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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익숙하면서 기이한 타자 -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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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
전시기간 : 2015.4.9.-5.16
전시장소 : 서울 갤러리 룩스
글 :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심안으로 본 타자>전은 자신의 주변에서 만난 익숙한/기이한 타자를 접하는 시선을 모아본 전시다. 사진과 회화를 통해 이들 7명의 작가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자연(나무)을 주목해서 그리고 찍었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풍경들이 어느 날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분명 자신의 내부에서 감지하는, 더구나 욕망하는 힘에 의해 그 대상을 다시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그리는가 하면 사진촬영을 했다. 그는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그 현재라는 시제에 만난 것, 어떤 것이 이 순간 바로 내 앞에 있는 현전의 체험에서 문득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옴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강한 힘을 발산한다. 

낯설음이란 특정한 외부의 경험에 의해 생성된 내적인 심리상태를 지칭한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지금의 풍경, 대상을 의심한다. 자신들이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계는 아니다. 인간이 감지하는 이 세계 외에 어떤 것을 본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느닷없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들을 만난다. 현실세계에 비이성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가 순간 침입한 것이다. 순간 현실은 금이 가고 이른바‘이격(離隔)’된다. 

작가들은 그림을 그려나가는 시간 동안 그는 알 수 없는 의문과 지속적으로 대면한다. 결국 그들이 그린 것, 재현한 것은 특정 대상의 외양이 아니라 그로부터 촉발된 자기 내부의 컴컴한 초상이다. 세계는 주체에게는 늘 수수께끼다. 그러니까 카뮈 식으로 말하면 부조리하다. 그것은 우리가 배운 언어와 문자의 틀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지식은 날 것의 세계, 대상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외계는 자신의 내부로 들어와 매순간 암전된다. 


참여 작가들이 보여주는 재현회화/사진은 보이는 외계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대상의 모방으로 귀결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보여 지는 것은 화면 밖의 사물과  유사한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여 더 멀리 간다. 조형적 재현이 유사를 내포할 수 있지만 그러나 닮았다는 것이 재현으로 귀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현에 의해 특정 대상의 재현이고 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이면을, 세계의 내부를,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생생하게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을 그리고자 한다. 그러니까 의미가 소멸된 사물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 순전히 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다. 기능과 의미가 지워진 자리에는 기묘하고 낯선 이미지만 남게 된다. 

본다는 행위는 헤아릴 수 없는,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기억 등을 동반한다. 작가는 자신의 신체가 받아들인 그 지각, 감각을 형상화하고자 그린다. ‘순간적인 느낌들을 재구성'하면서 ‘그것(it)’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응시한다는 것은 모종의 욕망이기도 하다. 그 욕망은 사물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자 시선이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욕망은 충족되거나 실현되기 어렵다. 그러니 미술/예술은 그러한 불가능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주변의 사물, 타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들이 뿜어내는 영기를, 놀라운 매혹을 낚아채고자 하는 이들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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