색채의 얼룩 등이 번져있기에 사진이라기보다는 색채추상을 보는 듯하다. 얼핏 봐서는 그대로 그림, 순수한 색상들이 혼합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풍경, 디지털프린트, 2015
이것은 기존 사진에 기대하고 있는 명증성, 기록성, 객관성과 같은 것을 의도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든다. 동시에 외부세계를 향해있는 사진의 자기존재성을 약화시킨다. 외부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있다. 작가는 보는 이의 눈길을 붙잡고 즐거움과 아름다움, 환상을 부추기는 풍부한 표현, 회화적 아름다움을 사진의 큰 미덕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작가는 말하기를“회화적인 사진, 회화를 닮은 사진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사진을 구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사진을 만들기 위해 박기수는 독특한 제작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몸 떨림을 이용한 촬영과 믹싱에 의해서 사진을 만든다. 우선 그는 특정한 장소에서 삼각대 없이 부동자세로 오랫동안 피사체를 바라보며 촬영을 하는데 이때 미세한 떨림 현상이 발생된다. 바로 이 미세한 흔들림, 떨림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한 후 에 이를 믹싱을 한다.
이 작업은 엄청난 양의 사진을 이용해서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고 과잉의 시간과 무모한 노동력을 요구하며 촬영 시에는 절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적 고통과 위험요소도 동반한다. 신체의 흔들림, 떨림은 일관되지 않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큰 차이를 발생시킨다. 이 과정에도 긴 시간이 들어 있다. 그가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의 육체적 떨림은 작가 자신의 언어이자 소통이다. 그리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작가의 기억 또한 흐려지고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그렇게 켜켜이 거듭되어가는 시간 속에 작가 자신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믹싱 작업은 파일들을 랜덤으로 무작위로 섞어주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물감을 섞어 원하는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렇게 섞어준 파일들을 다시 이미지 형식으로 2차 믹싱을 가해 주면서 마무리를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진은 극소의 입자 하나하나가 사진 한 장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전체가 되었는데 그 전체는 긴 시간이란 과정을 통해 지금에 또 다른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진이 모여서 입자가 되었고 다시 그 입자가 쌓여서 여기 긴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찰나들의 간격들이 모여서 으깨어지고 뭉개어지고 짓이겨져서 마치 추상적인 이미지를 가져다준 것이다. 중첩되어가는 믹싱 되어가는 사진의 수가 더하면 더할수록 작품 속에 그 입자가 잘게 부수어져서 부드럽고 깊이가 있어 보인다. 색의 농도나 이미지의 질감, 심도의 깊이, 느낌의 변화 등은 믹싱이 되어가는 그 수의 증감에 따라 달라지며 믹싱의 방법과 과정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중첩이나 장노출의 공통점은 사라지며 소멸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쌓이거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옅어지거나 사라진다, 마치 인생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 사진은 시간이 지나는 과정 속이거나 혹은 중첩, 믹싱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느 한 순간을 건져내어서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건져 올리는 것이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인생에 대한 메타포다.
풍경, 디지털프린트, 2015
작가는 명료성에서 벗어나 인지가능하지 않은 모호함과 애매성을 안기는, 명확한 지시성에서 벗어난 흔적을 보여주는 사진을 안긴다. 사진이 지닌 인증성과 지시성을 슬그머니 지워버린, 뭉개버린 사진이다. 그것은 형상 없는 색채의 주름, 이미지 없는 살들의 흔들림으로 가득하다.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선은 사라지고 유동적인 색채의 흐름과 시간의 결들만이 그저 아롱진다. 희미한 잔영과 흐릿한 색채가 온통 뿌옇게 펼쳐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치 색채추상화를 보는 듯도 하다. 붓으로 그려진, 물감의 자취만으로 얼룩진 회화와도 같다.
순간 그림과 사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모더니즘 회화, 색채추상이 그림을 이루는 존재론적 조건인 평평한 캔버스의 표면과 물감과 붓질에 천착하듯이 그래서 회화가 특정 대상을 재현시키는데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자족적인 조형적 질서를 이루듯이 이 사진 역시 주어진 대상 세계에서 출발해 이를 보여주는, 재현하는 사진에서 벗어나 재현과 비재현 사이에 서 있는 사진, 구상과 추상 사이에 머뭇거리는 그런 사진을 보여준다. 그것이 문득 비현실적인 꿈이나 몽상의 한 자락처럼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