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한일 근대미술들의 눈- 조선에서 그리다
전시기간 : 2015.4.4.-5.8
전시장소 : 일본 가나가와 현립근대미술관 하야마(神奈川県立近代美術館 葉山)
글 : 황정수(근대미술연구가)
귀에 익숙하지 않은 하야마(葉山)라는 시골 마을의 미술관을 찾아가는 마음은 여러가지 면에서 편치 않았다. 천왕의 별장이 있어 일본인들에게는 고귀하게 생각되는 특별한 곳이라는 사실이 그랬고, 이런 외진 곳에 그럴듯한 근대미술관이 있다는 사실 또한 그랬다. 이곳에서 일제강점기 한일미술교류에 관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 못내 마땅치 않았다.
이런 편치 않은 감정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지배국인 일본에서 대규모 전시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다이쇼(大正) 천왕이 세상을 떠난 별장이 있는 곳에서 연다고 하니 피지배 국민의 후손으로서 울컥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도 잠시, 도쿄에서 1시간30분가량 걸려 도착한 하야마는 그 아름다운 경관으로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감정을 자연스레 내려놓게 만들었다. 또 바닷가에 위치한 미술관은 규모나 외관 모두 전시회를 열기에 믿음직해 보였다. 이곳에서 5년여 동안 준비한 <한일 근대미술가들의 눈-조선에서 그리다>라는 전시회가 시작됐다. 이 전시는 후쿠오카 근대미술관을 마지막으로 하는 내년 2월2일까지 10개월 동안 일본내 6개 도시를 순회하게 된다.
하야마 근대미술관 전경
개막식이 열리기 전에 초청인사의 이색적인 강연회가 있었다. <사랑과 반역>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있을 자리조차 없었다. 관객들은 숨죽여 강연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다. 다름 아닌 한국의 서양화가 김병기(金秉騏, 1916년생) 선생이었다.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치면 100세이다. 이중섭과 같은 해에 태어났으므로 우리 근대미술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친구는 이미 60여 년 전에 고인이 되었는데, 또 한 친구는 살아남아 그때를 증언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들 강단을 주시하는 가운데 진행자의 소개가 있고 김병기 선생이 강단에 섰다. 앉아서 해도 된다고 했음에도 당신은 굳이 서서 하겠다고 한다. 강연을 시작하자 강연회장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10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기찬 목소리로 80년도 더 지난 옛 일본 유학시절의 일들을 생생하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김병기 선생은 평양 갑부이자 우리나라 세 번째 서양화가인 김찬영(金瓚永 1889-1960)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에 유학해 미술공부를 한다. 이때 다녔던 아방가르드 연구소과 그후의 일본문화학원 시절의 에피소드를 화면과 함께 소개했는데 기억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해박한 지식에 특히 유머를 섞어 들려주는 말은 청중을 마치 그 당시 문화학원으로 이끌고 가는 듯한 느낌을 들 정도로 생생했다.
이중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1시간 반에 걸친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은 진심어린 기립 박수로 노구를 이끌고 당시를 기억해주신 그의 열정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100살 노화가의 열정어린 강연! 아마 이는 금세기에 다시 보기 어려운 장면일 것이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선생 강연 중인 선생
강연회가 끝나고 간략한 개막식이 있었다. 하야마(葉山) 근대미술관 관장의 인사와 김병기 선생의 축사, 한국측 자문위원인 김현숙씨의 인사가 있었다.
이번 전시는 일본과 한국의 근대회화 연구자들이 5년여에 걸쳐 발굴한 자료, 즉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와서 한국의 풍경을 그린 일본인 화가의 작품과 동시기에 활동한 한국 화가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전시가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 관심을 끄는 것은 특히 새로운 작품이 많이 발굴됐다는 있다. 그 동안 이름만 전할 뿐 작품은 전혀 알려지지 않거나 작품은 남아있는데 작가에 대한 행적을 몰랐던 내용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상당량 새로 발굴되고 또 새롭게 밝혀졌다.(전시 작품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소개)
개막 인사를 하는 미술관 관장
전시회 광경(일부분)
전시회 개막 이후 미술관 근처의 한 음식점에서 조촐한 뒤풀이가 있었고 이 자리에는 근처에 살고 있는 화가 이우환 선생이 일부러 찾아와 자리를 함께 했다. 와인을 곁들인 일본 특유의 단정한 음식과 오래된 음식점의 고풍스런 분위기는 전시회 뒤풀이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미술계 인사들과 김병기, 이우환 선생은 이중섭, 유영국, 김환기 등 일제강점기 미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누었다.
관계자들과 얘기하는 이우환 선생
담소를 나누는 김병기, 이우환 선생
누군가 말리는 이가 없었더라면 날을 샜을 정도로 이야기꽃은 끝이 없었다. 자리를 파할 즈음 말씀하시길 좋아하는 김병기 선생이 일갈을 했다. ‘이런 행사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 되오. 좀 더 나아가 중국, 타이완, 파리 등을 한데 아우르는 커다란 전시를 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의 할 일입니다. 후지다(藤田嗣治 1886~1968)도 파리 유학을 하지 않았소?’라고 말하는데, 100세의 나이에도 미래를 꿈꾸는 노화가의 노익장에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또한 보통학교 6년간 함께 했던 친구 이중섭을 회고하는 사이에 어느 덧 그 자신이 다시 미래를 꿈꾸는 소년시절로 되돌아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의 말대로 이번 전시가 한일 미술교류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을 물론 그를 통해 20세기 전반 아시아에서 일어난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시대와 공간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해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