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展
2015년 3월23일(월) - 2015년 6월28일(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회화를 음악과 시가 지닌 통렬함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어서 화가가 되었다”고 했던 마크 로스코(1903-1970). 확실히 극한적인 추상으로 치닫는 그의 작품들은 영혼을 울리는 음악과도 같은 비언어적인, 표상화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서 종교적인 숭고함을 느끼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는 간증을 하곤 한다.
무제, 캔버스에 오일, 195 x 172.1cm, 1953.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로스코의 남아 있는 작품 중 절반 가까이를 소장하고 있던 마크 로스코 재단이 대부분의 작품을 1984년 미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 소장하도록 하면서 워싱턴 내셔널갤러리는 로스코 작품의 가장 큰 소장기관이자 연구기관이 되었다. 9년 전 삼성미술관리움에서 있었던 로스코전 또한 워싱턴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번 전시는 워싱턴갤러리 공동주관으로 그 때보다 작품 수 면에서 더 대규모라고 볼 수 있다. 2006년 당시 초기 작품부터 후기 까지 50여 년에 걸친 작품 생애를 요약하는 27점의 작품들을 보면서도 그에 압도된 기억이 있어, 솔직히 이번 대규모 전시(총 50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전시는 로스코의 작품 연대를 1) 신화의 시대 2) 색감의 시대 3) 황금기 4) 벽화시대 5) 부활의 시대의 섹션으로 나누고, 로스코 채플 재현한 작은 방을 두었다, 왜 이 시기에 로스코인가에 대한 설명으로 주최측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대한민국”이라는 답을 내 놓았다. 기적같은 감동, 치유력 등의 수사를 곁들였다. 전시장 곳곳에는 “회화와 관람자간의 완전한 만남의 체험을 추구”, “작품과 마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근원적 감정을 만나 기꺼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스티브 잡스도 매료된” “기적같은 감동, 특별한 치유력” 등의 말이 관람자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로스코의 초기 구상 작품은 당시 초현실주의 등 모더니즘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으나 어두운 색채와 거친 붓터치, 뭉개지기 시작하는 형태 등 이후의 전개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지하철 환타지, 캔버스에 오일, 87.3 x 118.2cm, 1940.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커다란 캔버스에 공간을 나누고 그것을 색으로 채우는 방식은 그 당시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대면했던 색과 평면에 대한 문제의식을 그도 동일하게 겪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로스코는 자신이 추상표현주의자들과 함께 뭉뚱그려 평가되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회화의 본질을 깊이깊이 파고들어가던 동료들과 달리 그는 인간의 내면, 기적, 응시에 관해 성찰했다.
무제, 캔버스에 오일, 235.6 x 211.5cm, 1956.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나는 색의 관계나 형태, 그밖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단지 기본적인 인간 감정들, 그러니까 비극, 황홀, 숙명 등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느낀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마크 로스코)
1950년대에 이르면 그의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고, 인정받게 된다. 그는 수없이 실험하고 숙고한 후에 직관적으로 작품을 그래냈고,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된 무언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집중해서 그 작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극도로 까다로운 환경에서 작품이 전시될 수 있도록 신경쓰기도 했다. 그와 관련된 일화로,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 작품을 설치하기로 했다가 그 환경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주고 취소한 예가 있고, 당시 그 작품을 기획하면서 그린 습작들도 볼 수 있다.
무제(시그램벽화스케치) 캔버스에 오일, 아크릴, 183.5 x 152.7 cm, 1959.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그의 그림을 “색면회화”로 단순화해서 설명하기엔 모자람이 있다. 그림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말을 걸어오는 작품이 있고, 꿈틀대는 듯이 느껴지는 그림이 있고, 무언가 계속 그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 있고. 침묵하는 작품이 있다. 뒤돌아가면 뒤에서 말을 거는 듯한 작품도 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있을까.
조명이나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도 많이 느껴졌고, 관객이 로스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장 벽면의 캡션이나 도슨트 설명에도 애쓴 흔적이 있었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번에는 내 정신을 온전히 그의 의도에 맡길 수 있는 경험을 얻지 못하였다. 공간이 여유롭지 못해 앉아서 그의 그림을 오래 보다보면 앞뒤로 관람객들이 휙휙 오갔고, 로스코 채플을 재현했다는 방에 앉아 있으면,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몇 십분간 들려오는 도슨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방해를 받곤 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여튼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서는 되도록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찾아 천천히 보는 것을 권한다.
로스코는 자신의 예술적 결말로 자살을 선택했고. 자살 직전에 붉은 색으로 캔버스를 메운 작품을 제작했다. 전시의 마지막 방에 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이 포토존이다보니 다들 즐거운 듯이 웃으며 그 붉은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로스코라면 무어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그의 고요하고 영적이며 비물질적인 작품세계와 달리 로스코라는 인간 자체는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던 사람이었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성공적인 전시를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 152.4 x 145.1cm, 1970.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