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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적 현대 문인화의 세계를 접하다 -<오채묵향五彩墨香-송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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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5.03.31.-06.28
전시장소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글 : 최경현(홍익대학교 겸임교수)

우현 송영방(又玄 宋榮邦, 1935- )은 서양화가 한국 화단을 빠르게 잠식해 갔던 시대 조류를 거스르며 현대적 한국 문인화의 세계를 구축한 대표적 원로화가이다. 이번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한국화 부문의 두 번째이며, 그에게 있어서는 1984년 현대화랑에서 개최했던 첫 개인전 이후 네 번째에 해당되는 개인전으로 50여 년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회고전의 성격도 지닌다. 

때문에 전시공간은 송영방 화백이 동시기 화단의 경향을 수용하면서도 평생 추구한 문인 정신이 유감없이 드러난 다양한 화목(畵目)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여행이나 일상에서의 습작이나 소품들도 전시되어 작가로서 성실했던 일상의 발자취까지 엿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1960년 그는 제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해 묵림회(墨林會) 회원이 되어 한국화의 추상실험작업에 적극 동참했다. 


송영방 <천주지골> 1967년, 한지에 수묵담채, 110×101cm, 국립현대미술관


1965년의 <뇌락(磊落)>과 1967년의 <천주지골(天柱地骨)>은 이 시기에 그린 것으로 작가가 자연의 근원인 바위를 중심으로 새로운 조형성을 모색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여기서 ‘뇌락’은 바위가 떨어지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며, 농묵과 속도감이 돋보이는 2015년의 <뇌락>에서 바위에 대한 애착과 작가적 오랜 탐색의 여정을 엿볼 수 있다. 하늘의 기둥이며 땅의 뼈를 뜻한 ‘천주지골’은 바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현미경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바위의 질감을 지필묵의 추상화 작업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문인화가의 주요 화목인 산수화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작가의 감성으로 추상화를 시도한 작품과 실경산수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대별된다. 전자는 대개 산과 구름의 리드미컬한 안배를 통해 추상적으로 그려낸 산수화 시리즈로 간결한 조형성은 자연을 통해 정화된 마음의 평온함이나 즐거운 상태를 연상시킨다. 


송영방 <춤추는 산과 물> 2007년, 한지에 수묵담채, 75×142cm, 작가 


1982년의 <춤추는 산과 물>은 작가가 추구한 수묵 추상작업의 하나로 단순, 간결, 평온 등 중용(中庸)의 상태를 지향한 문인 정신을 잘 보여준다. 후자는 명승지나 특정 지역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것으로 조선 후기에 성행한 진경산수화의 맥을 잇고 있다. 이와 관련해 1985년의 <금강제색도(金剛霽色圖)>와 2011년의 <장백산도(長白山圖)>는 그의 사실주의적 산수화의 조형적 원천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鄭敾)과 조선 후기 최고의 문인화가로 평가되는 이인상(李麟祥)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송영방 <장백산도(長白山圖> 2011년, 한지에 수묵, 25×108cm, 작가

   
또한 여행과 스케치는 사실주의적 산수화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중국 양자강을 여행하며 남긴 《장강삼협도: 장강 홍수선상 속필첩(長江三峽圖: 長江洪水船上速筆帖)》은 작가가 자신의 창작 토양을 최적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하지만 그의 산수화가 추상적이든 사실주의적이든 간에 즐거움이나 평온함 등 긍정적 에너지로 귀결되는 것은 작가의 일상에서 실천한 문인다운 삶의 행보와 남다른 인격적 성숙에서 기인된 결과일 것이다. 


사군자의 경우는 각별한 애정을 기울였던 매화 그림에서 자신만의 개성적 화법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정원에 청매(靑梅)와 홍매(紅梅)를 심어 매일매일 생장과정을 관찰하였으며, 2014년에 그린 <청매>와 <보춘(報春)> 8폭 병풍에서 보이는 정갈함은 관람자의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송영방 <청매(靑梅)> 8폭 병풍, 2014년, 한지에 수묵담채, 80×308cm, 개인


이처럼 커다란 화면에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좌우로 가지를 뻗으며 꽃을 피우고 있는 전수식(全樹式) 매화도는 조선 말기의 여항문인화가 조희룡(趙熙龍)을 비롯해 유숙(劉淑), 장승업(張承業) 등이 그린 매화도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송영방 화백은 전통시대 화가들이 매화꽃을 흐드러지게 그렸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몇몇 잔가지에만 매화꽃을 표현하여 과욕을 경계하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일상에서 실천했던 문인 정서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어 주목된다. 



송영방 <보춘(報春)> 8폭 병풍, 2014년, 한지에 수묵담채, 81×316cm, 작가


또한 연꽃 그림을 즐겨 그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종교적 색채를 지님과 동시에 전통시대의 군자, 즉 문인을 대변하는 꽃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의 생태를 속세에 물들지 않는 문인의 고결함에 비유하면서 군자의 꽃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연꽃 그림은 불교와 연관시키기보다는 문인화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밖에 학(鶴) 그림도 전통시대에 은거한 문인들의 벗으로 군자나 현인과 같은 품성을 지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물화는 얼굴의 특징만을 부각하여 수묵의 선묘로 그린 소품(小品) 초상화가 전시되었는데, 대부분 자화상이나 지인(知人)들로 한정되어 있다. 이는 문인화가가 마음의 정표로 그림을 그려 주곤 했던 창작 양태를 계승하면서도 현대 캐리커처의 표현기법을 수용하여 초상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누드 습작을 모아 놓은 《간간호호(看看好好)》는 그의 탁월한 인물 묘사력을 보여주며, ‘보면 볼수록 좋다’는 화첩 제목은 작가의 진솔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송영방 <자화상> 2015년, 한지에 수묵, 38.5×25.5cm, 개인


마지막에 전시된 불교 관련 그림들은 그가 재직했던 동국대학교와의 인연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이들은 보현보살이나 문수보살 등 종교적 주제를 다룬 일종의 불화이지만, 단아하면서 정갈한 문인적 감성이 짙게 배어 있는 것은 현대 문인화가로서 창작활동에 충실했던 작가의 면면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그가 대학교 3학년때 지필묵이 좋아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바꾼 다음부터 현재까지 50여 년에 걸쳐 현대적 한국 문인화의 근간을 단단하게 했던 대표적 원로화가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전시장의 곳곳에 녹아 있는 단아하면서도 정갈한 작가의 문인적 감성은 보는 이의 시선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남기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할 것이라 기대된다.



최경현(홍익대학교 겸임교수)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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